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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국문과 삼인방의 서른 일기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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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감자비버 Oct 23. 2024

[유강] 누군가 나에게 해악을 끼친다면

나는 직접 강물에 던지는 편

모든 것이 끝이 있는데 소시지만 끝이 두 개 있다. 나의 공기업 생활은 오늘로 끝이 났다. 아무래도 공기업은 소시지가 아니니까, 내가 공기업에서 맞이하는 끝은 이게 유일하겠지.

다니는 동안 공공은 절대로 처우가 좋아질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서 미련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동기들은 보고 싶을 거야! 먼저 가서 미안해. 다들 꼭 승승장구해서 부장은 달고 퇴직하길 바랄게.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회사사람들에게 분노 같은 건 남아있지 않다. 모두가 나의 은인이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므로, 잘해준 사람도 괴롭힌 사람도, 결국엔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봐야겠지.

사랑하는 친구 비버씨가 나의 글에 이런 댓글을 달아주었다. 옛날부터 봐온 나의 캐릭터는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벤다고? 웃기지마, 나는 진짜 적장의 목을 벤다!" 의 느낌이라고.

맞아. 나는 마음 먹은 건 다 한다.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에 실컷 떠들었지. 어떻게 떠들었냐면, 그동안 당한 것들을 일기 형식으로 블로그에 적었다.

폭로가 목적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장기간 백수 생활을 해야 하니까, 혹시라도 나중에 퇴사를 한 게 후회가 될 때마다 일기를 찾아볼 생각으로 적은 거였다. 나의 울분이 가득 담긴 퇴사일기 한 편이면 새벽에 불쑥 찾아오는 후회 같은 건 쉽게 무찌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일부러 회사 이름이나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 같은 건 적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블로그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으니, 아니 블로그 존재 자체를 알려준 적이 없으니 회사사람이 내 글을 읽을 거라는 생각 또한 안 해봤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폭로가 되었다. 나는 정말 몰랐는데, 회사의 누군가가 내 블로그 주소를 알아내서 염탐을 하고 있었더라고. 그 사람이 내가 선배들이 괴롭혀서 회사를 나가는 거라고 소문을 냈는지 어느샌가 나는 선배들이 괴롭혀서 회사를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퇴사에 그 선배들이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맞다. 하지만 선배들의 괴롭힘은 이미 예전 일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 선배들의 괴롭힘 때문에 회사를 나가는 게 아니라고. 사직원에도, 퇴사 전 면담에서도, 선배들의 괴롭힘은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저 더 좋은 회사로 가고 싶다고만 했다.

결과적으로 폭로가 되었지만, 난 분명 선배들을 감싸줄 의향이 있었다. 내가 괴롭힘 당했던 걸 아는 동기들에게도 이직 사유는 급여와 지역 문제지, 사람 때문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난 그냥 블로그에 퇴사 결심을 담은 일기를 썼을 뿐인데, 그동안 왜 힘들었는지 적었을 뿐인데, 그게 회사에 퍼지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선배들 귀에 들어갈 게 당연한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다. 본인들이 당당했으면 나한테 와서 따지기라도 했을 텐데 끝까지 모른 척하더라. 가해자 중 한 명은 내 인사를 씹고 그냥 지나쳤다. 지나치는 그를 보며 속으로 끝까지 쪼다 같다고 생각했다. 내 글을 보고 반성을 했으면 사과를 했을 거고, 억울했으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따지기라도 했을 텐데,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지나간다니.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 선배라는 이유로 날 갈궜다니.

칼을 뽑았으면 적장의 목을 베어야 하는데, 괜히 감싸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렇지만 날 괴롭혔던 게 소문이 났으니까, 내가 소문낸 것도 아니니까, 난 떳떳하니까, 이 정도로 만족하려고.

아마도 나는 그들의 오래된 소문으로 남게 될 거니까. 새로운 후배를 받을 때마다 그들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거다. 또다시 후배를 괴롭혔다는 얘기가 나오면 그땐 정말 해명도 안 통할 거니까.

블로그 이웃 중 한 명은 나의 글에 도덕경의 한 구절을 댓글로 달았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올 것이다.

그 댓글은 보고 든 생각은, 사람들은 피해자는 끝까지 피해자로 남길 바란다는 거였다. 가해자에게 타격을 주어선 안 되고 그저 피해를 받은 상태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그런 온전한 피해자.

적장의 목을 베어줘야 하는 나로서는 답답해 미치겠는 거야. 나는 이제 퇴사하고 고향에 돌아가면 그 인간들 얼굴은 볼 일이 없는데, 걔네가 죽는다고 해도 그 시체가 우리 집 근처 OO강까지 오겠냐고요.

아무 말 없이 퇴사해버리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다는 건, 결국 나 말고 다른 피해자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 후에, 그 새로운 피해자가 대신 복수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은 분명 새로 들어올 신입에게도 똑같이 할 거다. 질문을 못 하게 하고, 틀린 답을 알려주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가스라이팅을 하고, 둘만 있을 때면 비아냥거릴 거야. 피해자는 나 하나로 족해. 나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 줄 수 없다.

나를 허언증 환자로 몰아가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에게는 겉으로라도 좋은 선배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삭제하지 않았다. 어차피 누군가는 그들을 시체로 만들어 강물에 던져야 한다. 내가 해주지 뭐. 난 회사를 나가니까 평판 따위 아무 상관 없잖아? 이제 내가 그들의 시체를 강물에 던져놨으니, 강가에 앉아 시체가 떠내려오길 기다리는 사람은 더이상 생기지 않겠지. 그거면 됐다.

소문이 퍼진 이후로 나와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던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 문장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국문과 출신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자, 그러면 내내 고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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