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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둘의 결혼, 마흔일곱의 임신

40대의 신부 & 40대 후반의 엄마

by 찐스마일

나는 꽤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의도적으로 미룬 것은 아니었는데, 인생은 늘 내 계획과 바램과는 무관하게 굽이굽이 두르고 둘러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혼자가 익숙해지고, 마흔을 넘기자 ‘이제는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 보다’라는 마음이 조금씩 자리 잡아 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인연이 찾아왔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마치 이제야 결혼의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듯한 상황이 내게 펼쳐졌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늦깎이 신부가 되었다. 하지만 신혼을 즐기기도 전에 또 다른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난임이었다.


나는 결혼하면 아이는 당연히 생기는 줄 알았다. 늦은 나이지만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라는 무지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문을 열고 진단을 받고 나니, 이 길이 그렇게 짧지 않으리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들이 왜 내겐 이렇게 아득한 목표처럼 느껴졌을까?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끝없이 이어진 터널 같았지만, 아무리 긴 터널도 그 끝은 존재했다.


마침내 마흔일곱, 우리 부부에게 작은 기적이 찾아왔다. 시술이 실패할 때 마다 ‘우리가 꼭 부모가 되어야만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사실 부부라는 관계는 아이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를 품기 위해 함께 견뎌낸 시간은, 오히려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한 부부로 만들어 주었다.


결혼 전에는 늘 ‘나와 꼭 맞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마치 퍼즐조각처럼 어딘가 나와 맞는 조각이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 오히려 살아가면서 서로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고,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 가며 맞추기도 때로는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맞는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 삐걱삐걱하며 경험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 그것이 결혼이고, 가족이 아닐까?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지난 난임5년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수없이 무너지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힘들다”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는 없었다. 그 말이 내 입을 떠나는 순간 정말로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꾹 삼키고 괜찮은 듯이 버텼다. 남편도 그만의 방식으로 견뎌왔다고 믿는다.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말없이 각자 자기자리를 지켰다.


돌아보면 난임의 시간은 단순히 ‘고통’으로만 남지 않는다. 물론 지나와서 할 수 있는 말이긴 하다.
그 시간은 내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했고, 동시에 그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내 안의 힘을 알게 되었다. 산 너머 산.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이었지만, 하루하루는 또 걸어낼 만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가끔은 억울하기도 했다. 남들은 인생의 당연한 절차같은 결혼과 출산이 왜 유독 내겐 이렇게 어렵게 찾아올까? 하지만 인생에는 ‘때’라는 것이 있음을 알았다. 내게는 조금 늦게 찾아왔을 뿐... 늦은 결혼과 늦은 출산 덕분에 더 진하게, 더 깊게 인생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이 경험이 내 삶에 꼭 필요했기에 온 것일수도 있다.


너무 힘들어서 안 힘들고 싶었던 날들.

두렵고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날들.
포기하고 싶어도 쉽게 놓을 수 없었던 마음들.

병원을 오가는 기차안에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결국 그 또한 내 삶의 한 페이지였다고...


그렇게 결혼 5년이 지난 어느 봄날,

우리는 난임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해
드디어 산부인과의 문을 열었다.
많이 돌아왔고 오래 걸린 길이었지만,
또 다른 가족을 맞이한다는 설렘으로

내 삶에 ‘임산부’라는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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