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을 능력이 안 되면 애초에 돈을 빌리지 말라
안 좋은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일까. 응당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긴 하다만, 파국의 상황에서 받은 상환기일 알림 문자는 더욱더 청천벽력 같았다.
‘벌서 1년이 흐른 것인가?’
나의 현재 상황을 직시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자산규모를 파악하는 일도 뒷전으로 계속 밀어 놓았지만, 상환 독촉 문자가 오니 차일피일 회피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엑셀을 켜고 현금화할 수 있는 모든 자산을 나열해 보았다.
계산을 해보니 당장 모든 주식을 매매하면 딱 빌린 돈의 90% 정도를 상환할 능력이 되었다. 상환기일에 맞춰 주가가 기적적으로 올라 대출원금만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진작에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거시적으로 증시 자체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상환일을 연기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 증시 분위기가 좋지 않지만, 언제까지 안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누구도 경제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일종의 희망을 품어보기로 했다. 찾아보니 다행히 상환을 1년 연장할 수 있는 카드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대출 상환을 연기했고, 나에게 마지막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을 여자친구는 알지 못했다. 여자친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내가 공모주에서 많은 자금을 잃었다는 것뿐이었다. 앞장에 설명했듯 여자친구와 나는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내커플이다.
그녀는 회사 자산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업무로 인해 외부에서 등기와 우편을 많이 받곤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우편물을 확이하던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은행에서 날아온 뜯겨 있는 우편물 하나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이게 뭐야?’
‘어.. 그게 왜 여기 있어?’
‘제정신이야? 대출을 왜 받은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돈을 왜 빌린 거냐고, 똑바로 말 안 해?’
‘...’
얼굴이 화끈거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따가 퇴근하고 설명할게...’
결국 나는 본의 아니게 모든 사실을 실토했다. 우리는 아직 법적으로 맺어진 부부관계는 아니었지만, 엄연히 결혼을 약속한, 아니 결혼식 날짜까지 정한 예비부부의 관계였다. 당신이라면 예비배우자가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고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원금을 몽땅 잃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모든 것을 실토하며,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떠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변명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나는 ‘잘해보려고’ 그런 일들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여자친구에게 그 순간은 아마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표정과 언행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무릎을 꿇었고, 사죄했다. 그리고 내가 한 일들에 책임을 지기로 했다. 무슨 일이든 해서 꼭 이 상황을 타개하겠노라고 말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그녀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
어떻게 보면 이 비극의 요소요소가 겹겹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그녀라는 존재는
나에게 있어서 한 줄기 희망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