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면 작가님, 그래서 카메라로 무얼 찍으셨나요?

로마, 이탈리아

by 프로이데 전주현 May 08. 2023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잘 먹던 나는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편식을 하는 아이들에겐 종종 본보기로 소개될 정도였다. 특정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도 없었고, 새로운 메뉴 선택에 거부감도 적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뭐든 잘 먹어요!” 하는 대답을 과감히 해 왔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의 입맛을 배려하기엔 그만한 답도 없을 거란 생각에 한 말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런데 “아무거나!” 하는 대답이 백지 취급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질문을 던진 상대방은 당혹스러워했고, ‘선택지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면 편할 텐데,’ 하는 분위기가 읽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뱉는 한 마디가 있었다. 메뉴 선정에 꼭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 면주현이잖아. 면이면 뭐든 좋아.” 몇몇은 웃기도 했다.



면 중의 면이 무엇이라는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는 질문 다음으로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파스타가 있었기에 이탈리아 여행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우회적인 답을 내놓고 싶다. 본고장에서 맛보는 파스타는 주 재료와 소스, 면 종류, 페어링 음료까지 세심하게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이 일종의 게임 같았다. 나를 정중히 대접하는 기분도 들었다.



로마 트레비 분수 근처, 기념품 숍만으로 거리를 이룬 골목을 지나던 날이었다. 형형색색의 오브제들이 내뿜는 에너지에 정신이 팔릴까 걱정하면서도 가게 앞 도로까지 길게 진열된 기념품 구경을 멈출 수가 없었다. 관광객의 입맛을 맞추기에만 급급한 상업적인 굿즈들도 많을 테지만, 운이 좋다면 ‘여행객들이 로마와 이탈리아를 이렇게 기억해 주면 좋겠다’ 하는 현지인들의 소망이 담긴 것들을 가까이서 보고, 만지고, 구매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느 유명 랜드마크를 방문하는 것만큼이나 그 나라를 알아가기 좋은 방법이 바로 기념품을 구경하는 것인데, 놓칠 수 없었다.



(결국 구매로 이어지진 못했으나) 이탈리아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기록으로라도 남겨두자는 마음에 카메라 앱을 실행했다. 스파게티를 계속 먹은 다비드상의 비포-에프터가 좌에서 우로 프린트되어 있는 철제 간판이었다. 근육질의 다비드상도 이탈리아 파스타는 끊지 못했나 보다. 면주현이기에 그저 지나칠 수 없었던 매력적인 오브제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내 옆을 지나가던 백인 할아버지께서 ‘무엇이길래 사진까지 찍는 걸까?’ 하시더니 나의 카메라 렌즈가 향한 곳을 슬쩍 바라보셨다. 그러시더니 하하, 소리 내서 웃으셨다. 순식간에 나의 기록과 취향에 동의하는 사람이 생기다니! 덕분에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 라이브러리를 열어 확인하는 것조차 즐거운 일이 되었다.



여행에 색다른 시선을 더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가능하다면 낯선 사람도 좋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카메라가 어디를 찍는지 살펴보는 것도 괜찮겠다. 유머? 아름다움? 향기? 소리? 무엇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는지 추리하며 눈과 렌즈가 바라보는 곳을 관찰해 보는 거다. 미처 보지 못한 것인가,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인가, 이전에 보았지만 지금 보니 또 달라 보이는 것인가? “내가 보았어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요!” 하는 증언이 얼마나 편파적이고 제한적인지 하는 교훈이 뒤따라올지도 모른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매거진의 이전글 책을 밟고 올라가세요, 침수 서점(acqua alta)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