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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Sep 24. 2023

그냥, 해본다.

미래를 알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지금의 인생이 얼마나 쉬울까

처음 6개월을 일본에서 보내고 나는 바로 느꼈다.

내가 자발적으로 혼자서 일본어 공부를 할 수 없을 거란 것을. 도쿄에 사는데 일본어를 못한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물론 일본어가 필요해서 여기에 온 것은 아니지만, 또 한 가지 더불어 핑계를 대자면 업무상 일본어를 쓸 일이 없다지만 6개월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혼자서 일 끝나고 일본어 공부를 할 만큼 대단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진작에 깨달았다. 별도로 어학원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어학원들은 오전 수업을 하고 혹은 주말에 몰아서 8시간씩 이틀을 수업하는 곳도 있었다. 거의 학교 스케줄이었기에 일주일간 상당한 시간을 잡아야 했고 그만큼 비용도 비쌌다. 일을 한다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고 스트레스받지 않으면서 기본 회화를 배웠으면 했다. 그래서 일대일 수업을 할 수 있는 개인 과외를 알아보았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일본어 선생님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일본인이었지만 한국어를 한국인만큼 잘하는 때론 한국인 보다 더 잘하는 일본인이었다. 언제든지 시간 조정이 가능했다.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나의 일본어 실력은 5년 사이 거북이처럼 아주 느리게 성장하고 있지만, 그건 그래도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않는 내게 일주일에 한 시간 그 시간 덕분에 완전 0에서 10으로 치차면 3까지는 레벨을 올릴 수가 있었다.


코로나 전에는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 대면으로 수업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락다운이 되었을 때는 수업을 지금 당장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선생님이 먼저 수업은 중단하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다 수개월이 지나고 사람들은 zoom이라는 것을 통해 소통하기 시작했고 일본어 수업도 zoom을 통해서 다시 재개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당연히 뭐 만나서 대면 수업을 해도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여전히 zoom을 통해 지금까지도 수업을 하고 있다.


선생님이 한일교류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얼마나 자주 한일 교류회를 여은지는 모르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중 일본어 연습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그런 모임이라고 했다. 예전 회사 동료 중에서도 선생님이 운영하는 한일교류회에 참가했던 동료가 있어 가끔씩 선생님을 통해서 예전 회사 동료의 소식을 종종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수업 중 문득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한일 교류회를 어떻게 시작했고, 그런 모임을 운영하는 게 번거롭지는 않은지,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장소를 빌리고 하는 것들은 어찌하는 건지, 굳이 그런 모임을 자처해서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혹시라도 돈이 되는 건지.

선생님은 한일 교류회 장소는 대회실 같은 장소를 직접 빌리고, 참가자들에게 만원 정도 참가비용을 받지만 장소를 빌리고 음료수를 준비하다 보면 돈이 남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또 본인이 하는 한일 교류회를 알리기 위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등으로도 홍보를 하고 한번 참가한 사람들의 개인 연락처를 알게 되면 교류회가 열린다고 문자를 일일이 직접 문자를 보낸다고 한다. 모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일본인들은 한국말을 연습하고 한국사람들은 일본어를 연습할 수 있는 장이 된다. 잠깐 여행 왔다고 참가하는 한국 사람들도 있고,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시는 60대 이상의 여성분들도 있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10대 소녀도 있으며,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된 한국인 유학생들, 워홀러들, 그리고 일본에 굉장히 오랜 산 이미 일본어는 능숙해 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한국어를 선택한 인도인과 중국인도 있다고 했다. 11년 동안 한일 교류회를 운영해 오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이런 자원봉사와 같은 모임을 운영하고 있나 궁금해졌다. 처음 의도는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교류회를 운영하면서 인맥을 쌓고 새로운 학생들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일본인 학생 혹은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한국인 학생을 모집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 물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교류회는 하나의 본인 커리어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나: 그런데 한일 교류회는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선생님: 그게 참 흥미로운 게요. 제가 한국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었잖아요(지금은 이혼하셨다).
그때는 그냥 가정주부였어요. 결혼하고 그냥 집에서 일은 안 하고 쉬고 있었죠. 근데 하루 종일 집에 있으려니 너무 심심한 거예요. 대학교 때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을 전공하기도 했고, 특히 제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그냥 재미 삼아 다음 카페에 한국어 일본어 언어 교환 모임을 한다고 올려봤어요.

처음에는 정말 아무런 의도는 없었어요. 단순히 집에만 있기 싫고, 전공할 걸 살릴 수도 있게다 하고 취미로 시작했죠. 결국은 가정주부가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교류회를 통해서 전문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야겠다 꿈을 갖게 되었죠. 지금 이렇게 일본어 선생님, 심지어 한국어 선생님(일본인 대상)까지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사람 인생이란 정말 모르는 거죠. 11년째예요.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 운영하는 기간이.

저도 놀라워요. 단순히 집에 있는 시간이 심심해서 그냥 해본 건데, 지금은 이걸 직업으로 삼고 있네요. 교류회 자체는 꼭 비즈니스 목적이 아니라도 너무 재미있어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또 어쨌든 새로운 학생을 만들 수 있으니깐요.


최근에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과거에 집착하다 보면 미래가 불안해지고 현재를 살지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혔던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무얼 시작하려고 할 때 자꾸 과거에 실패했던 기억만 생각나 결국 나는 그걸 시도해 봤자 안될 거야 하고,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을 제단 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한 채 걱정과 불안으로 현재를 살게 된다. 과거의 실패도 있었고 성공도 있었다. 그건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인데도 말이다. 과거에 사로잡혀 전혀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을 미리 판단하고 두려워하다, 결국 당장 현재를 살지 못한다.


(출처: 구글 이미지)


우리는 왜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의 실패를 먼저 두려워하는 걸까?


미래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는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다. 결국 바꿀 수 있는 건 현재이다. 선생님은 미래의 어떠한 결과도 생각하지 않고, 그 당시 현재에 삶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선생님의 과거에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 당시에 교류회를 운영해 보자고 어찌 그리 바로 결심이 섰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저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선택했던 것만은 알 수 있었다.


3개월 후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현재의 모든 선택이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인류가 아무리 진화한다 할지라도 3개월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변하지 않는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에 사로잡혀 오늘도 걱정 속에 하루를 사는 것이 정말 무의미한 일이다.


오늘도 이렇게 글을 써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또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글을 쓰는 것은 내게 내 스스로에게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해본다. 미래의 일은 미래로 두고 바꿀수 없는 과거는 그냥 잊어버리고 오늘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해본다.  선생님이 심심했던 시간을 교류회를 해보자고 바로 그냥 시도 했던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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