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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은 May 19. 2024

생각의 끝엔 네가 있어

요즘의 너는 어때? 평안하니?


첫 문장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 여러 번 썼다 지웠다가 아주 평범한 인사를 건네려고 해.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후로 좀 더 매끄럽고 무게 있는 문장에 집착한지 오래였으니까. 너에게 쓰는 기나긴 이 편지의 그 시작조차 쉽지 않았는데 넌 이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겠지.


긴 시간동안 나는 소설을 썼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세지가 넘쳐흘러 쏟아낼 수밖에 없었어. 그 동안 나는 내가 쓴 글에게 아주 많이 위로 받아왔어. 세상의 끝에 나 자신을 내던지고 싶던 찰나의 순간들에 난 도망쳐서 글을 쓰며 덜어냈어. 혼자여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건 모두 그 덕분일 거야. 가끔은 소홀해도 결국은 돌아갈 수밖에 없는 나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피난처가 생겼으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 소설을 쓰고 몇 년씩이나 문장을 매만지고 책을 내고 나면 모든 게 이뤄진 줄 알았는데, 난 아직도 글을 쓰기 전의 나에게 머물러 있어. 이제는 소설을 더 잘 써내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예전보다 못한 글을 쓸까 하는 두려움에 시작조차 어려울 때가 종종 있었지. 그래서 있잖아. 솔직히 말하건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자신이 하고 싶던 말을 마음껏 토해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맞춤법도 문장의 구성도 표현도 모두 개의치 않았었던 그 때엔 그냥 내가 만든 세상이 너무나 재미있었으니까.


그래서 나 이번에 쓰는 글은 그다지 고치지 않을 거야. 그냥 날 것 그대로의 글, 써내려 가지는 대로 둘 거야. 그리고 알잖아. 나는 머릿속에 생각이 멈추지 않는 엔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사유하고 그 누구도 하지 않을, 하지 않아도 될 생각까지 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통은 흘려보내도 될 쓸데없는 상상이나 걱정들이지만, 가끔 어떤 것들은 원석과도 같아서 흩어지는 게 아까울 때가 있더라. 나는 그것들을 기록하려고 해. 언젠간 이 글을 읽으며 글썽일 미래의 나, 너를 위해서 말이야.


너는 글을 쓰면 곧잘 울먹이는 습관이 있지. 유난스럽기도 한 그 감성이 난 참 좋은데 넌 가끔 싫다고 했어. 이 습관도 어떤 시간의 총량을 채운 뒤 내가 네가 되면 사라질까? 우리가 해를 보낼수록 점점 변하고 달라졌듯이 또 다른 네가 될까 불안할 때가 있어. 10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 딴 사람으로 여겨질 정도로 아득해지는 걸. 그때도 이 책처럼 기록을 남겨뒀으면 좋았을 걸 싶네. 남아있는 건 노트 속 일기장 몇 장이나 SNS 속 가벼운 글뿐이니. 이맘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어, 친구야. 네가 많이 변하더라도 이 사실만은 잊지 말아줘. 이 시절의 나는 때론 치열하고 이따금 마음을 졸였지만, 자주 찬란하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말이야.


밤이 늦었다. 줄일게. 타고난 상상력 덕분에 블록버스터급 꿈을 유독 자주 꾸는 네가 오늘 밤은 평안히 잠들기를 바라.


2024년 3월,

너의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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