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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숙 Sep 16. 2023

김밥 만들어 먹고 푹 쉰 하루

31일 저녁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딱 열흘이 흘렀다. 지금 체코 시간으로 4월 10일 오후 12시11분이다. 한국은 10일 저녁 7시11분이겠다. 

열흘간 빡세게 다녔다. 여행 의욕이 넘쳐서가 아니라 함께 이 여행팀에 참가한 두 동행 S, H의 여행의지가 대단했다. 나는 숙소를 홈그라운드 삼아 기차로 두어 시간 이내 근방을 다니면서 체코의 거리 분위기와 건물과 길과 가게들, 갤러리와 뮤지엄, 종교시설을 구경하고 내 방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자고 막연히 생각했다. 

S와 H 덕분에 이번 여행의 컨셉이 주변국가 명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바뀐 셈이다. 내 뜻은 아니나 잘됐다 싶다. 한적한 여유는 한국의 내 집에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으니.

열정도 그러나 피로 앞에서는 무력한 법. 이러다 우리 몸살하겠다며 오늘 하루 다같이 쉬기로 합의했다. 어젯밤 기차역에서 걸어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다들 쓰러지듯 방으로 들어갔다.

어제 다른 날보다 한 시간 일찍 잠들어 푹 자고 일어나니 여섯 시. 개인적으로 밀린 원고 작업을 좀 하는데 열 시쯤 H가 문을 두드렸다. 쌀이랑 김이요, 한다. 아참 우리 김밥 만들어 먹기로 했지~ 

내가 갖고 온 김과 쌀을 받아간 H가 달걀 몇 알과 냉장고를 뒤져 찾아낸 마른 채소와 햄을 가지고 김밥을 만들어냈다. 빨간색재료는 나랑 H가 일식집에서 먹다남은 밥을 먹기 위해 부다페스트 빌리인지 넬리인지 하는 마켓에서 산 비트. 맛보다 view용인 줄 알았더니 강샘(숙소 주인의 선배로 가이드 일을 해오신 분)이 이건 건강식하는 사람들이 먹는 거라고. 단무지 없는 김밥이지만 아주아주 훌륭한 맛으로 잘 먹었다. 어제 식당에서 호되게 당한 듯한 프라하 물가에 비하면 이건 뭐...말해뭐해

후식 먹으며 11일부터 2박3일 전체일정으로 할 패키지여행에 대해 강샘한테서 조금 듣고,(본격 공지는 저녁 일곱시 라운지에서 답사여행에서 돌아온 숙소주인 K샘이 할 거라고) 셋 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앉았다가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다들 낮잠을 잘 모양인데 나는 체질적으로 낮잠을 즐기지 못해서 포스팅이나 하자고 앉아 있다. 오늘 하루를 아무것도 안 하고 아주 늘어지게 편하게 지내야지 싶은데 침대에 누워있는 건 또 답답하다. 부드럽게(세게 하면 내 뼈 부러질 위험 큼) 마사지하는 데가 있으면 몸을 좀 맡기고 싶은데 체코 촌구석에 그런 데가 있을 리 없지. 

노트북 소설폴더를 열자 여기 오기 전에 구상했던 단편이 제목 하나만 달랑 달고서 앉아있다. 여기 와서 틈틈이 써서 완성하려고 했는데 손도 못대고 있다. 아무리 단편이라도 워밍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집중의 시간이 이어져야겠고. 이럴 때 들어가는 사이트로 비번을 치고 들어가 본다. 소설 쓰는 몸을 만드는 건데, 오늘은 사례로 삼을 것만 눈에 띈다.

오늘 새벽 여섯 시에(한국시간으로는 오후 한 시) 일어나 6월에 있을 강의안을 작성해서 간단하게 보냈는데, 수강생 전원이 한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하게끔 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짧은 글들을 생각난 김에 다운로드해 놓는다. 

지금부터는 2박3일 한 번, 3박4일 한 번 전체일정으로 갈 곳들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여행은 아무것도 모른 채 가서 부딪치는 맛으로 하는 거라는 말도 맞지만, 개고생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도, 보지도 못한 채 허무한 썩소를 짓고 돌아오는 수가 있다. 그리고 전체 일정 빼고 남은 십여 일을 어떻게 보낼지도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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