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에게 있어 스톱은
충동조절과 스톱의 관계
'스톱!‘
이 말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나 쓰이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니까. 나도 이 말을 자연스럽게 쓰는데 이 말이 꼭 필요한 순간이 늘 있다.
바로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려고 할 때다. 예전부터 나는 쇼핑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비싼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었고, 자잘한 물건들을 사서 엄마도 그저 '아, 얘가 쇼핑을 좋아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실 정도셨다. 그래서 내가 뭘 사든 적당히 사라고만 하시고 말리지 않으셨는데 어느날부터 내 쇼핑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변화는 산 물건을 또 사는 것이었다. 이어폰이 있는데도 또 사고 또 사고를 반복했고 그로 인해 엄마와 충돌하는 일도 잦아졌다.
두 번째로는 점점 물건을 사는 횟수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조금씩 오던 택배 상자가 이틀에 한 번, 하루에 한 번씩 오게 되자 엄마에게 늘 '이번에는 또 뭘 샀어?' 하는 말을 자주 들었고 나는 나대로 '다 필요해서 산 거야!'라고 팽팽한 신경전이 오고 갔다. 그렇게 점점 택배를 받는 횟수가 늘어나고 점차 물건의 수도 늘기 시작햇다.
세 번째로는 물건을 살 때 드는 비용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햇다. 처음에는 작게 쓰던 돈을 나중에는 점점 크게 쓰면서 물건을 여러 개 구입하거나 이어폰을 조금 더 비싼 걸 사는 등 물건을 살 때 들어가는 금액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어서 늘 엄마에게 '이것만 살게' 하고 약속을 매번하고 어기기를 반복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러는 줄 알았고, 엄마 역시 답답해하시면서도 놔두면 자연히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물건을 사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결국 내가 19년도에 조울증 진단을 받고서야 내 물건을 사는 행동이 왜 그러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조울증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때 선생님은 나를 조울증이라고 하셨고, 내가 물건을 많이 사는 게 조울증 증상 중 조증 증상에 해당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약을 먹어보자고 해서 약을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물건을 사려는 증상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태껏 쌓아둔 이어폰들이나 이런저런 물건은 정말 처치 곤란이었다. 그 당시에는 부끄럽지만, 이어폰이 20개가 넘었고 그것들이 있음에도 또 다른 이어폰을 사기를 반복했다. 한마디로 이어폰에 꽂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 점차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이어폰을 나눠주기도 하고 이번 년도 벼룩시장에 몇 개 내놓기도 하면서 조금씩 이어폰과의 이별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내게는 이런저런 이어폰이 10개 넘게 남아 있고, 아직 이 이어폰들과의 작별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약을 먹던 중 이번 년도 내가 조울증이 아닌 Adhd와 불안이 높은 것임을 알게 되면서 여기에서도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거나 돈을 무계획적으로 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내게 쇼핑은 영영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 같은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내 안에는 쇼핑에 대한 것만 있어서 물건을 계속 사야 되는 거라는 체념 아닌 체념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께 따끔한 지적을 받고서야 정신이 맑아졌다.
"지금 병아리 씨가 하는 행동은 어린아이와 같은 겁니다. 무슨 물건이든 다 가질 수는 없어요! 참는 것도 해야 합니다! 그걸 안 하면 어린아이와 같아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엇다. 나는 그저 포기하고 있었던 행동이 어린아이 같은 거였을 줄이야! 몰랐던 것을 알게 되자, 부끄러워지면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였다. 내가 물건을 사고 싶을 때나 갑작스러운 충동이 올라올 때, '스톱!' 하고 나를 멈추게 된 것은. 그렇게 멈추는 연습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을 때가 많이 있다. 지금도 물건을 사고 싶어지고, 그걸 안 사면 불안해지는 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사지는 않아도 그런 충동들이 올 때마다 여태 내가 뭘 한 건지, 내가 과연 잘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오늘도 그랬다. 노트북이 있음에도 Lg그램을 장애인고용공단에 빌리겠다며 엄마와 말싸움을 한 것이다. 그렇게 말싸움을 하고 내 자신에 대한 부적절한 감정들이 몰려와 울컥 눈ㅁ눌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열심히 참는데도 이렇게 충동이 올라오다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어 막연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노트북을 하기로 한 걸 취소 했다. 작은 취소일지라도 내가 내 자신을 또다시 스톱 시킨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내가 하는 게 옳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현재 진행형으로 충동 조절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걸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옆에서 누군가 나를 말려줘야 진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면 안도감과 함께 잘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 온다. 앞으로도 나는 충동 조절을 하기 위해 수많은 스톱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좌절할 수도 있고, 눈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내가 번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좋은 곳에 돈을 쓰고, 물건을 사도 좋은 물건을 사며 내 삶을 즐기고 싶은 게 내 소망이다.
오늘도 내게 스톱을 해 나를 멈춘 것처럼, 앞으로도 나 자신을 멈출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 한다. 두려워 하면 지는 거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에게 참 잘 했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나늘 토닥토닥 다독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