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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가은 May 26. 2024

마음에도 계절이 있다는 사실

화창한 주말 오전, 오늘 아침 처음 한 생각이 뭔지 기억나? 밖은 여름으로 물들어가는 화창한 봄인데 나는 그저 ‘지겹다’고 생각했어. 속 편하게 쨍쨍한 날씨도 얄밉고, 매번 쌓여가는 청소만큼 자꾸만 연락해 날 찾아대는 사람들도 지겹고, 주말에 또 해야 하는 일만 잔뜩 쌓아 놓고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나 자신도 모두 다 지겨웠어. 네겐 미안하지만 이게 오늘의 솔직한 내 생각이야. 나도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난 그런 생각을 또 해버렸어.


몇 달 전만 해도 말랑한 마음으로 모든 일에 감사하고 자주 웃었던 것 같은데 요 근래 다시 마음에 찬 바람이 부나 봐. 웃음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지쳐 있고 뭐 하나 미친 듯이 재밌는 건 없어. 지나가던 하늘과 예쁜 모양의 구름, 길가에 피어난 꽃만 봐도 사진을 찍어대고 함박웃음을 지었던 나인데 말이야. 살면서 연례행사처럼 이런 주기를 겪어내는 것을 보면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인 걸까, 고민하곤 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일단 일어나서 방을 싹 다 청소했어. 쌓인 먼지를 털고 설거지를 하고 밀린 이불 빨래를 했지. 그리고 <봄날은 간다>라는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다시 돌려 보고 오랫동안 앉지 않은 책상에 노트북을 켰어. 브런치에 밀린 글도 올리고 아름다운 문장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솔직한 마음으로 이렇게 글도 쓰고 있어. 이제 책도 몇 구절 읽고 운동도 갈 거야. 날이 좋다고 남들처럼 나가서 특별한 곳에 가진 않지만, 기분이 나아지고 있네. 예전처럼 신나거나 들뜨진 않지만 말이야.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내 마음의 계절은 자주 바뀌는 것 같아. 하루 안에도 이렇게 소소한 행복과 권태가 오고 가는 것을 보면 말이야. 마음에도 봄이 오고 타는 듯한 여름이 오면 곧 또 쓸쓸한 가을이나 얼어붙는 듯한 겨울이 오곤 하지. 얼마 전만 해도 글만 써도 눈물이 줄줄 나다가 지금은 그 누구도 좋지도 않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사라진 걸 보면 웃기지? 하지만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이건 그냥 네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너만의 마음의 계절이라는 것을.


10년 후의 나인 너는 이런 나를 잘 데리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 조금은 다루는 법을 터득하고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넌 이런 계절엔 어떻게 하고 있니? 지금의 나는 이렇게 해보려고 해. 일단 몸이 지쳐서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몸을 좀 움직여보자. 많이 걷고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는 거야. 그리고 일부러 감성을 키우기보단 밀렸던 스릴러나 재미있는 영화를 잔뜩 보자. 이럴 때일수록 SNS는 피하자. 그리고 무겁게만 생각해 요즘 쓰지 않았던 소설을 조금씩 써보는 거야. 어둡고 우울한 글은 이런 시기에만 쓸 수 있으니까 오히려 이용해 보자고! 에세이는 감성이 잔뜩 녹아있을 때 잘 써지니까 기다려보면서 말이야.


난 네 모든 계절을 견딜 유일한 사람인데, 나 자신을 잘 돌보면서 널 기다릴게.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고 좋은 생각을 하려고, 좋은 습관을 지니려고 노력할 거야. 가끔 죽도록 싫은 사람이 생겨도 그 감정을 집까지는 데려오지 않도록 해볼게.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누군가가 싫고 어리광을 부리는 나를 기다려주라. 이렇게 겪어내며 조금씩 이 계절을 잘 나는 법을 배워갈 테니까.


네가 어떤 사람이든 난 널 응원해. 그 사실을 잊지 마. 줄일게.


5월의 화창한 주말, 네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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