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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May 02. 2024

오직 한 길

브라이언 메이든

작은 소책자. 31페이지. 16장도 안 되는 책 속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사람을 설득하고 감동은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이었다.

저자는 타 종교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어떻게 다른지 조목조목 따져 들어간다.


독단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어느 종교를 택하든 '정상'에서 만나면 궁극적으로 같은 신(神)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면서. 신을 섬기면 됐지 알라. 크리슈나. 라마.. 어느 이름의 신을 섬기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박한다.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졌던 서로 공유하는 근본적인 것에만 집중하면 되지(이를 보편구제설이라 함) 않겠느냐는 그들이, 어느 하나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편협하고 무지한 태도라는 그들의 말에 허점이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 난, 예전에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수많은 종교서적을 다양하게 읽었었다. 게 중에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이 가장 많았고 이후 티베트불교에까지 확대되어 그와 관련된 책 중 윤회 체험서적, 티베트사자의 서, 힌두교 경전까지 읽게 되었다. 그래서 인도의 경전에서 라마승의 이야기까지 점점 거슬러 올라가 나중에는 티베트라는 나라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었다. 그들 종교는 꽤 신비롭고 흥미로워서 상상력이 풍부한 나를 무작정 이끌었던 것 같다. 이후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내 서가에 꽂힌 그 수많은 책들은 다 쓰레기통으로 가버렸지만.. 그때의 나  역시  모든 종교는 그 종착점이 같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저자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힌두교는 자신과 신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가 문제고  불교신자들의 문제는 번뇌다.  그래서 번뇌의 근원인 이기적인 욕망을 내려놓아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를 거역했다는 점이다. 인간은 제멋대로 하나님의 법을 거역했고 그로부터 독립을 주장했으며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졌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리인으로서 그 일을 이루신 것이다.

저자는 재차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훈이나 가르침이 아니다. 용서와 구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차이점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죄 사함의 확신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빈 무덤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도 그에게는 무력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유일한 것이다. 예수님만이 사망을 정복하셨다. 다른 종교에도 죽었다가 살아난 신의 이야기가 있다고?  그러나 이런 신비한 종교가 보여주는 신들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가공인물이며 자연 범신론인 윤회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모든 타 종교들은 공로와 행위의 종교다.  그러나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께 나아와 그의  자비에 의지하기만 하면 된다.


----> 예전에 성경말씀을 공부할 때가 생각난다.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고 인간을 위해 인간처럼 낮아진 신은 없다고 배웠다. 이 책에서 그런 말이 있었다. 다른 종교에도 기독교의 성육신과 유사한 것이 있지만 그것은 근거 없는 신화의 형태이며 실제 인간이 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노력하여 이룩할 타 종교의 구원과 달리 기독교는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셨다고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이 세상의 수많은 종교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존재한다고. 그러나 인간은 창조주를 거역함으로써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 나는 이런 저자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내가 절에 다니면서 천수경을 외고 염주를 돌리면서 삶을 위로받으려 할 때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빛 안에서는 어둠이 힘을 쓸 수 없다. 어떤 이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절에 다니면서 천수경까지 외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에 가는 것이 가능한가요?  가능하다. 나는 곧장 망설임 없이 교회로 갔으니까 말이다.

내가 타 종교의 이야기들 속으로 빠져들었을 때도 의문점은 있었다. 사람이 이생에서 죄를 많이 지으면 차생에 동물로 태어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면 다음 생에는 더 신분이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이 설들. 그래서 그들 죵교인들의 남에게 베푸는 그 의도 안에는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이 내재해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또한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면 금색으로 입혀진 불상-숨도 안 쉬는-에 절을 하는 상황도 사실은 별로였다.

어찌 인간보다 우위인 신이 인간이 만든 불상이 될 수 있겠는가? 게다 그 불상 앞에서 인간들이 절까지 하다니..

그보다 더 거슬러 예수님을 믿기 전 고등학교 시절에, 과학을 싫어했다. 사람이 원숭이에서부터 진화했다는 그 설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서 공부하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글에서 읽은 건데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설은 인간의 정체성을 열등한 존재로 깔아내리는 사탄의 전략이라고 적고 있었다. 나는 진화론보다는 이 말이 더 설득력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모든 인간은 그 만드신 만물을 통해 보이지 않는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있으며 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인식하는 '양심'을 가졌다!

---> 나는 올 4월 초에 호주 브리즈번 골드코스트의 광활한 바다 앞에 서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저 멀리 망망대해로부터 파도가 내게로 다가왔다가 밀려나가기를 반복 했는데 그 바닷물이 먼 수평선에서부터 거대한 물이랑을 이루며 거칠게 달려오지만 내가 서 있는 곳 이상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 그때 사자의 포효같던 바닷물이  내 앞에 오자마자 아주 얇은 비단처럼 넓게 펴지면서 내 발 앞의 모래를 가만히 쓸고 나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엎드려 순종하는  바다  보고 울컥하였었다. 시드니의 블루마운틴 앞에 섰을 때도 그랬다. 그 어느 예술가가 하나님의 작품을 능가하겠는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위대한 자연 앞에서는 눈물을 터트리기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신성이 아닐까.

그리고 뭔가 조그만 잘못을 하였을 때 가슴속 어딘가에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양심이란 존재는 내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늘 내 안에서 작동하였었다.

양심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라고 질문한다.

구약 성경에는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도 자기 죄를 깨달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암시가 나온다고 한다. 그 예로 아브라함과 다윗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실을 들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신약에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복음을 들어야 한다고.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기독교의 복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는 데는 두 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저자의 글이 나를 온전히 끌어당겼다. 뭔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더 확신하게 해 주며 타 종교가 기독교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근거를 들어주어서 기독교가 배타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무신론자들에게도.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꼭 읽어보시라고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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