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 내 메마른 땅에 홍수가 났다

운칠기삼을 믿지 않던 노력파가 사주명리에 항복한 이유

by 찐스마일

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힘들게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노력은 늘 마지막 한 조각에 불과했고, 삶의 물줄기를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나 거대한 운이 좌우했다. 그래서 내가 사주명리를 만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운의 물줄기를 알고 싶었다.


서른일곱. 사주에서 말하는 거대한 물의 기운, ‘임자(壬子)대운’ 10년이 시작되던 해였다. 그전까지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삶은 자유롭고 일은 재미있었으며, 강사로서 쌓아 올린 성과는 나를 오만하게 만들었다. 경력이 어느정도 쌓이니 여기저기 불러주는곳도 많았고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 아닌가?’싶었고, 아직 미혼이지만 기혼자의 삶이 그리 부럽고 행복하게만 보이지 않았다. 좋은사람 만나면 천천히해도 괜찮을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삶이 하나둘씩 균열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서른여섯 해의 끝자락, 친구의 결혼식 날이었다. 12월의 예식장은 눈이 부시게 환했고, 사람들은 축하와 웃음으로 소란스러웠다. 그 친구는 내 곁에 남아 있던 마지막 미혼 친구였다. 공항까지 친구를 마중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무언가 모를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나 잘 살고 있는걸까?'


일상은 그대로였다. 출근하고, 운동하고, 여행을 가고, 쇼핑을 하며 여전히 ‘세련된 골드미스’를 연기했다. 하지만 조용한 방에 누우면 질문이 무수히 솟아났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스마트폰 속 지인들의 삶은 결혼과 육아라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데, 나만 제자리를 돌고 있는 기분. 평온하지만 멈춘듯한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삶을 지탱하던 가장 익숙한 의자가 사라졌다. 10년을 이어온 컴퓨터 강사직을 잃었다. 제도의 변화라는 거창한 이유였지만, 결국 나는 밀려난 것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는 ‘컴퓨터 강사’에서 ‘직업상담사’라는 낯선 명함을 쥐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내 삶의 지류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굽이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중에 명리학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그 시기가 바로 내 인생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때’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물이 들어오면 노를 저으라고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바짝 말라 있던 사막에 바닷물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풍요가 아니라, ‘침수’가 먼저 온다. 서른일곱에서 마흔하나까지, 나는 그 물속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했다. 잘하던 것, 익숙한 자리, 나답다고 믿었던 꼿꼿한 태도들까지.


컴퓨터 강사 시절의 나는 딱딱하고 명쾌했다. 과정보다는 결과, 사람보다는 커리큘럼, 높은 합격률이 나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직업상담사가 되어 만난 사람들은 ‘정답’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실직과 경력단절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이었다.


아이러니했다. 내 앞가림도 못 해 불안에 떠는 내가, 남들에게 “당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가르쳐야 하다니. 처음엔 그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성과를 증명하던 사람이, 타인의 하소연을 들어야 하는 무력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무력감 덕분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성적표’ 대신 ‘사람’을 보기 시작했다. 화려한 이력서 뒤에 숨겨진 침묵을, 의욕적인 말 뒤에 감춰진 지친 눈빛을 읽기 시작했다. 그 시기를 통과하며 나는 이전의 나와 작별했다. 혼자서도 완벽하다고 믿었던, 자기 세계가 견고했던 그 오만했던 여자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운명이 나를 물속에 잠기게 한 이유는, 어쩌면 힘을 빼고 흐르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 아래는, 그 시절을 나중에 명리로 다시 읽어본 기록입니다.

[ 길 위에서 펼친 나의 운명 지도 ]

임자대운(壬子)의 시작: 10년 대운의 전반부인 '천간 임수(壬)'의 시기. 천간은 보통 정신적인 영역을 의미


화토중탁(火土重濁)의 저항: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내 사주)에 처음으로 찬물(임수)이 쏟아진 시기였다.


증발하는 마음: 메마른 땅은 물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은 닿자마자 뜨거운 증기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갔고, 그 증기는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잡념과 불안'이 되었다.


해석: 내가 사주 공부와 내면 탐구에 매달린 건, 자욱한 안개(수증기)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직업의 변화 = 운명의 변화 - 컴퓨터(정답, 결과, 딱딱함/金,火) → 직업상담(위로, 과정, 물렁함/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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