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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아니면 언제 이런 곳에 와보겠니

셋째 날 점심식사

by 프로이데 전주현

외식을 하면서도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밥을 찾는다. 그 심리는 무얼까? 포장하자면 가족이 해준 음식의 손맛과 밥을 나눌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수고 없이 위험 부담이 적은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싶어서다. 결국, 맛있는 시간을 위해서다. 오키나와 여행 중에도 집밥 같은 외식을 꼭 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육해공 식재료가 신선하고 이국적이라 집밥 한 상차림이 다채롭고 훌륭해 보였다. 오키나와의 전통과 현지인들의 취향도 듬뿍 담길 음식을 기왕이면 역사를 주제 삼은 여행 셋째 날 점심으로 먹으면 좋겠다 싶었고.


운 좋게도 프라이빗한 분위기의 가정식 전문점(슈리아야고항우나이)을 찾았다. 여행 책자에 소개된 곳은 아니었고 네이버 블로그에 약 2건 정도, 나머진 구글맵 리뷰가 전부인 곳이었다. 예약과 결제 절차가 조금 까다롭긴 했지만 친절한 사장님과 정갈한 음식, 조용한 식사 분위기를 모두 갖춘 듯했다. 온라인으로 식권을(사실 결제는 하지 않기에 가예약 같은 단계다) 먼저 구매하고, 그 식권을 확인하는 일련의 소통(전화 또는 메일)을 사장님과 한 다음에, 예약 당일 식당을 찾아가서 식사를 즐기고, 현장 결제를 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이곳의 단점이자 장점은 위치였다. 슈리성 정문에서 도보로 약 850미터 정도 걸어야 했는데, 태양을 피할 곳이 좀처럼 없는 오키나와의 대로를 뚝심 있게 견뎌야 도착할 수 있었다. 대로변에 "우산 빌려가세요!" 하는 가판대가 무료로 운영 중인 걸 보니, 이 도로 위에선 오키나와의 더위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하지만 주변이 조용하고 깨끗한 데다가 정겨운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가 몇몇 눈에 들어오는 산책로라서 걸을 맛이 났다. 반려조를 찾는다는 공고문도 하나 보았는데, 사진 속 반려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짠한 마음이 더했다. 차만 타고 다니면 쌩하니 지나가고 말았을 텐데.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식당이 있는 골목 앞에 다다랐다.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았니 정말!"


식당에 도착해 자리를 안내받자마자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기쁨의 환호성이라니. 남편과 나는 또다시 어깨가 으쓱해져서는 눈앞의 보리차로 축배를 대신했다. 단일 메뉴라 따로 주문을 할 필요도 없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묻는 말에, "네, 사인분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었다. 오후 한 시 반. 점심시간치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집들이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편안히 음식을 기다렸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네. 가족 여행으로 왔어요. 어머니가 생신이시기도 해서."

"아, 그러시군요. 이건 말이죠, 오키나와의 전통 재료들로 꾸린 상차림이랍니다. 이건 찬푸르라고 해서..."


여행 책자에서 미리 공부하고 첫째, 둘째 날 조금씩 맛보았던 오키나와의 알록달록한 식재료들이 소담히 담겨 나왔다. 지역 생선과 직접 만든 소시지, 돼지고기 조림과 돈지루(돼지고기 된장국), 경단과 샐러드까지. 누군가 이쁘게 담으려고 애쓴 뷔페 한 접시 같았다. 사장님께선 다 드시고 나서 커피와 디저트도 따라 나오니 이따가 다시 한번 더 오겠다고 하시고선 자리를 뜨셨다. 발아래 다다미, 등 뒤로 천천히 움직이는 선풍기와 창문 옆으로 너풀거리는 전통 모빌. 리틀 포레스트가 따로 없구나.


"이타다끼마스(잘 먹겠습니다)!"


음식을 하나씩 먹으면서 시부모님의 표정 변화를 은근슬쩍 관찰했다. 사자는 별말 없이 잘 먹었고 시어머니는 퀴즈를 맞히기라도 하듯이 입 안에 음식을 하나씩 집어넣고선 재료와 레시피를 추리하느라 바쁘셨다. 정말 즐거우셨는지 식사 도중 몇 번씩이나 감탄하셨다.


"너네 아니면 언제 이런 곳에 와보겠니."

"정말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았니."


덕분에 내가 지금껏 알아온 시어머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이 많아 사람들이 사는 생활 방식에 관심이 많지만, 고집도 세셔서 그들의 방식이 그들의 방식으로 머물길 바라고 자신의 방식을 해치지 않길 바라시는 분. 카메라를 들이대면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가리기보단 브이라도 하면서 방긋 웃어 카메라를 든 사람을 무안하게 하지 않으시는 분. 수고롭더라도 시간을 들여 음식 차리기를 좋아하시고, 누군가 자신에게 그렇게 해줄 땐 칭찬을 아끼시지 않으시는 분. "이게 문제야, " 하고 말하는 게 있더라도 결국엔 그 문제가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봐 "그냥 그렇게 참고 사는 거지." 하고 문제를 일단락 지으시는 분.


감탄하고 인정하는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정신이 깨었다. 아 맞다, 이 여행의 주인공은 어머니셨지. 그렇게 생각하자 작은 일들로 걱정하거나 뾰족해진 스스로가 조금 작아 보였다. 덕분에 배만 부를 줄 알았는데 마음이 잔뜩 불러서 식당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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