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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비버 Oct 23. 2024

[유강] 나는 A의 친구다. 고로 나는 착하다.

우리는 일반인 수준이 아니야. 엄청 착해.

며칠 전, 고향친구 A를 만나 카페에서 하루종일 수다를 떨었다. 그날도 나는 A에게 내가 사실은 못된 사람인 걸까?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걸까? 하고 물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대놓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겪고나니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져서, 사실은 내가 문제인 거면 어쩌냐고 자주 A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나의 단골 질문에 A는 옛날부터 봐온 나는 자기자신에게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이라고, 대쪽같은 사람이라고,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A를 바라보다가 우리가 처음 친구가 되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 생각났다. 당시 우리는 담임선생님께 예쁨받는 학생들이었다. 성적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무리에서 소외된 친구 B를 받아줬기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는 그 친구와 성격이 잘 맞는 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왕따에 일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 친구의 같이 다니자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점심시간에는 꼭 그 친구를 챙겨서 밥을 먹으러 가곤 했다.


그러다가 담임선생님과 진로 상담을 하는 날,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정말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뭐가 고마운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속으로 성적이 잘 나와서? 수업태도가 좋아서? 아니 근데 이게 고맙나..? 하면서 내가 뭘 잘했나 돌이켜 보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운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서 내가 왜요? 하고 묻자 담임선생님은 목소리를 낮추고 B를 언급하시며, B가 무리에서 소외됐을 때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내가 A와 함께 B를 챙겨주는 걸 보고 안심하셨다며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떤 큰 결심을 하고 B를 챙긴 게 아니고, 그냥 A랑 나는 그런 거 거절을 못 하는 사람인데, 누구 괴롭히고 소외시키는 거 못 보는 사람인데, 그런 감사의 인사를 들으니 얼떨떨했던 기억이 있다.


앞에서 열심히 내 편을 들고있는 A를 보니 고등학생 때 생각이 나서 A에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우리 되게 착한 거 같애. 일반인들 수준이 아니야. 엄청 착해.


A도 웃으면서 공감했다. 맞아 우리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야.


사실 나 하나만 놓고 보면 나는 솔직히 조금 애매할 수도 있는데, 나랑 꼭 붙어다니던 A가 엄청 착한 애다. 다른 사람한테 해코지 같은 거 절대 못 하는 애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쟤가 나랑 13년째 친구 해주는데, 우리는 쿵짝이 진짜 잘 맞는데, 그럼 나도 엄청 착한 거 아니겠어?


그런 생각이 들고나니 갑자기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난 제대로 살았어. 바르게 살고 있어. 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걔네가 문제인 거야.


앞으로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마다 A를 떠올려야겠다.

 나는 A의 친구다. 우리는 일반인 수준이 아니다. 엄청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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