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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Nov 30. 2023

런던에 부는 K-열풍, 놀라워라 [런던라이프]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11 런던에 부는 k-열풍  

하지만 런던은 몰타와 차원이 완전히 달랐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11 런던에 부는 K-열풍을 실감하다 



+ 오징어 게임과 올드보이가 교재에 나오다니- 


몰타는 워낙 작은 나라고 어학연수로 온 친구들이 대부분 남미에서 왔고 나이도 40대 이상이 많다 보니 그들에게 한국문화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기에 K-드라마 열풍을 그때까지만 해도 실감하지 못했다. 몰타에 있는 동안 딱 한번 카페에서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직원이 한국에서 왔냐고 묻길래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한국어를 조금 알아듣는다고 해서 엄청 신기했던 적이 있었다.  런던도 몰타와 크게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런던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어학원 수업시간에 타이틀로 '오징어 게임(Squid Game)'이 떡하니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누구도 아닌 한국인인 내가 가장 놀랐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오징어 게임이 대박이 났고 특히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다는 뉴스는 숱하게 봤지만 수업 교재에 오징어 게임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제목이 주어지자 반 친구들 대부분은 '오징어 게임'을 봤다고 하는 것이 내가 더 놀랬다. 실은 나는 넷플릭스 회원이 아니라 유튜브 요약본으로 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내용에 관해 토론을 하는데 정작 한국인인 내가 보지를 않아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게 상상이 되냐 말이지.  


또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 시간에 듣기를 하는데 'Old Boy'가 나오길래 설마 그 올드보이는 아니겠지 했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문어 씬과 미국에서 리메이크가 된 것까지 이건 틀림없는 올드보이에 관한 내용이었다. 세상에-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가 어학연수 교재에 나오다니, 정말 상상도 못 했다. 


20대 때만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사우스냐 노스냐를 묻던 시절을 경험했던 옛날 사람인지라 전 세계인이 BTS나 블랙핑크에 열광하고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게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넷플릭스 등을 통해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가 대박을 쳤다는 걸 뉴스로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영어 교재에 한국 드라마와 영화 관련 내용이 나온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근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수업시간 교재에 오징어게임과 올드보이가! 



어학원으로 향하는 튜브에서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뭔가를 너무 열심히 보고 있어서 도대체 뭘 보고 있나 궁금해서 쳐다봤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 저 장면 나도 봤던 장면인데.. 에이 설마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라며 혼자 피식 웃으려던 찰나...


'이보영이잖아!!!!!!' 


런던 지하철 안에서 외국인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고? 이게 말이 돼?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좀 특별하겠거니 생각을 했었다. 이후에 런던 사람들과 함께 트레킹을 다녔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색을 하며 나에게 다들 한 마디씩 건넨다. '우영우'를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보지 못했던 드라마 혹은 영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K 컬처가 인기라는 뉴스를 보기는 했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 해외를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체감을 할 수는 없었다. 어찌 보면, 런던은 가장 최신의 문화 트렌드를 이끌어 간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곳에서 관련업계 종사자도 아닌 일반 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를 즐기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긴 했다. 

런던 튜브에서 드라마 '화양연화'를 보고 있는 런더너
지하철에 광고판에 런던 개봉을 앞둔 '헤어질 결심'의 영화 포스터! 


런던 거리에서도 한국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런던의 가장 메인 거리이자 만남의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피카딜리 서커스의 전광판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광고를 보고 있자니 가끔은 내가 명동에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낮에는 삼성이, 밤에는 현대자동차가

 또 어느 날은 런던 튜브 중 가장 최신인 엘리자베스라인 튜브 역사에서 '서울 버드'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지하철 역사 안에서 한글이라니 싶어 너무 반가웠다. 살짝 출출하기도 해서 어떤 음식을 파는 곳인가 가보니 치킨 종류였고 메뉴 중에는 소주도 있었다. 이미 영업시간이 끝난 터라 아쉽게도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이제 런던 지하철 상가에서도 한국 음식점을 만날 수 있구나 싶어 새삼스러웠다. 

엘리자베스라인 역사 안에서 만났던 한국 음식


+ 한국 마켓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집 근처에 있어 자주 이용했던 테스코는 우리나라에서 까르푸로 한때 인기 있던 슈퍼마켓이라 내게는 다른 곳보다 익숙했다. 게다가 아시아 식품 코너에는 다양하지는 않아도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라면, 장류 등이 항상 구비되어 있었다.  


정말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는 런던이니 각 대륙별 고유 식품 코너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기에 아시안 식품 코너의 70%를 한국 식품이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한국음식이 굉장한 인기라는 반증일 터. 핀즈베리파트 일대는 한국인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라면 등 한국 식품들은 의외로 인기 제품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런던에 있는 동안 굳이 아시안 마켓을 찾을 필요가 없었는데 그건 런던 시내 한복판에 한국 마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스코 아시안 식품 코너의 반이상은 한국제품


+ 인기 만점 한국 마켓, 오세요 

뮤지컬 극장이 몰려 있는 레스터스퀘어 역은 한국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번화한 거리인데 이곳에 다양한 '한국' 가게들이 모여 있다. 항상 긴 줄이 늘어선 곳은 런더너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분식'이다. 한국인 입장에선 대부분 메뉴들이 가격이 워낙 비싸 굳이 줄서가며 사 먹을 이유가 없지만 런더너에게 긴 줄을 서고도 먹어야 할 핫플레이스라는 것도 신기했다. 


근처에는 한국 마트 두 곳이 나란히 있는데  런던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오세요'와 '서울플라자'다. 맞은편에는 '네이처 리퍼블릭'과 한국 화장품 편집숍인 'PURESEOUL Soho • Korean Beauty Shop'이 나란히 위치한다. 당연하게도 그 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았다. 런던 번화가 한가운데 한국 식료품점과 화장품 숍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니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인가 싶었다. 


몰타에도 아시안 마켓에 한국식품이 있었기에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지만 런던은 아예 한국 마켓이라는 점에서 차원이 달랐다. 몰타에서 구할 수 없었던 믹스커피도 있고 특히, 김치 담글 때 진짜  아쉬웠던 절임용 굵은소금을 보니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몰타에선 만두에 국한되었던 냉동식품도 다양하고 찹쌀가루, 콩가루, 옥수수 전분 가루 등 없는 게 없었다. 한국 공산품도 있고 무엇보다 외국에서 은근히 구하기 힘든 봉투까지 있으니 한국 마켓을 그대로 옮겨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 슈퍼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런던 오세요


심지어는 반조리 식품도 다양했는데 런던이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추어탕을 사다가 끓여 먹기도 했었다. 몰타에서는 한국 쌀이 없어서 일본 쌀을 먹었는데 런던에서 한글로 산수갑산이라고 적힌 쌀로 밥을 짓고 남원 추어탕을 먹을 때는 내가 한국에 있다는 착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어학원에서 특별히 기념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가령 레벨시험 통과를 했다거나 반이 바뀐다거나 할 때 초코파이 등 한국 과자를 사서 반 아이들에게 돌렸는데 인기폭발이었다. 


타국 생활이 길어지면 몸에 탈이 나기 마련인데 런던에서도 한국에서 사는 것과 진배없는 식생활 덕분에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다만, 가격이 너무 사악했다.  

런던에서도 포기못한 한식파인 나란 여자.


+ 인기 폭발한 한류 전시 


런던에 머무는 기간 동안 VA 박물관에서 한류 전시가 있었다. 마침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겸사겸사 방문했었다. 한류 문화를 체험하는 유로 전시였는데도 입장대기를 기다릴 만큼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국 뉴스에서도 VA 박물관의 한류 전시가 외국인들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궂즈숍도 따로 있었는데 여러 상품들 중 눈에 띈 건 출판물이었다. 한국을 소개하는 소책자였는데 한국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나 문화현상을 담고 있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이 코너를 방문한 외국인들 (어쩌면 당연한)은 때때로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VA 박물관의 한류 전시


+ 전방위적으로 넓어지고 있는 한국 문화 


한국 문화의 인기는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한식이 전부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한국문화가 좀 단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한국 예술가들 중에는 이미 런던 예술계에서도 주목하는 작가들도 많은데 지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친구 중에 작업을 하는 목수가 있는데 때마침 런던에서  초대전이 있었다. 작품 중 상당 부분은 이미 판매가 된 상황일 정도로 그의 작품들은 인기였다. 한국에서 봤던 목수의 작품을 런던 공예박물관에서 보고 있자니 내가 있는 곳이 인사동이 아니라는 사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나무를 통째로 깎아내고 한 땀 한 땀 모든 공정을 기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을 생각하면 흡사 도를 닦는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런던에서 그의 작품에 주목한 건 바로 그 '구도의 행위'였다. 런던은 요즘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뿐 아니라 예술에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의 진가를 알아본 런던이 너무 고마웠다. 

런던 전시장에서 만난 목수의 작품들이 너무 반가웠다.


+ 러셀 스퀘어에서 한국영화를 더빙 없이 볼 줄이야. 

런던에서 한국 영화를 볼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레스터 스퀘어 오데온 극장에서 진행된 런던 아시아 영화제에서 배우이자 감독인 이정재 주연의 '헌트'가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SNS에서 영화제 소식을 접하고 바로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제 개막작이 상영되는 영화관 안에는 이정재 배우 출연작인 오징어 게임의 캐릭터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있어 관객들의 사진 요청이 줄을 이었다. 레드카핏 행사는 보지 못했는데 많은 팬들이 몰렸다고 한다. 영화 관람에 앞서 이정재는 아시아 영화의 위상을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리프 어너러리 어워드’를 수상했고, 이정은은 ‘리프 베스트 액터상’, 임시완은 ‘라이징 스타상’을 받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 관람 후에는 GV도 진행됐다. 


런던 극장가에 한국 영화가 상영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나에겐 정말 뜻밖의 행사였다. 런던을 떠날 즈음에 또 한 번의 눈길을 끄는 일이 있었다. 어학원이 있는 엔젤 역 지하철에 굉장히 익숙한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 '헤어질 결심'이었다. 런던에서 개봉을 앞두고 홍보 현수막이 지하철에 붙어 있었던 것. 한국에서는 2022년 6월 개봉이었고 런던에서 2022년 10월 개봉이니 한국 상영 끝나고 바로 해외 상영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런던아시아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헌트, 이정재, 이정은, 임시완 배우의 개막식 참석 


+ 출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다운트 서점(Daunt Books)은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다운트 서점 북백이 런던 여행 기념품으로 인기가 많다. 런던을 떠날 때 기념품으로 뭘 살까 고민하다가 다운트 서점에서 책을 사기로 하고 서점을 찾았는데.... 이게 뭐야. 서점 입구에는 '파칭코'라고 한글이 있는 책으로 모두 진열해 놓은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책이 얇아서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요약본인 줄 알았는데 다운트 서점에서 출판한 '파친코 팔러(Pachinko Parlour)'였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프랑스 작가인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의 두 번째 소설이다. 내용은 이민진 작가의 소설처럼 한국 전쟁 당시 일본에서 거주하며 파칭코를 운영하는 조부모가 있는 도쿄를 방문했을 때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인데 작가 자신이 겪은 이민, 삶의 정체성 등이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책이었다.  


한국의 아픈 근현대사가 한 가족의 정체성에 고스란히 담긴 내용의 이야기가 런던 유명 서점에서 출판되어 메인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생소한지. 어학원을 마치며 선생님께 다운트 북스에서 구매한 '파칭코'를 선물했는데 선생님은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을지 몹시 궁금하다.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런던 인기 서점 메인 매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 와- 한국 사람을 만나다니!!   


한 번은 내셔널 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을 걸어가는 데 소녀 두 명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말을 걸지도 못하고 쭈뼛거리다가 용기를 낸 소녀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맞아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소녀들은 갑자기 돌고래 소리를 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흡사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그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마치 톱스타를 만난 것처럼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했고 멀찍이 떨어져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다. 


이런 소녀들의 반응이 믿기지 않았다. 런던에서 누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는데 과장해서 한 말이겠거니 했다. 사인까지는 아니어도 단지 그들이 좋아하는 K-pop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동경의 대상을 만난 것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까지 빨개지는 소녀들이 진짜로 내 앞에 있었다. 


그녀들은 몰랐겠지. 


런던에서 K 열풍이 이 정도일 줄 몰랐던 내가 더 놀랐다는 사실을.  



+ 다음 이야기 : 콜드플레이 공연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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