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조의 호소 Oct 27. 2024

바이츠 더스트(Bites the Dust)(10화완결)

현승이 다시 눈을 떴을 때, 현승 모와 현승 부, 세희가 둘러 모여서 그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인가? 아니, 꿈이었나?’     


세 사람의 충혈된 눈을 보고 울컥한 현승. 자기도 잊고 있던 그리움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얼굴들… 현승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자, 세희가 울먹이며 외쳤다.     


“현승 씨! 깼어요! 의사쌤 불러올게요!”     


밖으로 달려가는 세희. 현승 모와 현승 부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현승 모가 현승의 손을 꼭 잡으며 울먹인다.     


“정신 좀 들어? 이게 무슨 일이야…”     


현승이 얼떨떨해한다.     


“어떻게 된 거예요.”

“기억 안 나? 너 길에 쓰러져 있는 거 누가 여까지 데려다주셨다던데.”     


현승 부가 거들었다.     


“생명의 은인이지. 이 비싼 곳으로다가.”     


현승은 의아했다.     


“누군데요? 얼굴은? 봤어요?”     


현승 모가 답했다.     


“몰라. 암튼 이만하길 얼마나 다행이야.”

“오늘이 며칠이죠?”

“8월 6일. 어제가 너 생일이었잖아. 이것도 기억 안 나?”     


머리맡에 있는 휴대폰을 보는 현승. 8월 6일 오후 7시다. 현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 살았다.”     


그때, 자신의 엄지에 묻은 붉은 인주를 보고 얼어붙는 현승. 현승 부는 심각한 분위기를 깨 보려는 듯 화제를 돌렸다.


“근데 세희? 저 아가씬 누구냐? 참하던데…”     


왈칵 울음이 터진 현승은 두 팔 벌려 부모를 끌어 안으며 아이처럼 끄억끄억 운다.


“엄마… 아부지…”     


현승 모와 현승 부는 의아해하다가 애잔한 듯이 현승을 토닥였다. 잠시 후 병실 문이 열리고, 세희와 의사가 들어와 현승의 상태를 확인했다.     


‘또다시 시한부가 되었다. 반쪽짜리 기적. 불행일까, 다행일까.’     

     

1년 후.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한 현승은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고 있다. 손에는 커플링을 끼고 있고, 모니터 날짜는 8월 5일. 1년 전 류영의 말이 떠올랐다.     


‘내년에 다시 만나요.’     


그때 현승의 동료가 다가와 커피 한 잔과 작은 택배 상자를 건넨다.     


“현승 씨, 생일 축하해. 그리고 이거 왔는데?”     


긴장감에 목이 조여온 현승. 상자를 열어보면 USB 하나가 들어 있다. 컴퓨터에 꽂아 파일을 열어보면, 음악 파일이 하나가 재생된다. 이어폰 끼고 들어 보는 현승. 경쾌한 록 음악이 흘러나오자, 씁쓸하게 미소 짓는다. 서랍에서 버킷리스트 수첩을 꺼내 보는 현승. 전보다 줄이 많이 그어진 리스트들. 현승은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에게 다가간다.     


“저 오늘 반차 좀 쓰겠습니다.”     


선우의 보육원을 찾은 현승. 선우와 아이들 사이에 섞여 축구공을 차며 뛰어논다. 제법 키가 큰 선우가 드리블을 하며 앞서가면, 현승이 멈춰 서서 아련하게 지켜본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본가로 향한 현승. 직접 미역국을 끓여 현승 모와 현승 부에게 대접한다. 어설프게 끓여 밍밍한 맛이지만, 현승 모는 한 숟갈 뜨고 울컥해 말을 잇지 못한다. 옆에 있던 현승 부는 눈치를 주며 그릇째 원샷을 하고, 현승이 멋쩍게 웃자 그제야 현승 모도 따라 웃는다.     


한강 수상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스테이크를 먹는 현승과 세희. 세희가 상기된 얼굴로 축구 경기 관람 티켓 2장을 꺼내 현승에게 건넨다.      


“현승 씨 생일 축하해!”     


세희가 준비한 선물에 행복과 슬픔이 뒤섞인 현승의 눈.      


‘후회해도 늦은 거겠지?’     


한강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부채질하며 야간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현승과 세희도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무지개 분수를 본다. 현승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해하는 세희. 현승이 휴대폰 시계를 보면, 23시 30분. 세희는 꿈에 젖은 듯 입을 열었다.     


“우리 내년에는 뭐 하고 있을까?”

“…”

“그땐 시원하게 아이슬란드 가서 오로라나 볼까?”

“거긴 시원한 게 아니라 춥지.”

“그런가? 히히.”     


씁쓸하게 웃는 현승. 근처에서 류영의 기척을 느낀다.     


“미안한데, 나 회사에 좀 가 봐야 될 거 같애.”

“지금? 이 시간에 무슨 일?”     


아쉬워하는 세희를 타이르고 택시 태워 보내는 현승. 택시가 떠나는 모습을 아련하게 지켜보다 돌아서고, 복잡한 눈으로 걸음을 옮긴다.     

     

한강 다리 위를 천천히 걷는 현승. 그 뒤로 류영이 따라 걷는다. 재킷 안쪽에 한 손을 넣은 채. 현승이 시계를 보면 23시 50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자 류영과 눈이 마주친다. 류영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어요?”

“음악 좋더라.”

“고마워요.”

“있잖아, 나…”

“지금도 후회 안 해요? 죽기로 한 거.”

“아니. 후회해.

“네?”

“나 살고 싶어.”     


현승의 결연한 말투에 류영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슬픔과 배신감, 광기가 뒤섞인 표정이다.


“그럴…”     


부웅. 지나가던 화물차 소리에 류영의 말소리가 묻히고, 류영이 재킷에서 손을 빼며 달려온다. 순간적으로 겁을 먹고 두 팔로 얼굴 감싸는 현승. 지나가는 트럭에 두 사람의 모습이 짧게 가려진다. 멀리서 풍덩 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현승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을 떴다. 배를 움켜쥔 손끝에 만져진 것은 칼날도, 총알도, 핏방울도 아닌 서류 한 장이었다.      


‘바이츠 더스트 계약해지통보서’     


현승은 얼떨떨했다. 류영은 다 알고 있었던 걸까. 자신이 다시 살고 싶을 거라는 사실을. 그럼 이제 모든 게 끝난 것일까. 더 이상 쫓기지 않고 마음껏 살고 싶어도 되는 걸까. 주변을 둘러보아도 류영은 없었다. 현승은 벅차올랐다. 그리고 짐승같이 환호했다. 이제 다 끝난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6개월 후. 현승은 퇴근길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던 현승은 어느 신인 유튜버의 채널 ‘묻어둔 상자’를 보고 놀란다.      


‘아저씨가 ‘묻어둔 상자’를 열어버렸거든.’     


류영의 말이 떠올라 클릭해 보는 현승. ‘자작곡’이라는 제목의 최근 영상을 재생하면, 어느 경쾌한 록 음악이 흐르고, 현승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채널 구독을 누르는 현승. 구독자 수가 0명에서 1명으로 바뀌고, 현승은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가 유유히 떠난다.  


끝.

이전 09화 바이츠 더스트(Bites the Dust)(9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