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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ul 12. 2024

카파도키아, 튀르키예 여행의 화룡정점,

#16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16. 카파도키아, 튀르키예 여행의 화룡정점 


튀르키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은 이스탄불도 아니고 안탈리아도 아니고 카파도키아였다. 비현실적인 풍경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카파도키아에서 원했던 건 단 하나,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며 열기구인 벌룬을 타고 카파도키아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3일을 카파도키아에 머물고도 11월의 날씨는 바람이 강해 벌룬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파도키아 벌룬은 튀르키예 여행의 화룡정점이라고 했기에 벌룬을 타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카파도키아는 그 자체만으로도 튀르키예 여행의 화룡정점이었다. 

화산이 쌓이고 시간과 바람이 만들어낸 자연의 합작품, 카파도키아!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카파도키아가 그렇게 넓은 곳일 줄이야 

메마른 지형에 희한하게 생긴 바위들이 즐비하고,  바위를 파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문명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 보였다. 튀르키예를 여행지로 결정하게 된 것은 어쩌면 이스탄불보다 카파도키아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튀르키예 중동부에 위치한  카파도키아는 가보기 전에는 그렇게 크고 넓은 땅인지 몰랐다. 지도를 봐도 상당한 넓이인데 동서로 최대 400km, 남북으로 최대 250km에 달하는 곳이다.  그냥 단순히 좀 넓다, 크다라고 하기에 우리나라로 치면 동서로는 서울 부산이고 남북으로는 서울 대구까지인 거리인 셈이다. 


네우세히리를 기점으로 괴레메, 위르깁, 아바노스 등이 위치하는데 각 마을마다 이동거리도 상당했다. 처음에는 카파도키아에서 3일(정확하게는 꽉 찬 2일)의 시간이 꽤 길다고 생각했는데 볼거리도 많은데 이동에도 시간이 걸리니 3일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카파도키아의 특이하고 신비로운 자연환경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트레킹이 필수란 생각이 들었다. 카파도키아가 트레킹이 가능한 곳이란 걸 전혀 몰랐던 나로서는 뒤늦은 후회를 했었다. 카파도키아는 워낙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여행지라 현지에서도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중에는 트레킹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외국 여행자들의 경우 카파도키아에서 일주일 이상을 머물며 트레킹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꼭 현지 투어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카파도키아가 워낙 넓은 곳이라 렌터카를 빌려 지역별로 나누어진 관광지도를 참고해서 자유여행으로 카파도키아를 여행해도 좋을 것 같았다. 겨울로 접어들면 바람이 많이 불어 한 달에 벌룬이 뜨는 날이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이번 여행에서는 벌룬 체험도 못했다.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벌룬도 벌룬이지만 카파도키아 트레킹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카파도키아였다. 



카파도키아 관광지도. 카파도키아는 지역별로 나누어 투어가 이루어진다.   



+ 차원이 다른 지하도시, 데린쿠유 

미로처럼 연결되어 땅 속을 연결한 지하도시를 도식화한 그림을 봤을 때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저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실지로 그런 도시가 있었고 그곳이 바로 카파도키아의 데린쿠유였다. 


데린쿠유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하자면 총규모는 지하 20층 깊이에 대략 120m까지 거대한 지하도시로 현재는 안전을 위해 8층까지만 개방을 하고 있다. 총 수용하는 인구는 2만여 명은 족히 되는 어마어마한 곳인데 실제 관람하게 되는 것은 전체 면적의 10% 정도라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주거 공간은 물론이고 원형극장, 감옥, 학교 지하에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도시나 다름없다.  


지하에 어떻게 저런 공간을 만들 수 있나 잘 상상이 되지 않는데 그건 이 일대가 대규모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지형이라서 가능했다. 화산재와 용암으로 뒤덮였던 곳은 오랜 시간 침식작용으로 응회암층이 형성됐고 이 암석은 단단하지 않아 간단한 도구나 사람 손을 이용해서 쉽게 굴을 파낼 수 있었다. 실제로 카파도키아 곳곳은 데린큐유 외에도 약 40여 개의 지하도시가 있는데 현재 관람객들에게 개방되는 곳은 단 2곳으로 데린큐유가 규모가 가장 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데린쿠유 구조 
데린쿠유 입구


아래로 내려가니 길을 잃지 않도록 화살표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한 사람정도 겨우 지나갈까 말까 한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끊임없이 공간이 이어지며 지하세계로 이끈다. 이곳은 혼자서는 관람이 힘들기에 주로 가이드와 함께 돌아보게 되는데 미로처럼 복잡하니 절대로 한눈을 팔아서도 안된다는 당부는 빠지지 않는다. 


지하도시를 만들기 시작한 건 소아시아 반도에 정착한 히타이트 시대부터라고 추측하고 있다. 처음에는 추운 날씨와 날짐승을 피할 목적이었던 것이 이후에는 대부분의 지하도시가 그렇듯 이곳도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곳이다.  이 지하도시는 우물을 파다가 우연이 발견됐다고 하는데 '데린쿠유'라는 이름도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다. 데린쿠유의 입구는 작은 창고 정도 크기라 언뜻 봐서는 이 밑으로 엄청난 지하공간이 있다고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원래는 지하도시 위에 마을이 있었는데 기독교 박해가 심해지면서 땅 위의 마을은 건물만 있을 뿐 유명무실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도시에서 생활을 했다. 또한, 적들이 쳐들어 오면 지하도시 입구를 차단했고 설사 입구를 발견해 적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미로처럼 만들어진 꼬불꼬불한 좁은 통로를 파괴하면 되는 구조니 방어를 위한 최적의 장소였겠다. 

미로 같은 데린쿠유 입구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화살표를 잘 따라가야 한다.


지하 8층까지 볼 수 있다는 데린쿠유였지만 지하공간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이동하는 순간 내가 지하 몇 층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어디만큼 내려간 것인지 신기하게도 공간감각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저 화살표를 따라 앞사람을 따라 앞으로 걸어갈 뿐. 나중에는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것 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지하도시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데린쿠유가 얼마나 깊은지보다 빛이 사라진 곳에 굳이 사용이 필요 없는 신체의 감각들이 본능적으로 일시에 퇴화하는 것이 더 놀라웠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큰 규모의 지하도 시답게 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어디고 공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 통로는 또 다른 지하도시와도 연결된다는데 그 길이만 족히 10km가 넘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일 뿐. 엄청난 규모라는 데린쿠유였지만 그렇게 놀랍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카파도키아에 오기 전 몰타에서 지하무덤인 '카타콤'을 이미 경험했었고 그때 충분히 놀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몰타의 카타콤과 데린쿠유의 지하무덤과는 규모도, 차원도 비교가 되지 않지만 뭐가 됐든 '처음'을 이기기는 힘들구나 싶었다. 

전체 규모의 약 10% 정도로 현재는 지하 8층까지만 공개되고 있다.



+  피죤 밸리, 바위 속을 파내 만든 도시, 우치히사르(Uçhisar) 성채. 


개인적으로는 지하도시보다 산처럼 우뚝 솟은 바위를 파내고 집을 만들어 놓은 우치히사르 성채가 더 신기했다. 카파도키아 곳곳은 우치히사르처럼 돌을 파내 집 혹은 성당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우치히사르 일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형이 꽤 높은데 해발 1,270m로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성채의 가장 높은 곳에 서면 전망 하나는 끝내주겠다 싶었다.  


이곳은 15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동로마인들의 피난처로 사용된 곳인데 지금도 여전히 생활하고 있는 곳이라는 게 더 놀라웠다.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특이한 지형 탓에 동로마 시절의 모습이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내부는 10개 층이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최초의 다층 주택 혹은 아파트라고 봐도 좋겠다. 


성채와 그 아래에 위치한 집들은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성채가 잘 보이는 곳은 사진을 위한 구조물을 설치해 두고 돈을 받고 있었는데 관광지는 관광지구나 싶었다. 

바위 안을 파내 약 10층 높이의 공간이 있는 우치히사르 성채
사진 찍는데 10리라, 우리 돈으로 약 400원. 
피존밸리 

우치히사르 성채도 성채지만 그 옆 계곡으로 버섯을 모아둔 것처럼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바위들이 더 신기했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된 곳이라 그런지 계속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곳은 비둘기 둥지가 많아서 원래이름 대신 피존밸리(Pigeon Valley)로 불린다. 다른 지역과 달리 비둘기가 이 지역에 몰려 있는 것은 포도 농사에  거름으로 비둘기 변을 사용하기 위해서 주민들이 일부러 비둘기를 키웠다고 한다. 지금도 비둘기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비둘기도 비둘기지만 자세히 보면 이곳에도 바위를 파내고 집을 만들어 놓은 것은 봐도 봐도 신기했다. 어떤 곳은 구멍만 뚫어 놓은 곳도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느낌이 좀 독특했다. 구멍이 뚫린 곳으로 정면으로 우치히사르 성채가 근사하게 보인다. 


잠깐 머물다 가는 이방인의 눈에 비치는 풍경은 낭만적이지만 하루도 아니고 평생을 그 흔한 편의시설 따윈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곳이 어디 이곳뿐이랴. 지구 반대편 어디선가는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오늘도 삶을 이어가고 있겠지. 

동화 같은 피존밸리
피존밸리에서 바라본 우치히사르 성채 


+ 괴레메 야외 박물관,  동굴교회  

튀르키예 언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지명 자체가 생소하지만 특히 '괴레메'는 정말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레메'는 '보이지 않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 박해를 피해 입구를 보이지 않게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버섯같이 생긴 바위들을 파내고 혹은 지하도시를 만들었던 이유가 기독교 박해를 피하고자 했는데 괴레메 야외박물은 이 일대가 전부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교회가 모여있는 곳이다. 대략 365개 정도의 교회가 있는데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것은 약 30 여개 정도다. 성 바실리우스 교회, 사과 교회, 뱀 교회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 기억하기는 힘들었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동굴 안쪽이나 천장의 프레스코화다. 어떤 프레스코화를 어느 교회에서 볼 수 있는지 입구에 따로 설명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괴레메 야외박물관에는 바위를 파낸 곳에 약 30여 개의 교회가 있다. 


대략 10세기 정도에 이곳에 교회가 만들어졌으니 어림잡아도 천 년은 족히 넘은 곳이니 프레스코화가 온전할 리는 만무했다. 어떤 곳은 너무 많이 훼손된 곳도 있고 그나마 보존상태가 좋다는 곳도 완전하지는 않았다. 그런 연유로 야외는 사진촬영이 가능하지만 실내의 경우 프레스코화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동굴 교회는 전부 안내원이 지키며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크게 봐야 할 몇 군데는 가이드가 함께 다니며 설명을 해줬고 나머지는 자유관람이 이어졌다. 외형적으로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교회를 보기 위해 언덕을 올랐다. 바위를 파내고 정교하게 다듬은 교회 건물은 감동적이었다. 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는 붉은색의 안료가 선명하다. 벽면에 그림은 다행히도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지만 유독 얼굴만은 훼손이 심하다. 이슬람의 성상파괴는 이곳도 피해 가지 못했나 보다.  

바위를 파낸 곳에 교회를 만들었다. xㅡㄱ
유독 얼굴 부분만 훼손이 심하다 

그동안 몰타, 런던, 이탈리아의 로마와 피렌체 등을 거치는 동안 워낙 많은 것을 봐서 그런지 동굴 교회는 그냥 소소했다. 언덕 위에 지어진 교회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교회를 보고 내려가기 위해 뒤를 돌아섰는데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와 -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스타워즈의 모티브가 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초록이 하나도 없는 메마른 풍경이라서 더 극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때가 11월 말인데 다른 계절이라면 초록색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초록이 있고 없고 와는 상관없이 비현실적인 풍경은 매 한 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이곳이 스타워즈 촬영지라고 많이 알려져 있긴 한데 실제 스타워즈의 모티브로 삼은 곳은 맞지만 실제로 이 풍경을 영화에 담아낸 건 아니라고 한다. 튀르키예 정부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아 실제로 카파도키아에서 촬영은 하지 못했다고.  내가 스타워즈 감독은 아니지만 나 역시  '지구별이 같지 않은 풍경이 내 눈앞에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 사람 보는 눈은 매 한 가지인가 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자연이 카메라에 안 담아진다고 종종 느끼곤 하는데 이곳은 사진에는 담을 수 있지만 사진만으로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곳이었다. 이 자리에 서서 직접 눈으로 봐야만 느껴지는 신비로움과 웅장함은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타워즈의 모티브가 된  곳 


+ 어쩌면 스머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파샤바 계곡 

스타워즈의 모티브가 된 괴레메 야외박물관에 이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파샤바 계곡'이다. 이곳은 송이버섯을 길게 잡아당겨 놓은 듯한 바위들이 많아 '요정의 굴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입구에서부터 바위가 있는 곳까지는 조금 걸어야 했는데 버섯집들이 늘어선 풍경이 굉장히 익숙했다. 


입구에 있던 바위들은 구멍이 없어서 이곳은 그냥 바위들만 있나 싶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이 바위들도 어김없이 구멍을 파내고 집이나 교회로 이용했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파샤바 계곡도 괴레메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괴레메 야외박물관의 바위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의 바위들이라 그것이 더 신기했다. 외부에서 볼 때보다 버섯 바위를 파낸 안쪽에서 바깥쪽을 바라보는 풍경은 더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 보지 않아서 파샤바 골짜기가 어디까지 어떻게 뻗어 있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입구에 있는 바위들 구경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다. 


실은 피존 밸리에서부터 버섯바위들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스머프'였는데 실제 '개구쟁이 스머프'에 등장하는 마을의 모티브가 된 곳이 여기였다. 벨기에 만화가인 피에르 클리포드가 파사뱌 계곡의 바위에서 영감을 얻어 '개구쟁이 스머프'라는 만화를 탄생시켰다. 실제 바위를 보고 상상력을 추가한 스머프 마을이 아니라 이곳을 스머프 마을로 그대로 옮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마저도 흡사했다. 과장을 조금 하자면 서인지 버섯바위 사이로 돌아다니다 보니 어디선가 '똘똘이 스머프'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스머프를 본 지도 수십 년이나 지났는데 버섯바위들이 나를 순식간에 '랄라라 랄라라 스머프~' 노래를 따라 부르던 어린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추억이 힘이 센 걸까. 자연이 힘이 센 걸까. 

개구쟁이 스머프의 모티브가 된 '파샤바 계곡'


파샤바 계곡에서 레드 밸리로 향하던 중에 꼭 보고 가야 하는 것이 있다면서 어디에선가 차를 세운다. 괴레메 지역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있자니 꼭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기저기 신기하게 생긴 바위들 투성이었다. 데브렌트 계곡(Deverent Vadisi)도 그중 한 곳이었다. 


이곳은 입장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바위들이 밀집해 있는 곳들과 달리 이곳은 특이한 바위들이 한 두 개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이곳에 차를 세운 사람은 우리 일행들 외에도 꽤 많았는데 그것은 바로바로 '낙타바위'때문이었다. 여러 바위 중에 '낙타바위를 찾아라'라고 하고 말 것도 없이 보는 순간 


'와 신기해! 낙타를 닮았네.'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고작 바위 하나를 보기 위해 차를 세운 것이냐고 하겠지만 반드시 보고 인증숏을 남겨야 할 만큼 특이한 바위였다. 사람이 손으로 깎아 만들라고 해도 쉬운 작업은 아닐 텐데 바람, 비, 시간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어우러진 합작품은 또 한 번의 경이로움을 선물했다.

데브렌트 계곡 낙타바위 


+ 달에 못 가면 어때 로즈 밸리(Rose Valley)가 있잖아.  

낙타바위까지 보고 나니 실은 감흥이 점점 무뎌지고 있는 중이었다. 전부 다 다르게 생긴 버섯 바위들을 하루 종일 보고 있으니 처음과 달리 감탄이 줄어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오늘의 마지막 장소 레드 밸리를 향할 때만 해도 여태 보았던 괴레메의 또 다른 버전 정도겠거니라고만 생각했다. 오프로드를 달리는 기분을 느낄 정도로 차는 거의 정상부에 도착해서야 우리를 내려놓았다. 


하루 종일 보았던 풍경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 풍경은 또 뭐란 말인가.  


'숨이 막히는 풍경.'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했던 문구가 떠올랐지만 이 말 외에는 나로서는 도저히 더 생각나는 표현이 없었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던 로즈 밸리
로즈 밸리를 트레킹 하는 사람들 


이렇게 멋진 로즈 밸리를 나보다 앞서 본 사람 중에 나보다 몇백 배나 멋진 감탄을 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닐 암스트롱이다.  그는 로즈 밸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진작에 카파도키아에 왔더라면 달에 가지 않았을 텐데"

 

닐 암스토롱이 누군가.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찍어 인류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그였지만 달보다 로즈 밸리를 선택했을 정도니 로즈 밸리를 내가 무슨 말로 더 치장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죽을 때까지 달에는 가볼 수 없겠지만 레드밸리가 있으니 그것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즈 밸리 언덕에 있는 카페는 최고의 뷰포인트 
달에 못 가면 어때 레드밸리가 있는데


로즈 밸리에 감동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저세상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사진을 얼마나 찍어댔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몰이 시작됐는데 하얗던 바위가 서서히 붉은색으로 물이 들기 시작했다. 이 계곡의 이름이 로즈 밸리 혹은 레드 밸리는 불리는 이유였다. 


오늘 하루종일 다니면서 본 신기한 풍경들은 이내 머리에서 지워지고 오직 로즈 밸리 풍경 하나만 남았다.


오랜 시간 이어진 화산의 폭발로 수만 수천 년 동안 화산재로 뒤엎여 있던 곳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신비롭고 다양한 모습의 바위를 만들어낸 카파도키아. 그 바위를 파내는 기발한 생각으로 척박한 땅에서 생명을 이어나갔던 카파도키아의 사람들.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합작의 예술품이 바로 내가 본 카파도키아였다. 그런 이유로 유네스코에서는 1985년 카파도키아는 지역전체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지금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이 바위들도 더 깎여나갈 것이고 그러다 최종적으로는 무너져 땅으로 내려올지도 모른다. 인류는 엄청난 호들갑으로 난리가 나겠지만 그것 또한 자연이다. 부디 이 모습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로즈 밸리에서 저무는 해를 보며 모처럼 오랫동안 상념에 잠겼다.   

장밋빛으로 물들어가는 로즈밸리는 카파도키아 최고의 풍경이다. 


일출, 일몰 모두 아름다운 로즈밸리


오늘은, 오늘은 하면서 3일이나 있으면서도 결국 벌룬은 타보지 못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마지막 날, 마지막 풍경으로 봤던 로즈 밸리가 있어서 그 아쉬움마저도 괜찮아졌다. 카파도키아에서 벌룬도 타고 트레킹을 할 날을 기약하며 카파도키아를  떠났다. 


괴레메의 밤 


+ 다음이야기 : 고대 로마를 보고 싶거든 튀르키예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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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시리즈

 런던 어학연수와 런던 생활에 관한 이야기


몰타 어학연수와 몰타 생활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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