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청약 당첨, 그러나...
시장에서 찬밥 상태가 된 지도 어언 6개월째, 우리에게 한 줄기 희망을 주었던 사건이 있었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주택청약’에 당첨된 것. 이미 입주가 완료된 단지에서 계약취소 물량이 나온 일명 '줍줍청약'에 당첨된 것이었다. 청약 경쟁률은 무려 500:1이었고, 입지가 좋은 환경이라 시세차익만 해도 무려 몇 억 단위였으니. 그간 주식시장에서 까먹은 돈을 채우고도 남을 만한 그야말로 ‘로또청약’에 당첨된 것이다.
청약을 넣기 전 이주 전까지만 해도 반대매매를 당하지 않기 위해 청약통장을 해지한 돈을 예수금에 넣을까 망설였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대신 신용 물량을 조금 청산하는 선택을 했기에 망정. 이는 그야말로 하늘의 '축복'이었다.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가. 여자친구와 나는 당첨이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당첨문자를 확인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곧바로 분양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서류제출을 위한 안내 연락이었다. 이것이 꿈이 아니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어렵다는 주택청약을 단 두 번 만에 당첨된 것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을 달리 형용할 말이 없었다. 얼떨떨 했고, 또 믿기지 않았다. 그간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그저 감사하고 감사했다.
당첨발표 일주일 후 우리는 분양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하러 갔다. 분양사무소에서 우리를 맞은 직원분께서 '정말 축하드린다'며 꼼꼼하게 서류를 확인해 주셨다. 분양가도 2020년도 공고기준이었으므로 현재 시세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물론 저렴하다 해도 최소 5억 원 이상이었다) 계약금도 낼 형편이 안 되는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상황이었지만, '내 집'이 생길 거란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서류 제출 이후 한국부동산원의 서류 심사 평가를 기다렸다. 가점사항과 소득, 청약납입 기한 등의 요건 등을 잘 충족하고 있는지를 심사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어떠한 소명 요구가 없다면 우리는 계약을 할 수 있는 신분이 되는 것이었다.
서류 제출 후 일주일이 흘렀고, 우리는 희망에 부푼 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자격 요건에 어떤 '결함'이 없음을 다시 확인한 상태였고, 소명 요구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미래의 우리가 살 집도 방문해 보았다. 신도시여서 그런지, 도로가 깨끗했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다. 지금 사는 곳이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면, 당첨된 그 지역은 전혀 상반된 느낌이었다. 계획도시의 냄새가 물씬 났다. 아무렴 어떤가, 평생을 구도심, 구주택에서 살다가 신축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근무 중 당첨문자가 왔던 그 발신번호로 또 한 번 문자가 왔다.
제목은 '부적격자 소명자료 제출 요구'였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자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1세대 중복청약으로 인한 당첨 부적격 소명 요구에 관한 것이었다. 예비신혼부부는 법적인 부부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중복청약에 해당되었던 것이다. 여자친구와 나 모두 같은 단지에 청약을 넣었었고, 그것이 화근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운을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우리에게 시련이 닥칠 거라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당첨이 되고 그간 품었던 모든 희망과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우리는 또 한 번 가슴이 답답해 오는 그 절망적인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하늘이 왜 이렇게 나에게 시련을 주는 것인지, 원망스러웠고 또 비참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항상 이런 결말이란 말인가. 가슴이 아프고 아팠다. 퇴근 후, 도저히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여자친구와 함께 외출을 했다. 차를 렌트하여 정처 없이 배회했다.
한적한 어느 곳에 도착하여 잠시 정차를 했다. 하루 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피곤함이 몰려왔다. 여자친구는 기어코 울음을 터트렸다.
‘잘 될 거야. 괜찮아. 내가 미안해.’
‘다시 할 수 있어. 힘을 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은 이러한 것들 뿐이었다. 당시엔 이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의 감정을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 느꼈다. 실제로 그날 악몽을 꾸었고, 하늘에 대한 원망은 그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또 괜찮아지더라.
살아지더라. 또 다른 것을 할 기운과 의지가 생기더라.
사실 우리는 잃은 것이 없었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더 가까워졌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더 깊어졌으며 끈끈해졌다.
중요한 건 집이 아니었다.
일생을 함께할 사람과 그저 ‘함께’ 한다는 것 자체,
그녀를 발견한 것이야말로 지금에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나에게 뜻밖의 행운이었음을,
나는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