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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Oct 27. 2024

바이츠 더스트(Bites the Dust)(8화)

‘집행일 D-1’. 선우의 보육원. 현승이 선우와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준다. 아이처럼 해맑게 뛰노는 현승. 끝나고 돌아가려는 현승을 선우의 작은 손이 붙잡는다. 직접 만든 생일 카드를 현승에게 건네는 선우. 카드 속에는 어른 남자와 꼬마 아이가 손잡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놀라 묻는 현승.


“이게 뭐야?”

“우리!”     


까맣게 잊고 있던 단어다. ‘우리’라니. 얼마 만에 듣는 말인가. 이토록 정성스러운 선물을 받은 적이 있긴 했던가. 현승의 가슴속에 감동과 걱정이 뒤섞여 들었다.      


‘내일 내가 ‘집행’당하면, 남겨진 선우는… 어떡하지?’     


그날 저녁, 현승은 세희와 함께 데이트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식당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난밤 8시 한강 둔치에서 여고생 시체가 발견돼…’     


현승의 얼굴이 굳어졌다. 실종됐던 류영의 소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현승은 더 이상 목구멍으로 밥알을 넘기지 못했다.     


늦은 밤거리. 현승은 굳어진 얼굴을 어둠 속에 숨기고 세희와 나란히 걸었다. 세희가 수줍은 듯 입을 열었다.     


“현승 씨 내일 생일 기념으로, 우리 동해 갈래요?”

“내일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는 세희. 현승도 인생 첫 연인과의 여행을 놓치게 된 지금이 너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일은 자신의 ‘집행일’이기에.     


고시텔로 돌아온 현승은 버킷리스트 수첩을 펴고 ‘유명해져서 인터뷰 당해보기’에 줄을 그었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다음 장도 넘겨보다 수첩을 닫고 서랍 속에 집어넣는데, 선우가 만든 생일 카드와 선우랑 찍은 입학식 사진이 보였다. 선우와 현승. 그리고 세희. 그리고 부모님. 그렇게 ‘우리’. 드디어 현승에게도 생긴 ‘우리’였다.


현승은 조급해졌다. 시간을 좀 더 벌고 싶어졌다.     


‘조금만, 하루만이라도 더!’     


시계는 21시. 집행까지 몇 시간 남았을까? 집행 시간은 새벽 12시 정각일까? 어디서? 어떻게 죽인다는 걸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억울해진 현승은 집을 박차고 나갔다. 집행 전에 문제의 ‘그곳’을 찾아가 따지고, 집행일도 미뤄 볼 작정이었다.  


현승은 거리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2주 전 찾아갔던 ‘바이츠 더스트’ 주소를 말했다. 택시 타고 가는 와중에도, 현승은 떨리는 손발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또 있었다. 사무실이 사라진 것이다. 도착한 곳에는 허물어진 건물 콘크리트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현승은 그대로 얼어 버렸다.


현승은 시계를 보았다. 21시 30분. 현승은 ‘바이츠 더스트’를 찾아 줄 흥신소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현승을 비웃거나 미친놈 보듯 했다.       


“바이츠 더스트? 첨 듣는데?”

“그런 데가 어딨어요. 키킥”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다해 DREAM 흥신소’. 현승은 낡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떨었다. 흥신소 직원 몇 명이 현승을 흘겨보고, 현승이 초조하게 시계를 보면 23시. 젊은 여자 사장이 커피를 건네며 자신을 ‘다해 대표’라고 소개했다.     


“찾을 수 있어요.”

“정말입니까?”

“대신 다섯 장은 주셔야 돼요. 한 시간이면 너무 타이트하니까.”

“오천이요?”     


다해 대표의 눈이 번뜩였다. 이내 음흉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현승은 난감했다.     


“오천은 힘든데…”     


다해 대표는 김이 팍 샜다는 투로 말했다.


“오천 말고 오백이요. 선금으로 삼백.”

“계좌이체 될까요?”     


그녀는 짜증을 퍽 내면서 명함 하나를 내밀고는 툭툭 쳤다.     


‘다해 DREAM 흥신소. 010-536-9123 ONLY 캐시’


“요 앞에 ATM 있는데, 같이 가드려요?”     


현금인출기 앞. 지폐 세는 소리가 차르르 들리고, 초조하게 두리번거리며 돈을 기다리는 현승과 옆에서 지켜보는 다해 대표. 돈 세는 소리가 멈추자, 현승이 만 원짜리 지폐 뭉치를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최대한 빨리 좀 부탁합니다.”

“네네. 기다리고 계시면 연락드릴게요.”     


다해 대표는 돈을 세며 건성건성 답하더니 휙 돌아서 가 버렸다.     


‘집행일 D-Day’. 현승의 고시텔 안. 현승이 초조한 얼굴로 흥신소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상대는 받지 않는다. 시계는 0시 00분. 세희의 생일 축하 메시지와 전화도 무시하고, 맥주캔을 하나둘 들이켜며 계속 흥신소에 전화 거는 현승. 창문을 슬쩍 내다보고, 방문 잠금장치도 수시로 확인해 본다. 새벽 6시. 충혈된 현승의 눈. 휴대폰 알림 소리에 다급히 보면 다해 대표의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고갱님, 어쩌죠. 바이츠 더스트라는 곳은 없네요. 참고로 선금은 수고비 개념이라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하… 이 새끼들이?!”     


현승의 눈이 실핏줄로 이글거렸다. 가슴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처음부터 그들은 작정하고 자신을 호구 잡은 게 틀림없었다. 살인 충동마저 느낀 현승은 잠금장치를 다 풀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해 DREAM 흥신소’ 입구 앞에 다다른 현승. 사무실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맥주 몇 캔으로 알딸딸해진 현승은 더딘 발로 애꿎은 철문만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출근하던 행인들은 아침부터 길거리에서 행패 부리는 취객을 피해 다니며 혀를 차거나 동영상을 찍었다.     


“개 같은, 사기꾼, 새끼들!”     


현승은 부스스한 머리와 초췌한 몰골로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그때 검은 헬멧을 쓴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현승을 향해 초고속으로 달려왔다. 기겁하며 도망가다 넘어지는 현승. 돌아보면 검은 모자를 쓴 수상한 남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벌떡 일어나 다시 내달리던 현승이 행인과 부딪혀 넘어지며 이마에 상처가 나 피가 흘렀다. 행인은 현승을 잡아주면서도 참기 힘든 술 냄새에 코를 틀어막았다.     


“괜찮아요? 어우, 술 냄새…”

“아니… 저기… 가야 돼…”     


행인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하는 것이 보이자, 그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달려가는 현승.     


“안 돼… 안 돼!!”     


손수건 꺼내든 행인은 빠르게 멀어지는 현승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땀범벅이 된 현승이 파출소로 뛰어 들어갔다. 순경 한 명이 놀라서 마중 나오고.

     

“저기, 살려 주세요, 저 죽이러…”

“네? 뭐라고요?”

“오늘, 저 죽이러, 온다고요. 바이츠, 더스트…”

“바이츤지 바이튼지가 죽이러 온다고요?”

“네! 맞아요!!”     


순경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술 얼마나 드셨어요?”

“네?”

“집에 가세요. 술 좀 적당히 드시고. 장난하나.”     


현승은 억울함에 울컥했다.     


“그놈들이 저 죽이러 온다니까요!!”

“네네, 알겠으니까 돌아가서 잠이나 주무세요~”

“하, 씨…”     


현승은 울 것 같은 얼굴로 파출소에서 쫓겨났다. 현승이 나가자, 정색하며 어딘가로 전화하는 순경.     


다시 고시텔로 돌아온 현승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초조하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방문은 밖에서 들어올 수 없게 의자와 상자들로 막혀 있고, 휴대폰에는 현승의 부모와 세희의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다. 시계 보면 23시 50분. 그때 전화벨이 울려 깜짝 놀라는 현승. 모르는 번호라 경계하며 전화를 받는다.     


“누구… 시죠?”

‘나예요. 오류영.’     


죽은 줄 알았던 오류영의 전화에 놀란 현승.     


“오류영? 살아 있었어??”

빨리 좀 나와 봐요, 아저씨. 급해요.

“지금? 어딘데?”

아저씨 집 앞.’

“우리 집 앞? 네가 여길 어떻게…”

급하다고요. 빨리!

“어, 알았어…!”     


류영의 다급한 목소리에 현승은 당황할 새도 없이 모자만 쓰고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서 두리번거리던 현승은 어두운 골목길에 모자 쓰고 서 있는 류영을 발견한다. 반가워서 다가가면, 류영의 뒤쪽에서 덩치 큰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며 현승에게 다가오고. 현승이 놀라 뒷걸음질 치는 찰나, 류영이 전기충격기를 꺼내 현승의 몸에 갖다 댄다. 쓰러지면서 벽에 머리를 찧는 현승. 그 순간 웃는지 우는지 모를 류영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고, 눈앞에 떨어진 현승의 휴대폰 시계가 23:59를 가리킨다.     


‘이렇게 가는 건가…’     


어둠 속에서 현승의 주마등이 스친다. 현승 모, 현승 부, 세희, 선우가 모여서 현승을 바라보고 웃는 모습들…

     

‘아쉬울 거 없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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