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여의도에 있는 고객사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12월 중순까지 일했다. 컨설팅 일을 시작하고 가장 오랜 기간 진행한 프로젝트다. 내가 맡은 업무는 글로벌 기업의 홈페이지 개편을 국가별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품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고객사의 기대 수준에 맞는 산출물 제작, 개발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해외 법인 및 사업부 클레임 대응 등 여러 업무를 종합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생소한 시스템 용어와 고객사 내부 상황을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큰 회사다 보니 업무 하면서 상시로 사용하는 시스템이 산재돼 있었다. 이를 통합하기 위해 신규 시스템을 구축하는 거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결국은 대체할 수 없는 핵심 기능들이 있어 통합이 아니라 시스템 하나가 추가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회사 내부에서 영업/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사업부와 해외 법인의 목소리를 하나로 담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사업부가 우선이라 생각하여 사업부와 협의하여 진행하지만 정작 사이트 오픈 후에는 (성난) 법인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었다.
6월 영국 사이트 오픈을 시작으로 일본, 싱가포르, 태국, 카자흐스탄, 캐나다, 독일, 포르투갈, 사우디, 칠레, 콜롬비아, 페루,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 전 세계 사이트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오픈해 갔다. 처음 영국 사이트를 오픈했을 때는 감격스럽고 마냥 기뻤으나 차츰 알게 되었다. 사이트가 문을 연다는 것은 헬게이트가 열리는 일이며, 잠재적인 위험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뜻이라는 것을.. 오픈하는 사이트가 늘어갈수록 세계 각국에서 클레임이 쏟아져 나왔고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일을 했다. 오늘은 또 어느 사이트에서 무슨 문제가 벌어질까 하고. 처음에는 대응 방법을 몰라 쩔쩔 매기만 했지만 점점 문제들이 유형화되고, 대응 방안도 정리가 되기는 했다.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철야도 해보고, 여러모로 다이내믹한 프로젝트였다. 당시에는 해야 되는 일이니까 어찌어찌해나갔지만, 돌이켜 보면 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상황이었던 것 같다. 고객사에 상주하며 5분 대기조로 일하면서 사건이 터지면서 퇴근 시간을 기약할 수 없는 밤들이 반복됐다. 오늘은 좀 일찍 가나 하고 저녁 6시에 짐을 싸고 있는데 갑자기 불려 가서 12시까지 일을 한 적도 있고. 결혼기념일에는 밤 12시에 집에 도착했고, 새벽 5시에 퇴근하고 아침 8시에 다시 집에서 일을 시작하고.. 더 슬픈 건 이 프로젝트가 유별난 것이 아니라 이 업의 속성 자체가 그러하다는 사실이다.
- 2023년 일의 기록들
https://brunch.co.kr/@wonish/366
https://brunch.co.kr/@wonish/362
https://brunch.co.kr/@wonish/360
https://brunch.co.kr/@wonish/359
코로나 19로 인한 규제들이 완화되며 올해는 국내외로 여행을 많이 다녀왔다.
양평 - 남편과 테니스 전지훈련을 위해 테니스 코트가 딸린 숙소로 여행을 갔다. 기가 막히게 좋았다.
제주도 - 제주도는 매번 가도 좋고, 매번 가도 새롭다. 역시 제주는 제주다.
오사카 - 3대가 함께하는 대가족 자유여행. 오사카 사람들의 친절하고 따뜻함에 감동받았다.
오키나와 - 오키나와는 멋진 섬이지만 그래도 제주도가 더 낫다. 수족관은 환상적이었다.
테니스 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서로 가장 먼저 하는 질문. "얼마나 치셨어요?" 마치 주량처럼 조금씩 줄여서 말하는 게 관례다. 테니스를 얼마나 쳤는지를 '구력'이라고 부르는데, 구력에 따라 실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으레 묻는다. 구력으로 따지자면 나는 상당히 긴 편이다. 2016년에 처음 라켓을 잡았으니 7년도 넘는 건데, 이걸 다 구력으로 치지는 않는다. 2016년에 레슨을 3개월 정도 하다가, 2019년에도 레슨을 몇 개월간 했었다. 띄엄띄엄하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고 나쁜 버릇만 몸에 배었다. 2023년은 진짜 내가 테니스를 시작한, 취미생활로 테니스가 자리매김한 한 해라 할 수 있겠다.
일주일에 두 번 규칙적으로 레슨을 받고, 레슨 전 후로는 남편이나 테니스장에 있는 사람들과 랠리 및 게임을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해는 동네 테니스 단톡방에 들어가서 집 근처 테니스장에서 팟을 모집하면 참석해서 모르는 사람들과 테니스를 많이 쳤다. 동네 사람들과 같이 코트를 예약해서 나가기도 했다. 테니스를 치면서 남편과 즐겁게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같이 테니스 영상을 보는 시간이 즐거웠다.
예상 못했던 부가 효과가 있다면 지역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우리 2인 가구는 이 지역으로 이사 온 지 3년이 넘었음에도 마땅한 이웃이랄 게 없었다. 대부분의 이웃들은 자녀를 중심으로 편성되는데, 우리는 낮에 다른 지역의 직장으로 가서 일을 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잠만 자니 이웃 커뮤니티랄 게 생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테니스를 시작하면서 동네 테니스 치는 이웃들을 알게 되어, 때때로 저녁에 같이 치맥 한잔 하며 즐길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사람 연결 시키기 좋아하는 코치님 덕분이기도 하다.
올해는 처음으로 시에서 하는 테니스 대회도 출전해 봤다. 대회 한 달 전부터 남편과 매일 연습에 매진하고 양평에 있는 테니스 코트가 딸린 숙소로 전지훈련(?)까지 가면서 불태웠으나 결론은 예선 탈락. 그때의 두근거림과 분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동호인들의 동네 대회인데 뭐 그리 열올리나 했는데 막상 내 상황이 되고 보니 너무 긴장되고, 잘하고 싶으나,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첫 임대료 수입 : 상가 임차인을 구해 드디어 수입 발생 시작. 큰돈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빅 스텝!
첫 청약 당첨 : 집 근처에 있는 아파트 청약을 신청해서 당첨됐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잘된 일이라 생각 중이다.
첫 신차 구매 : 내가 모아둔 돈과 남편 퇴직금으로 차를 샀다. '그랜저 적금'이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해 이룬 결실이라 뿌듯.
결혼한 지 5년이 넘었고 오랜 기간 아이를 기다려왔음에도 막상 임신을 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주변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었고, 회사 동료들은 일보다 몸을 먼저 생각하라고 늘 이야기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내가 임신했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 동료도 있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었으나, 아직 아이를 낳지 않은 여자들은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임신에 대한 고민을 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괴롭고, 그럼에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막막하다.
올해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며 느낀 것은 그간 살아오며 해왔던 다른 도전들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거다. 시험 준비나 취업은 열심히 하면 한 만큼 성과가 가시적이고, 서류 통과든 면접 탈락이든 단계마다 결과물을 받게 되지만 임신은 아니다. 임신이고, 아니면 말고인데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당최 알 수가 없고,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하는데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늘 노심초사하고 오히려 그 사실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러니다.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는 나의 담당 파트너에게 연락해 프로젝트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잠시 쉬면서 임신 초기 건강을 챙기고, 임신 중기에 복직을 할 생각이다. 다행히 파트너는 축하해 주면서 건강을 가장 먼저 챙기라며 대체자를 구해줬다. 1년 가까이 해온 프로젝트고 인수인계 할 것들도 많아 프로젝트 오프까지 3주 정도 걸리기는 했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등 동료들이 배려해 주어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었다.
2024년 1월 현재는 인생 최초의 휴직 중이다. 무급 휴직이라 주머니 형편은 나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하고 평화롭다. 집에만 있으면 무료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알았으나 늦잠을 자고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거리기만 해도 시간은 잘 가고, 집 밖의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돌아간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늘 나를 괴롭혀돈 두통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쉬고 나니 비로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https://brunch.co.kr/@wonish/353
https://brunch.co.kr/@wonish/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