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느 보통의 날처럼 거리를 걸었어. 출근을 한 뒤 점심을 먹으러 가고 집에 돌아오는 모든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쳤어. 아무런 표정이 없는 건조한 도시의 얼굴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늘 하루도 책임을 다하느라, 견뎌내느라 지친 마음들. 모두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지. 요즘의 내가 이따금 마음이 차분히 내려앉는 시기를 겪어내고 있기 때문일까. 그 많은 사람들은 그저 그 무미건조한 표정처럼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건지 궁금해졌어. 그래서 늘 바닥만 바라보고 바쁘게 걷던 걸음걸이를 늦추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상상해보았지. 저 사람은 마음에 어떤 구슬을 품었을까, 하고.
저기 저 지하철 승강장 앞에 서있는 여자. 귀에는 에어팟을 꽂고 유행하는 신발을 신었네. 퇴근길에 서류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집에서 잔업을 하려나 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슬며시 웃고 있네. 근래 들어 사랑에 빠진 얼굴일까? 아니, 그것보다 더 오래된 잔잔한 행복이 느껴지는데, 아마 가족에게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을 수도 있겠지. 조카의 사진을 받았다 거나, 아니면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이의 엄마일 수도 있겠어. 그건 그녀의 행복의 구슬.
하지만, 그 누구도 행복과 사랑의 구슬만 품을 수는 없어. 그녀에게 오래된 지병을 가진 가족이 있을 수도, 최근 회사에서 많이 깨져서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간절히 원하던 아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생기지 않을 수도, 계약직으로 일하던 자리가 곧 전환없이 만료될 수도 있어. 그 누구도 슬픔의 구슬을 남에게 잘 보이진 않지만, 우리 모두 각자의 불안과 걱정이 있으니까. 아무리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말이야.
그때의 너는 어떠니? 나는 늘 그랬듯이 두 구슬을 동시에 품으며 살아가고 있어. 가끔은 해맑게 웃고 어깨 위 내려앉은 햇살을 즐기다가도, 한치의 틈도 없이 구름 낀 하늘처럼 서럽고 울고 싶어지는 때가 있지. 살아가는 게 그래. 너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요즘의 나는 조금 더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적어도 내가 누군가의 슬픔의 구슬이 되진 않도록 말이야. 그 일을 내 의지로 영원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한낱 가벼운 언행이나 행동으로는 누군가에게 그런 구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서.
친구야. 가끔 불행과 슬픔의 구슬이 도르르르, 네 마음을 구르며 어지럽히고 왠지 행복따윈 네 것인 적 없을 것만 같을 때면 기억해. 네 안엔 많은 사람들이 심어준 반짝이고 빛나는 구슬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든 네가 살아갈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영원한 명제를 말이야. 오늘도 이 넓은 세상에서 네 자리를 지키고 해내느라 수고했어. 줄일게.
2024년 3월,
꽃샘추위가 찾아온 어느 날 너의 오랜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