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하면 어떤 게 떠오르곤 해? 난 커튼 사이로 사르르 흘러내리는 햇살, 기분 좋게 따스한 온도,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 겨우내 옷을 벗었다가 드디어 싹을 틔우는 나뭇잎이 생각나. 사실 한 해를 시작한 진 오래지만 겨울에 모두 웅크리고 있다 이제서야 드디어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기분이야. 추운 겨울은 모두 이 본편을 위해 견딜 수밖에 없는 계절이었던 것만 같아.
오늘은 아주 4월다운 날이었고 아주 따사롭고 나른한 월요일이었어. 퇴근하고 예전에 신청해 둔 카피라이팅 수업을 들으러 갔어. 나만의 감성을 가득 담은 이런 글쓰기 말고도 다른 용도의 글쓰기도 배워보고 싶었으니까. 사실 난 낯선 곳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엔 늘 설레면서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곤 해.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설렘과 사람들에게 나를 또 드러내야 하는 피로감이 없었다 하면 거짓말일 거야. 그런 감정들을 견디며 난 클래스가 열린다는 종로로 발걸음을 옮겼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수업은 시작되었어. <맛있는 글쓰기>라는 제목의 수업은 광고성 카피라이팅부터 문학적 글쓰기까지 꽤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 열 가지도 넘는 광고 멘트를 직접 써보고 공유하는데 참 오랜만에 '재밌다'는 표현이 뭐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어. 예를 들어 연필심이 잘 닳지 않는 연필을 어떻게 광고할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는데 나는 '고전 소설 시리즈를 필사해도 남는 연필'이라고 썼지.
문학적 글쓰기 편에서는 선생님이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가의 일>에 나오는 에피소드도 소개했어. 시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옆 가게 아들에 대해서 시장 아주머니들이 대화를 나누는 데 최대한 문학적으로 써보라는 거야. 다들 '삶이 허무해서 세상을 그만뒀나보다' 이런 식으로 써냈지. 나 또한 그랬어. 하지만 선생님은 “가가 세상이 텅 비어 보여서 그랬는 갑다, 라는 문장으로 쓰면 어때?”라고 물으셨어. 난 그 문장 하나로 어떤 스토리 하나가 그려지고 멍해지더라. 세상 무엇을 봐도 감흥이 없고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마음이 그 한 문장에 녹아져 있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참 오랜만에 설레는 시간이었어. 오래 고민한 글 속 표현의 힘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됐거든.
꼬박 3시간 내내 진행된 그 수업은 오랜만에 내게 기쁨의 새싹을 틔워줬어. 숙제가 던져지면 열심히 생각하고 글로 써내는 기쁨은 소설을 처음 쓰던 6년 전의 나로 돌아간 듯 했지. 그땐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늘 내가 만들어낸 소설 속 세상에 대한 열정뿐이었는데 말이야. 어서 다음 글쓰기 모임을 가고 싶고, 내가 쓴 글을 자랑하고 싶던 그런 순수한 열정. 그게 사람을 참 숨 쉬게 하는 것 같았는데 말이야.
지금은 그 애정이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전히 가끔 글을 쓰고 글에게 나의 힘든 마음을 의지하지만, 매 순간 이 일만을 생각하던 나는 이제 없는 것 같아 긴 시간 속상했어. 책을 한 두권 냈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끝난 게 아닐 텐데, 더 좋은 글을 꾸준히 써내고 싶은데 하는 마음. 계속해서 내가 살아가는 원천이던 그 꿈이 영원히 같은 온도로 존재하길 바랐지.
그런데 말이야. 친구야. 그 사실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열정이 소소한 애정이 되더라도 그 일을 사랑하는 건 마찬가지일테니까. 일에 치이고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예전 같을 수는 없겠지만, 피곤하던 하루에도 그 애정 한 모금이 또 이렇게 글을 쓰게 할거야. 가끔 네가 힘들 떄 이렇게 찾아주고, 또 살아가다 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새로운 감정이 또 좋은 이야기를 쓰게 할 테고.
사람이 늘 처음 같을 수는 없어. 사랑도 그 모양을 자꾸만 다르게 하니까. 그 사실이 이따금 슬프지만 삶의 명제처럼 익숙함은 우리를 또 변하게 하고 우린 그 굴레에서 벗어나긴 힘들 거야. 하지만 네게 가장 익숙한 사람일 나는 널 언제나 지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요즘 참 날이 좋다. 두렵더라도 다시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한두 가지 더 찾는 여정을 멈추지 말자.
4월의 어느 봄날,
봄을 가장 좋아하는 네 친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