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어. 어린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시절을 지나 이제 누가 봐도 어엿한 어른이 되었네. 이젠 많은 것에 초연해졌지만 여전히 옅은 바람에도 추위를 느끼며 서늘한 계절을 겪어내곤 해. 어른이 되면 모든 일을 굳세고 현명하게 헤쳐 나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예전엔 내 마음에 시린 겨울이 찾아오면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티를 내보기도, 나만 유난스럽다는 마음에 천성을 탓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저 차분하게 누구나 겪을 그 시간을 견뎌낼 뿐이야. 조금 더 견디는 것, 그게 바로 어른이 된다는 뜻이었나 봐.
사람이 조금씩 변하더라도 잘 변하지 않는 성질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마음의 속력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나의 경우엔 아주 느리게 시작한 마음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속도가 붙다가 마지막엔 다시 아주 가늘고 길게 느려지는 속력을 갖고 있어. 그래서 누군가를 나의 영역에 들일 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의 자리가 비었을 때도 그 잔상이 내 구석구석에 남아있어.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렸던 나의 미래와 기대했던 모습들, 당연히 곁에 있겠지 했던 순간들에 막상 그 사람이 없는 부재, 그런 것들은 꽤 오랜 시간 나를 따라다니곤 해.
이따금 주변을 보면 나와 반대로 마음의 속력이 빠른 사람들이 있어. 난 자주 그 속력이 부럽고는 했지. 누군가를 좋아하고 비어 버리면 기꺼이 다시 자리를 내줄 수 있는 맑은 그 성질이, 떠나보낼 때도 깊이 슬퍼한 뒤 단호하게 내보낼 수 있는 현명함이, 인연이 아님을 인정하며 또 다음 단계를 향할 수 있는 그 일방향의 시각이 말이야. 나는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양방향의 사람이라 자주 뒤를 돌아보곤 하니까.
알면서도 여전히 느린 마음이 두려워 마음을 한 조각도 내어주지 않고는 해. 나쁜 일을 잘 견디는 대신 힘들 것 같은 일은 자주 포기하기도 하지. 평온하지만 무료한 마음에 던져진 구슬이 너무 많은 파문을 일으킬까봐, 그 파동들이 물둘레가 되어 내 마음을 적시고 나는 곧 물에 흠뻑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워져 내려 앉을 까봐. 누가 글 쓰는 사람 아니랄까봐 수많은 상상을 하곤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접어버리곤 하지. 그 포기가 얼마나 많은 삶의 지점들을 경험의 영역 밖에 내던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뀌려 해도 나는 애초에 느린 마음으로 태어난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걸 긴 시간 들여 인정하고 있어. 어른이 되니 두려움은 커지고 마음의 속력이 1km/year씩 느려진다고 상상하면 넌 지금보다도 더 많이 느려져 있겠구나. 아직도 이리 저리 튀는 방향을 애써 움켜잡으며 일정한 속력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겠지. 바람을 맞서 흔들리지 않으려 견디는 태도가 어른인 것이라 믿으면서. 하지만 그때쯤이면 잘 알고 있을 거야. 느린 마음으로 사는게 힘들겠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더 느리게 들판에 피어난 들꽃 한송이까지 살피고 틈틈이 빈 곳 없이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때쯤 너는 분명히 알고 있을거야. 그래서 나는 너를 더욱 사랑하고 있어. 이 진심이 10년 후의 너에게도 꼭 닿길 바라.
너가 제일 좋아하는 봄이야. 이 맘 때쯤은 네 생각이 유독 많이 나더라.
환절기에 감기를 달고 사는 네가 그때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봄을 나길 바라.
2024년 3월 26일
널 사랑하는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