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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은 May 19. 2024

무엇을 하든 우리의 방식대로

그간 난 짧은 봄감기를 앓았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봄만 되면 봄바람이 마음에 불어와 살랑이다 끝내 목까지 간지럽히나 봐. 누군가 짧고 찬란한 봄을 맘껏 즐기지 못하게 견제하는 듯해 못내 미워지는 밤이야. 미워할 대상도 없지만, 그냥 그 누구라도 붙잡고 미워해보고 싶은 쓸쓸한 그런 밤.


독립한지도 긴 시간이 흘러 누구 하나 돌봐주는 이 없이 혼자 아픈 시간을 견뎌야 할 때, 난 특히나 많은 생각을 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결국 도착하게 될 종착지에 대해서, 대체되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서, 연결고리 없는 생각의 길을 걸어가. 그리고 스스로 말해줘. 참 끊임없이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구나. 계속해서 인생의 숙제들을 모범생처럼 해나갔구나.


넌 한 순간도 열심이지 않은 적이 없었지. 태어난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어 어느 정도의 몫은 해낸 것일 텐데 말이야.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그 일을 기필코 잘 해내야지만 만족했어.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가던 노래방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를 불렀고, 그림 그리기 숙제를 받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그렸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와 상관없이 너는 너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늘 열심히 하고 결국 해내더라. 그 성질은 네가 성인이 되어 글쓰기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도, 작가가 되고 싶었을 때도 발휘되었어. 넌 결국 네가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내고 끝내 이루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넌 알고 있니?


관계에 대해서도 그랬어. 넌 늘 네 친구들에게 성실하고 친절한 친구이기 위해 노력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 순간 그들이 사랑받는 느낌을 받도록 애썼어. 가족에게도 줄 수 있는 건 늦지 않게 모두 주려고 늘 마음을 다잡았지. 서투른 적도 많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도 예의를 갖춰 작별하려고 했지.


하지만 어리석게도 내게 이런 시간이 찾아오면 너가 자주 멋진 사람인 사실보다 가끔 저질렀던 실수에 집중하곤 해. 그리고 네 가치를 가끔 낮추곤 하지. 왜 그런 후회되는 일을 했을까, 난 왜 그렇게 가끔 모자랄까, 하고 채찍질하지. 무지개 다리를 건너 고양이 별로 간 캣티와 구구에게 그때 더 자주 찾아가지 못하고 떠나가는 순간을 지켜주지 못한 일은 아직도 내 마음을 괴롭혀. 유학 시절 외국에 있다고 친할머니 장례식을 가지 못한 일도 너무나 후회돼. 사랑하던 사람에게 모진 말을 내뱉던 내가 마치 다른 사람 같아.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약해지면 이런 일들이 잔뜩 생각 나. 그리고 못내 작아지곤 해.


그래도 있잖아.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하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알고 있지? 앞으로도 뜻하지 않게 선택의 기로에서 네 마음에 들지 않는 일 투성이겠지만, 무엇이든 열심인 나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게. 10년 뒤 나인 너를 위해서 말이야. 무엇을 하든 내 방식대로, 나 답게 살다보면 그건 바로 네 방식이 되어있겠지. 우리의 방식대로 살아가자. 후회는 아플 때만 잠깐씩 하는 거야. 그리고 자주 아프지 않는 거야.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마음이 깃드니까.


여긴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어. 그 세상도 그렇겠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길.


2024년 4월 5일

봄향기가 만연한 어느 날, 네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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