2화. 그랬구나.

by 뚜비뚜밥

회사 일에 치여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려요.”


그날이 하필, 만우절이었다.

믿기 어려웠다.


자기가 먼저 그만 보자고 했지만

막상 계속 생각이 났다며,

혹시 너무 늦지 않았다면

다시 만나볼 수 있을지 묻는 메시지였다.


그 세 달 사이 결혼식도 많았고,

나도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밥 한 끼쯤이야.

우리가 처음 만났던 동네에서 다시 보기로 했다.


그날 그는 말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다고.

자기는 오래 연애할 수 없다고.

2년을 넘기긴 힘들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원래는 4~5년 후에 결혼할 생각이었다고.


왜 그렇게 시간이 필요하냐고 묻기에,

나는 유학을 갈 수도 있고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지만,

너무 오래는 기다릴 수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도 웃으며 말했다.

“너무 좋으면 빨리 결혼할 수도 있겠죠?”


그날 우리는 꽤 오래 이야기했다.

뒤에 다른 일정을 잡아뒀었는데,

시계를 보니 이미 훌쩍 지나 있었다.


한편으론 큰일이었지만,

또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이 사람은 말이 정말 잘 통하는 사람이구나.’

티키타카란 이런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우리는 매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사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후.

그날은 이태원에 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야외 프렌치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그는 청남방을 입고 왔고, 유난히 잘 어울렸다.


몇 번을 다시 만나도 그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진심으로 내 취향이었다.

햇살도 좋았고, 공기 냄새도 달랐고, 그냥… 모든 것이 좋았다.


우리는 리움 미술관 옆을 걷고, 이태원과 한남동을 한참 걸어다녔다.

올라도 갔다가, 내려도 갔다가.
별다른 목적도 없이, 그저 이런 날씨엔 그냥 걸어야 할 것 같아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는지, 뭐가 그리도 즐거웠는지,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데,

우린 왜 사귀지 않는 걸까?

의문이었다.


그날 저녁엔 친구들과 청첩장 약속이 있었다.

청첩장 모임에서 으레 그렇듯, 친구들은 만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만나는 사람은 있다고 말을 꺼냈다.


고민하다가,

좀처럼 만날 일 없는 남자인 친구들은 혹시나 그의 마음을 알까 싶어,

오늘 데이트도 완벽했는데 우리는 왜 안 사귀는지 모르겠다,

근데 나는 이미 저번에도 완벽한 데이트를 하고 나서 헤어진 경험이 있어서

나는 이 사람이 이러다 또 그만 만나자고 하는 건 아닐까,

아직까지도 재고 있나? 별 생각이 다 든다고 했다.

나는 이제 그 사람이 좋아졌는데.


어머,

근데 나 진짜 좋아하나봐.

친구들한테 말하면서 알게 된 나의 속마음.


그리고 예상치 못한 친구들 반응.

“바보냐? 그 분은 이미 결혼 전제로 만나고 싶다고 다 얘기한 거잖아.

그 상황에서 어떻게 또 먼저 사귀자고 해.”

"이젠 네가 말할 때도 되지 않았니? 얼마나 더 기다리게 하려고 그래."

"좋은 분 같은데... 어디 가시기 전에 얼른 잡는 게 어때?"


그날 밤, 나는 그 대사들을 곱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만 생각이 복잡했구나.

이 사람은 이미 마음을 말했었구나.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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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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