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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비버 Oct 23. 2024

[롱울] 사주팔자,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기

나도 알아, 내가 답정너인 거

처음 사주를 본 건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중학생 시절, 길을 걷다 우연히 사주라 적힌 허름한 점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본 사주가 참으로 용해서 내 미래를 대신 스포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빈 깡통이었다. 기억에 남는 말을 고르자면 사주에 선생님이 있다 정도인데, 서른이 된 지금 내 직업은 교육과 거리가 멀다.


한동안 사주라는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에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인 방황이 시작되었다.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낯선 환경,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나름대로 재미와 보람을 찾으며, 진로를 바꾼 내 선택이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속마음은 무척 불안정하고 외로웠던 것 같다. 내가 속한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라고, 안 좋은 의미로 이질적이라고 되뇌었다. 그럼에도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며, 잔뜩 움츠러든 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준 동기들과 연구실 선배들이 있어 조금씩 천천히 적응해 나가던 참이었다.

하루는 동기들과 함께 타로를 보러 갔다. 유쾌한 분위기에서 언니 오빠들의 타로 결과를 듣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뽑은 카드를 본 타로 선생님이 의미심장한 말을 툭 내뱉었다.


"이 친구한테 잘해줘. 지금 같이 있어도 있는 게 아니야. 마음이 온통 다른 데 가 있어."


그날 밤, 나는 평소보다 긴 밤을 보내야 했다. 타로 결과에 내 상황을 열심히 끼워 맞추며 지금 이렇게 막막하고 힘든 것도 내 팔자인가 보다 싶어 속이 상했다. 뭐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주를 찾았다. 한참을 인터넷을 검색하다 어느 용하다는 보살의 전화 사주 소개글을 접했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예약일까지 남은 몇 주를 기다렸다.


두 번째 사주 경험은 처음과 달리 꽤나 만족스러웠다. 사실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성격 자체가 대세에 큰 지장이 없으면 잘 까먹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부를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하다. 그분이 내 미래를 예측한 것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준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내가 처한 상황에 위로가 될 만한 묵직한 몇 마디가 있었다. 이를 테면,


"한 번에 정착하기 어려우실 수 있어요. 계속 옮겨다니실 거예요. 근데 그게 나쁜 게 아니라 다 그럴 만한 재주가 돼서 그래요. xx년도까지는 괜찮은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네요."


참고로 저 말씀은 내가 배경을 설명하기 전, 생년월시 정보만 제공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그분은 정말 용한 보살이었을까. 사실 내 또래는 다 비슷한 고민을 할 가능성이 높다. 경험적으로 찍은 것이 맞아떨어지자, 마음이 열린 상담자가 먼저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은 경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상담 비용으로 지불한 5만 원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몇 차례 더 방황을 겪었는데, 그때마다 'xx년도까지는 괜찮다잖아. 아직은 도전해도 돼'라며 나를 부추기는 근거로 삼곤 했다.


물론 내 돈 주고 보는 사주에서 늘 듣기 좋은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사주는 스물아홉, 회사 경영 악화로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게 되었을 때였다. 그때 나에게는 몇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동종 업계로 고용승계, 창업, 지인 회사로 이직, 그리고 생퇴사 후 이직 준비. 하나같이 리스크가 큰 선택지뿐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오는 걸 애써 삼키던 시절. 마침 친구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고민이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용하다는 어느 사주집을 예약했다.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대문, 방안을 가득 채운 역학 서적과 먼지 쌓인 책 냄새, 탈탈탈 소리 내며 힘없이 돌아가는 선풍기까지. 눈앞의 모든 풍경이 ‘이 사람은 진짜다’라는 기대감을 단숨에 끌어올렸고, 그런 용한 사람에게서 내심 듣고 싶었던 키워드가 있었다.


안정과 정착.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였다.


그런데 선생님 입에서 나온 말씀은 그와 영 딴판이었다.


"앞으로 10년간 전쟁살이 들어와 있어요. 29세부터 10년간 쭉-."


전쟁살을 면하려면 법조계로 가거나 일반 직업은 변화무쌍한 일을 해야 권태로움을 덜 느끼는데, 나를 통제하는 사람을 내가 이기기 때문에 조직에 속하더라도 직장 생활을 오래 못하고 독립한대나 뭐래나….


게다가 사주를 볼 당시 기준, 내년이 운명적으로 움직이는 해인데 배신과 불신이 올 수 있으니 되도록 움직임을 후년으로 미루고 그대로 머무르라고 했다 (아니, 직장이 사라져서 사주를 보러 온 사람한테 무슨…). 또, 이번 달은 반발심이 크지만, 붙잡힌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의 위로 아닌 위로를 듣고 나서야, 남들이 듣기에도 썩 유쾌한 이야기는 못 되는구나 싶었다. 나 역시 사주를 보고 나온 직후에는 마음이 착잡했으니까.


그렇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어떻게든 좋게 해석할 여지는 있었다.


내년에 움직이지 말고 후년을 기다리라는 말씀은, 연말까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 빨리 이직해서 올해 안으로 정착하기만 하면 크게 상충될 게 없어 보였다. 이번 달에 붙잡힌다는 말씀도, 동종 업계로 고용승계되는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뜻인가 싶었지만, 그거야말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인데 안 붙잡히면 그만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선택도 정해졌다. 나는 생퇴사 후 이직 준비를 시작했고, 해가 바뀌기 직전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로,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아찔했던 시절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직장 생활을 오래 못하고 독립한다는 말씀인데, 추운 겨울도 겪어봤겠다, 일단은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는 마음뿐이다.


나는 지금도 내 돈 주고 사주 보는 걸 좋아한다. 앞으로도 막다른 길목에 다다른 듯한 상황에 처하면 한 번씩 사주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 그렇지만 사주에서 기대하는 건 내 선택을 지지해 줄 사소한 계기일 뿐, 나는 여전히 답이 정해진 사람처럼 굴 것이다. 그것만큼은 변함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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