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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비버 Oct 23. 2024

[롱울] 형제가 있음에 감사한다

나이를 먹으니 친오빠가 든든한 아군이 되었다

나에게는 친오빠가 한 명 있다. 여기서 친오빠라는 호칭이 다소 튀어 보일 수 있는데, 연상인 남자친구와 구분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오빠로 호칭이 굳어졌다. 흔히 유머로 현실 남매는 거친 인사는 기본에 무관심한 태도가 미덕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제법 친해도 그렇게까지 허물없는 사이는 아니다.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 이야기이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내가 친오빠를 하늘처럼 존경하고 따랐다고 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무척 까다로운 사람인데, 그런 내가 그렇게까지 집착했을 정도면 아마 친오빠는 동생을 무척 잘 놀아주는 다정하고 상냥한 어린이였을 거다.


그러다 내가 덧셈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친오빠에게 맞먹으려 들었다고 한다. 형제간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건 자연의 순리인 듯하다. 유치하게 다투기도 많이 다투고, 그러다가도 같이 매미를 잡으러 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냈었다. 그때는 친오빠를 어찌나 좋아했는지, 하루는 학교에서 햄버거를 나눠줬는데 먹고 싶어도 꾹 참았다가 집에 와서 친오빠에게 주었다는 제법 귀여운 일화도 있다.


그렇게 가까웠던 친오빠가 입시를 이유로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고, 나는 나대로 입시를 거치면서 우리 관계도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한 지붕 아래서 지내지를 않으니 예전처럼 관심을 갖고 다툴 일도, 서운할 일도 없었다.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 없이 밥을 먹는 게 전부였다.


내가 친오빠를 다시 아군으로 인식하게 된 건,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았을 때였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것이 죄스러웠는데, 친오빠는 부모가 아닌 가족의 입장에서, 그리고 나보다 몇 년 더 살아본 또래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어떤 조언보다 위로가 되고 신뢰가 갔던 기억이 난다.


이후 우리는 서로 힘들 때 외면하지 않고 고민을 들어주는 관계가 되었다. 늘 사이가 좋지만도,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살갑거나 다정하지도 않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든든한 아군으로 인식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든 가족의 짐을 함께 나누어들 수 있는 동지.


어른이 된 후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과연 좋은 부모가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미리 사서 하곤 한다. 주변에는 벌써 엄마가 된 지인들이 있다. 나는 아직 정서적인 안정감도, 경제적인 자립도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인데, 주변과 비교하면 괜스레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욕심을 하나 내보려고 한다. 미래에 나와 함께 가정을 꾸려갈 배우자가 동의하고 하늘이 점지해 준다면 우리 아이에게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다. 누군가는 부모의 이기심이라고 말할 테지만, 언젠가 서로가 있음에 감사함을 느낄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그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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