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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Oct 27. 2024

바이츠 더스트(Bites the Dust)(9화)

눈을 뜬 현승. 시야에는 하얀 천장이 보인다.     


‘여기가… 저승인가?’     


현승의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고, 그는 지금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약에 취한 듯 몸에 힘이 없고 정신이 몽롱한 현승. 힘겹게 고개를 돌려 보면, 검은 옷에 모자를 푹 눌러쓴 누군가가 링거를 만지다 의자에 앉는 모습이 보다. 선명해진 류영의 얼굴에 놀라는 현승.      


“너… 어떻게…”     


현승의 혓바닥이 굳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현승은 답답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실종된 줄 알았던 류영이 지금 어떻게 눈앞에 있는 건지, 왜 갑자기 나타나 자기를 죽이려 한 건지, 지금 눈앞에 있는 류영은 누구인지, 진짜 류영이 맞는지… 궁금한 게 넘쳐났지만, 류영은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았다.     


“저번에 꿈 있냐고 물어봤죠?”

“…?”

“음악 만들고 싶었어요.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제일 좋아해요. 저도 그런 곡 만들어 보려고 작곡도 몇 번 했었는데, 엄마가 다 버렸어요. 장비며, 파일이며, 다.”     


현승은 꿈같은 한가한 소리나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어야 했다. 그가 짜증 나든 말든, 류영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     


3년 전. 어질러진 류영의 방. 책상 서랍과 옷장이 마구잡이로 열려 있고, 바닥에는 컴퓨터와 미니키보드, 헤드셋, USB들이 널브러져 있다. 중학교 교복 입은 류영은 머리를 늘어뜨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고, 류영 모는 그 앞에 물건을 던지며 소리 지른다.     


‘나는 의사 가운 입어야 되니까.’     


책상 앞에 앉아 울면서 공부하는 류영. 시계는 새벽 4시.     


‘제 미래는 정해져 있었어요. 상위 1% 의대 나와서 병원 차리고 의사 남편 만나는 거.’     


교실, 학원, 독서실을 오가며 밤낮으로 공부만 하는 류영. 학교가 끝나고 교문 앞을 혼자 걸어 나오는 류영에게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한다.     


“류영! 빙수 먹으러 같이 갈래?”     


류영이 반가워하며 응하려는데, 어디선가 클락션 소리가 빵 울린다. 교문 앞에 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던 류영 모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헤어지는 류영.    

 

‘억울했죠. 자기들 맘대로 낳아 놓고, 자기들 뜻대로 살길 바라니까.’    

 

류영 모의 차 조수석에서 앉아 단어장을 보던 류영은 자신의 엄마를 원망하듯 본다. 류영 모는 화난 표정으로 운전만 하고.     


‘사람이 4시간만 자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다크서클에 퀭한 얼굴로 집에 들어오는 류영.     


‘상상과 현실을 헷갈리게 돼요.’     


류영이 부엌을 지나는데, 류영 모가 락스통을 열고 유리잔에 액체를 따른다. 락스를 꿀꺽꿀꺽 마시고 류영에게 묻는 류영 모.     


“시험은 잘 봤어?”     


어두운 거실. 소파에 누워 자는 류영 모에게 다가가 내려다보는 류영. 류영 모의 코와 입에 청테이프가 감겨 있고, 류영은 가만히 서서 지켜본다.     


‘나중에 깨달았죠. 그건 상상도, 현실도 아닌, 내 욕망이라는 걸.’    

 

류영 모가 다시 평범한 얼굴로 깬다. 류영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묻고.     


“너 안 자고 뭐 해?”     


‘그냥 내가 죽는 게 제일 빠르겠더라고요. 근데 쉽지 않았죠.’     


욕실 바닥에 앉아 한쪽 손목을 욕조 안에 넣고 있는 류영. 욕조 물이 흘러넘쳐 욕실 바닥이 붉게 물들고, 류영이 한숨을 푹 내쉰다.     


‘없던 일처럼 다시 살았어요. 엄마도 다 알면서 모른 척하더라고요.’     


류영 모가 인상을 찌푸리며 운전하고 있고, 류영은 한쪽 손목에 손수건을 감은 채 조수석에 앉아 멀뚱히 쳐다본다.   

  

‘문제 삼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된다고 믿고 싶었나 봐요. 문제는 그 뒤로 엄마 집착이 더 심해졌다는 거였죠.’     


어두운 방. 컴퓨터 모니터 빛이 밝게 빛나고, 그 앞에서 류영이 집중하고 있다. 화면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속 우울한 제목의 글들(‘내가 왜 태어나서’, ‘왜 살아야 하지’ 등)이 펼쳐지고.     


‘세상엔 태어난 게 억울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저처럼. 내가 내 생일을 정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 날이라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순리라고 믿었고요.’      


인터넷으로 ‘자살 성공법’, ‘존엄사’ 검색하는 류영. 화면에는 존엄사 절차에 대한 블로그 글, 뉴스 기사 속 외국인 환자들의 사진이 흘러간다.     


‘근데 자살은 어렵고, 존엄사는 까다롭잖아요. 그래서 직접 만들었죠.’     


온라인 커뮤니티에 ‘바이츠 더스트 회원 구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는 류영.  

   

*     


“그게 지금의 바이츠 더스트예요.”   

  

태연한 얼굴로 흐뭇한 듯 이야기하는 류영의 고백에 현승은 소름이 돋았다.  혼란스러웠다. 이 말도 안 되는 단체를 만든 게 오류영이라고?     


“말도 안 돼…”

“못 믿겠어요? 지금 여기도 우리 회원님이 연결해 준 건데.”     


현승은 병실을 둘러보았다. 고급스럽게 인테리어 된 특실. 순간 현승은 그녀가 두려워졌다. 류영은 그의 눈빛을 묘하게 즐기는 것 같았다. 현승은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저도 놀랐어요. 자기 죽음을 통제하고 싶은 사람이 꽤 많더라고요.”

“너도 분명 죽기로…”

“맞아요. 이 모든 게 제가 스무 살 생일에 죽으려고 시작한 일이니까. 아저씨가 다 망쳤지만.”

“내가 왜…”

“아저씨가 ‘묻어둔 상자’를 열어버렸거든.”

“‘묻어둔 상자’…?”

“그래서 창립자의 권한으로, 계약서를 조금 손봤어요. 무려 최초!”

“…?”

“아저씨랑 나는 내년 아저씨 생일날 다시 죽는 걸로 해요.”     


재킷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흔드는 류영. ‘바이츠 더스트 변경계약서다.    

  

“!!”     


류영은 서류를 다시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밀유지서약은 그대로니까 또 경찰서 가서 이상한 말 하지 마시구요.”

“잠깐…!”     


류영이 주사기를 꺼내 현승의 링거에 주입하며 말했다. 친절하게 웃으며.     


“피곤할 텐데 좀 더 자요.”    

 

현승이 손을 뻗으려 해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류영의 모습이 흐릿하게 멀어졌다.     


‘내년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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