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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왜 제 기도를 안 들어주세요?

집에 진수성찬 차려놨는데 애가 불량식품 달라고 시장 바닥에 누울 때


*순탄하진 않은데 형통합니다_01권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fascinating/45







살인 미수 사건이 벌어지기 몇 달 전. 나는 두 번째 홈스테이로 옮겨온 상태였다. 


이제 슬슬 홈스테이 말고 방을 따로 구해서 혼자 살아보는 게 어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첫 번째 홈스테이에서 9개월 정도를 보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어학원 학생 중에 나처럼 긴 기간 홈스테이 생활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따로 나와 혼자 살 방을 구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홈스테이라는 안전망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홈스테이의 장점에 푹 빠져서 앞으로도 계속 머물 거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홈스테이를 더 꼼꼼히 골랐다. 첫 번째 하숙집에서 아쉬웠던 점 -식구 수에 비해 부족한 화장실, 반지하라 햇빛이 잘 들지 않던 방-을 보완할 수 있는 집을 찾기 위해 홈스테이 가정 리스트를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기도도 열심히 했다. 


“하나님, 좋은 홈스테이 가정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렇게 이사 간 집은 부부와 아이 하나가 사는 집이었는데, 멋진 대형견도 한 마리 있고 내가 칠 수 있는 피아노도 있었다. 게다가 2층을 나 혼자 통째로 쓸 수 있었다. 좋은 집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막상 살다 보니, 실망스러운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새 홈스테이 가정은 저녁에 손님을 초대하는 파티를 자주 열었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뒷마당에서 불을 피워놓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밤늦게까지 시끄러웠다. 당연히 집에는 낯선 손님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나는 이 부분이 꽤 불편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집에는 착하고 귀여운 대형견이 있었는데 배변 훈련이 안 되어 있는지 종종 부엌에, 그것도 피아노 앞에 커다랗게 볼일을 봤다. 그걸 제때 치워주지 않아서 부엌에 개의 배설물 냄새가 심하게 났다.      


점점 자잘하고 별거 아닌 일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주인집 아이가 아무 때나 내 방문을 벌컥벌컥 열며 들어오는 것도 싫었고, 큰맘 먹고 사 놓은 김치를 주인아줌마가 내 허락도 없이 다른 방 하숙생들에게 멋대로 꺼내 먹이는 것도 싫었다. 식사 때 인스턴트나 냉동 음식이 자주 나오는 것도 불만이었다. 


나는 잠들 때마다 내 불평과 괴로움을 하나님께 아뢨다. 아저씨가 부엌과 화장실을 치우게 해 달라고, 개가 집 밖에다 볼일을 보게 해 달라고, 아주머니가 내 김치를 허락 없이 막 가져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살인 미수 사건이 터졌던 거다.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뒤, 지하 방을 쓰던 학생 둘은 바로 짐을 싸서 하숙집을 나갔다. 그 소식을 전하던 주인아주머니는 너도 나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말하지 못 했다. 우스운 일이다. 평소 홈스테이에 대한 불평불만이 가득했으면서 막상 나갈 거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겠다고 했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우선 이미 한 번 바꾼 홈스테이를 또 바꾸기가 부담스러웠고, 혼자 나가 사는 것도 여러모로 불안했다. 무엇보다, 나갈 거냐고 묻던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이 너무 지쳐 보여서 마음이 쓰였다. 주인집에는 학생을 받는 게 일종의 수입이고, 이미 학생 둘이 나갔는데 나까지 나가겠다고 말하는 게 미안했다. 안 그래도 큰일을 당한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이 생각이 틀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일을 당해서 정신없으니 학생들이 나가주는 게 오히려 반가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고, 나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홈스테이에 남아 있었다.     






나름 좋은 뜻으로 남기로 했으니 이후 좋은 일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설상가상, 이제는 집에 쥐가 나오기 시작했다. 주인집 부부는 1층 부엌에 연결된 정원 출입문을 늘 열어 두었는데, 그 출입문과 연결된 부엌은 음식 냄새와 개의 배설물 냄새가 섞여 위생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러니 정원에서 집으로 쥐가 들어왔대도 전혀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다.     


주인 부부로부터 집에 쥐가 들어온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경악했다. 


쥐라니! 진짜 싫어! 


나는 벌레나 쥐 등에 약간의 공포증 반응이 있다. 그래서 상황을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매일 밤 하나님께 ‘제발 제 방까지는 쥐가 들어오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글로 쓰려니 조금 우스워 보이지만, 나는 진짜 절박했다. 정말 진심을 가득 담아 기도했다. 


하지만 쥐는 곧 2층 내 방까지 올라오고 말았다.     


방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를 처음 듣던 밤. 나는 ‘기막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싫었던, 절대 벌어지지 않길 바라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순간 정말 정신이 탁하고 늘어지며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그리고 머리로 인지한 상황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진다. 너무 싫어서.






그렇게 믿을 수 없고 인정하기 싫은 상황에 공포와 분노로 떨다가, 어느 순간 화가 섞인 의문이 들었다. 


‘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이렇게 절박하고 이렇게 진심인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셨지?’ 


기도에 불평과 불만이 섞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나님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허락하세요? 제가 이렇게 싫어하고 힘들어하는데. 하나님은 얼마든지 막아주실 수 있으시잖아요? 그런데 왜 막지 않으셨어요? 제가 뭐 큰 걸 바란 것도 아니고, 쥐 정도는 얼마든지 없애주실 수 있잖아요!’      


그렇게 나는 왜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시느냐고 따지다가, 제발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빌고, 나중에는 쥐가 내 방에서만이라도 나가게 해 달라고 울어댔으며, 종래에는 방에 쥐가 있어도 좋으니 제발 내가 못 느끼게만 해 달라며 하나님과 일종의 타협을 시도하려는 지경까지 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도대로 되지 않았다. 불을 끄고 누우면 사방에서 갉작갉작 무언가 갉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쥐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다가 소스라쳐 깨고, 아침에 일어나 쥐의 흔적을 발견하는 날이 계속됐다. 집주인 부부에게 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알겠다고만 하고 뭔가 해결됐다는 소식이 없었다. 계속된 스트레스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매일 이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과 싸웠다. 하지만 여전히 하숙집을 나가 혼자 살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 룸 쉐어할 집을 알아볼까 싶다가도 곧 외국에서 따로 나가 살다가 겪을 수 있는 온갖 불행할 일들이 떠올랐다. 


상상 속의 나는 집 계약사기를 당해서 비싼 렌트비를 물고, 물가를 모르고 장을 보다가 생활비를 다 쓰고 쫄쫄 굶거나, 이상한 룸메이트를 만나 매일 밤 괴로워했다. 그렇게 온갖 이유를 떠올리며 앓다가, 결국 ‘역시 그냥 여기 남아있는 게 좋겠다’는 항복 선언을 하고서야 마음이 체념같이 가라앉았다. 이런 격렬하고 소모적인 내적 갈등이 매일 반복됐다.     


시간이 지나도 쥐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늘어나는 것 같았다. 삶은 엉망이 되어갔다. 나는 습관적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매일 울다 불안에 떨며 잠들었고, 작은 소리에 화들짝 깨서 어둠에 잠긴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아침이면 끔찍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괴로웠다. 쥐가 돌아다니는 방에서 생활하는 것도 괴로웠고,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아무 조치를 취해주시지 않는 것도 괴로웠다. 기도하다가 문득문득 삐쭉하게 솟아오르는 날 선 의문을 막기가 어려웠다. 


어째서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가?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이렇게 힘든데.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이해할 수 없었고 화가 났다.      


몇 주가 더 지났다. 나는 더 예민해졌다. 집 밖에 있을 때도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흠칫 뒤돌아보길 반복했다. 방 여기저기 쥐의 흔적이 점점 늘어났다. 서랍 안에서 쥐가 갉아 먹은 물건이나 쥐의 배설물을 발견하고 펑펑 우는 날이 이어졌다. 쥐가 더 많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다가 화들짝 깨서 책상 위를 돌아다니던 쥐를 발견한 밤. 나는 더 견딜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 정도까지 가서야 겨우 깨달았다. 아, 이 집을 나가야 하는구나.     





눈물을 닦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간다. 이 집을 나갈 거야. 굳은 결심을 하고 이사 갈 집과 룸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모든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숙집을 나가기로 하자, 놀랍게도 모든 일이 신기할 만큼 척척 풀려나갔다.      


같이 집을 나눠 쓸 룸메이트를 찾기 위해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바로 직전에 누군가 룸메이트 구한다는 글을 올려놓은 게 보였다. 어학연수 온 여학생이고, 같이 집을 구한 뒤 이를 나눠 쓸 사람을 찾는다는 글이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과 정확히 같았다. 


룸메이트 구한다는 새 글을 올리기 전에 그 사람에게 연락이나 해보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몇 분 뒤, 우리는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됐던 게 신기하다. 한 거라곤 온라인 메신저로 몇 마디를 나눈 게 전부였는데 상대편은 정말 흔쾌히 나와 함께 살겠다고 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냥 덜컥 일이 그렇게 진행됐다. 


어....... 이게, 이렇게 빨리 되는 게 맞나? 


어리둥절했다. 홈스테이 가정을 고를 때는 그렇게 신중하게 자료를 보고 조건을 골랐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음에도 일이 순식간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과 함께 살기로 한 뒤, 곧 집을 보러 갈 날짜를 잡았다. 서로의 일정을 맞춰야 했는데, 이 역시 아무 문제 없이 바로 날짜를 정할 수 있었다. 


‘이날 어떠세요?’ 

‘네, 좋아요!’ 


너무 수월하니 좀 당황스러웠다.  





    

집을 보러 가는 날. 룸메이트가 될 L을 처음 만났다. 몇 마디 해보지 않았지만 바로 알았다.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룸메이트를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L은 웃음이 많고 활기찬 학생이었으며, 배려가 몸에 밴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최고의 룸메이트를 만났다.   

  

집을 구하는 과정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을 보러 다닌 첫날, 우리는 바로 맘에 드는 물건을 찾았다. 보러 간 집은 제임스 베이(James Bay) 한가운데 있었다. 예전에 이 지역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대부분 ‘은퇴한 부유한 백인들이 많이 산다’, 또는 ‘집값이 비싸다’ 같은 얘기들이었다. 임대 가능한 집이 있다길래 보러 가긴 했지만, 사실 내가 이렇게 좋은 지역에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가보니 동네가 정말 깨끗하고 좋았다. 관리인을 따라 들어간 건물도 관리 상태가 양호했다. 상태도 구조도 좋은 집이었다. 이런 집은 많이 비싸겠지. 별 기대 없이 가격을 물었다. 그런데 관리인이 불러주는 숫자가 생각보다 꽤 낮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한 예산 내에 들어올 정도로.      


L과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를 쳐다봤다. 뭔가 우리가 착각한 건가 싶어서 관리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서로 한국어로 몇 번이나 되묻고, 체크하고, 계산해 봤다. 그럴수록 결과는 더 명확해졌다. 안전하고 좋은 동네에, 상태도 좋고 가격도 나쁘지 않은 집이 우리 눈앞에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이사를 결정했다. 외국인 학생 둘이 여권 하나씩 달랑 들고 있는 상태라 계약이 될까 걱정했는데, 계약은 아무 문제없이 진행됐다.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넘겼고, 나와 L은 곧 그 집에서 함께 살게 됐다.    

  

모든 게 너무 빨리, 그리고 신기할 만큼 수월하게 진행됐다. 자취도, 룸메이트도, 부동산 계약도 모두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것이었는데 다 너무 빨리 결정돼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 문제 없이 너무 수월해서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혹시 뭔가 놓쳤거나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어서, 룸메이트와 괜히 한참을 이것저것 되짚었다. 


나는 심지어 우리가 계약한 집에서 예전에 혹시 누가 사고를 당하거나 죽은 건 아닐까 까지 의심했다. 조건과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을 검토했지만 정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정말 완벽했다. 집값은 비싸지 않았고 동네는 안전했으며, 아침저녁으로 길에서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사랑에 빠질 만큼 아름다운 공원과 해안가를 만날 수 있었고, 반대쪽으로 올라가면 곧 시내 중심가에 닿아서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의 편리함을 모두 누릴 수 있었다. 


관리인 부부는 정중하고 친절했으며, 룸메이트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유쾌하고 상냥한 L은 언제나 긍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캐나다 기억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 중 하나다. 하숙집을 나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이사하길 잘했다고 느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몇 번이나 나를 주저앉히던 걱정들이 다 쓸데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계약사기를 당하지도 않았고, 홈스테이 비용이 나가지 않는 덕분에 생활비를 더 알차게 사용할 수 있었다. 식자재를 사서 직접 요리를 했고, 동료와 친구들을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같이 먹거나 성탄절을 축하했다. 덕분에 외국 친구들을 초대하려면 음식 말고 놀거리도 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친구 한 명을 초대하면, 그 친구의 친구가 다섯 명쯤 같이 온다는 것도 알았으며, 지인들과 함께하는 소박하고 즐거운 모임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알게 됐다.     


친구들과 서로의 생일파티를 열기도 했다. 한번은 어떤 친구가 깜짝 이벤트로 내 생일파티를 열어준 적이 있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 캐나다에서 사귄 여러 친구가 몰려나와 생일을 축하해줘서 얼마나 놀라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모두 다 홈스테이를 떠나 새로운 공간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제야, 나는 왜 하나님께서 그동안 내 기도에 침묵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하나님은 이 모든 걸 예비하고 계셨다. 날 위해 이렇게 멋진 순간을 준비해두셨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그 불편한 곳에 있겠다고 미련을 부리고 있었던 거다. 거기서 나오라고 하시는데, 나는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거냐며 울기만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내 기도는 참 어리고 일방적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물어볼 생각은 못 하고, 그저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며 내 소원을 일방적으로 늘어놓기 바빴다. 그래 놓고는 왜 기도한 대로 안 해주시냐고 하나님 앞에서 입을 삐죽 내미는 날 보며, 하나님이 오히려 안타까우셨을 것 같다. 


맛도 좋고 영양 만점인 진수성찬을 차려놨는데, 별로 맛도 없는 불량식품을 손에 쥐고 그게 전부인 줄 아는 어린 자식을 보는 마음 같지 않았을까? 


다행히 하나님은 날 혼내시거나, 그러면 그 맛없는 거나 계속 먹으라며 포기하시지 않았다. 대신 일련의 일들을 통해, 내 수준에 맞게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가르쳐주셨고 결국 가장 좋은 것을 내게 안겨주셨다. 또한 그 모든 과정, 과정 중에 언제나 나와 함께 계셔 주셨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늘 듣던 말이 있다. 


“하나님은 늘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집과 관련된 모든 일이 마무리된 뒤, 마음속에 잔잔히 이 말이 떠올랐다. 맞다. 정말 하나님은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셨다. 내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결과보다 월등히 좋았다. 괴로움에 기도할 때만 해도 이런 결과가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일이 마음대로 잘 안되는 것 같아 속상할 때. 나는 이제 조금 더 하나님을 기다려보려 노력한다. 물론 늘 의젓하게 하나님을 잘 기다리는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조금 ‘노력’해보는 정도지만. 그래도 그 하숙집을 나올 때 가르쳐주신 것들을 기억해보려 애쓴다. 


물론 그래도 잘 안될 때가 더 많고, 무서움이 가시지 않아 마음이 힘들 때도 있다. 그러면 그냥 하나님께 나가서 또 못나게 울고 때 쓴다. 하지만 예전과 분명히 다른 점은, 매달려 울면서도 마음 한편에 ‘하나님께서 분명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거야,’ ‘하나님이 분명 이 상황을 통제하고 계실 거고, 그렇다면 다 괜찮을 거야’ 하는 신뢰가 있다는 점이다.     




속상하거나 아플 때, 또는 무서울 때. 아이는 펑펑 울며 보호자에게 달라붙는다. 일견 당연한 행동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는 아이와 보호자 간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울며 달라붙어도 상대방이 사랑과 애정으로 나를 품어줄 것을 확신해야만 그럴 수 있다. 


나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그렇다고 느낀다. 일련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과의 애착 관계, 신뢰 관계가 더 강해졌고, 그 결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날 아주 사랑하시며, 나한테 안 좋은 일을 하실 리 없다는 확신이 쌓여갔다. 


상황이 맘에 들지 않고 힘든 일이 눈앞에 펼쳐져도 여전히 하나님이 내 양육자이고 보호자이며 내 말을, 감정을, 도움 요청을 기꺼이 받아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그렇게 배워온 하나님의 특성과, 쌓아나간 관계, 모든 과정 끝에 결국 내게 주셨던 감사한 결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다 보면 또 하루 더 기다릴 힘을 얻는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보다 크시고, 그 계획과 일하심은 내 인지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다. 그래서 때때로 도저히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고,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린 기도를 기뻐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길 원하시며, 그 과정에서 함께해주시고 다정히 인도하신다. 단지 그 순간 우리가 이를 잘 보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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