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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Sep 17. 2023

도시

도쿄에서의 삶도 다르지 않다.

도시에 산다.


시부야. 시부야는 월요일에 와도 사람들로 언제나 꽉 차있다. 관광객 반 도쿄 현지인 반.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곳에 모여있는지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하는 눈치다. 나도 멀리서 보면 이 군중 속에 한 사람이지만, 또 나 역시도 이 군중이 신기하다. 금요일 밤이면 거리에는 취객들도 많이 보인다. 낯선 듯 익숙한 풍경들. 관광객들은 길마다 보이는 라면가게들이 신기한 듯 구석구석마다 자리 잡은 라면집들의 사진을 찍는다. 내게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산책. 좋아하는 송은이/김숙 언니의 팟캐스트를 들으면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내가 지금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익숙해져 버린 거리의 모습들. 곳곳 보이는 음료 자판기, 한걸러 블록마다 위치해 있는 편의점들. 눈에 익은 풍경과 걷는 이들의 모습이 한국과 다르지 않다. 소리를 차단한 채 라디오를 들으며 걷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잠시 잊게 된다.



문득, 이 도시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도쿄는 잠시 머물러가는 낯선 도시가 된다. 이 커다란 도시는 영원히 내게 이방지의 느낌을 지우기 힘들지 않을까. 이렇게 문득 찾아온 외로운 마음은 낯설지가 않다. 그 마음은 서울에서도 느껴던 이 감정이었다는 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에 심취되다, 불현듯 그 화려함이 되려 유난히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엄마품과 같은 따뜻함은 고향에서만 느껴지는 걸까. 아마 순수한 어린 시절을 품고 있는 고향의 거리와 냄새들은, 어릴 적 사사로운 기억들이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나의 온몸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포근함은 어릴 적 추억이 있는 내 가족이 살고 있는 고향에서만 느껴진다. 도시에서의 기억은 치열하고 또 치열하기에. 도시에서의 삶은 익숙한 듯 여전히 거리감이 존재한다.


오랜만에 출근, 아침에 일어나 늦지 않기 위해서 회사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했고 부지런히 집을 나왔다. 그런데 여전히 시간이 촉박하다. 왜 매번 뛰어서 버스를 잡는 걸까. 오랜만에 만난 회사 동료들과 안부를 전하고 재택을 왜 계속하지 않느냐며 불평불만을 주고받는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나 싶었지만 여전히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다지 바쁘지 않았던 하루임에도 몸은 왜 이리 천근만근인지. 맞다. 집에서 나와 회사에 도착한 순간 이미 몸은 피로한 상태가 된다. 회사에서 온전히 쉬고 싶을 때는 화장실에서 한 10분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자리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 작은 화장실 칸이 아이러니하게도 큰 사무실 공간에서 제일 편안함을 준다. 6시,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


퇴근길, 맥주캔을 들고 지하철로 걸어가는 아저씨가 보인다. 스타벅스 커피를 한 손에 쥔 모습 마냥 맥주 캔을 들고 걸어가는 아저씨가 웃겨 보이다가도, 어쩐지 짠한 생각이 든다. 그러다 나도 얼른 집에 들어가 맥주 한 캔 마시고 싶은 욕구가 샘솓는다. 퇴근하고 돌아와 침대에 누워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 줄 맥주 그 첫 한 모금은, 늘 그렇듯 인생이 별거 있을까, 이거면 된다는 소소한 행복을 준다.


시간, 올해도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가끔은 작년에 했던 일이 재작년에 했던 일이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괜스레 별거 없는 한 해 한 해를 보낸 거 같아 나 자신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루하루를 열심히 버티며 걸어왔다. 그렇게 쌓여서 지금의 하루를 만들었다.


가끔씩 드는 의구심. 나는 잘 걸어가고 있는 걸까.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치열하게 굴러가는 도시에서의 삶은 그렇게 늘 의구심과 함께 돌아간다. 다들 어디를 저렇게 바삐 걸어가는지, 다들 무얼 하며 살아가는지, 나는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따라가고 있는 건지, 하루에도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고 의심하는 순간들이 온다. 도쿄에서의 삶도 서울에서의 삶도 다르지 않다.

그런 하루하루들이 지나간다.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잔에 행복해하다, 괜스레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하루들을 반복한다. 그래도 느리지만 남들보다는 조금은 느리지만 뚜벅뚜벅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는 건, 여전히 이 도시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에, 이곳에서 이뤄내고 싶은 작은 소망들이 있기에, 실패하다 채워가다를 반복하며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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