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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하이에나가 된 걸 축하해

마지막 밤 그리고 삼진아웃

by 프로이데 전주현

삼진아웃을 목전에 두고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나하 공항 근처 세나가 섬에서 출국 준비를 하며 여독을 푸는 일정만이 남아 있었다. 남편은 평화 공원을 다녀오면서부터 내적으로 씩씩대기 시작한 나에게 휴식시간을 제안했다. 렌터카 반납은 사자와 둘이서만 다녀와도 괜찮다면서. 정말 그래도 괜찮겠냐고 몇 번을 묻고서 손에 주유비 5만 엔을 쥐어주었다.


"다녀올게."

"아, 잠깐만!"


방을 나서려던 남편을 붙잡았다. 여행의 주인공(이었어야 할) 시어머니를 위해 한국에서부터 챙겨 왔던 카드를 노트북 커버 속에서 꺼냈다. 좋아하던 소품숍에서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하고 산 이후로 아껴 두었던 생일축하카드였다.


"어머니 환갑 기념으로 온 여행이잖아. 여기 우리 롤링페이퍼 적자. 아버지는 그래도 어머니 남편이니까, 정확히 여기 카드 절반 분량을 드리고, 나머지 절반에 우리 둘이서 쓰면 될 거 같아. 렌터카 반납하고 들어오는 길에 로비에서 쓰면 어머니 모르게 완성할 수 있겠지?"


아까 일을 생각하면 사자를 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롤링페이퍼인데 시어머니의 짝꿍을 빼놓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맙고 알겠다면서 다녀오겠다고 했다. 홀로 방에 덩그러니 남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어깨에도 힘이 축 빠졌다. 잠깐이지만 혼자서 쓸 수 있는 큰 침대를 보면서, 이럴 땐 가로로 누워줘야 한다면서 이불 위로 몸을 길게 던졌다. 일기장과 볼펜을 들고 엎드렸다. 그리고 (데스노트까진 아닌) 앵거노트(anger note)를 썼다. 스트라이크 원과 스트라이크 투를 외친 과정과 평화 공원에서 떠올린 전쟁에 관한 경고성 짙은 생각을 하나둘씩 휘갈겼다.


휴.


일기장에 속마음을 한참 토해낸 다음에서야 후련해졌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할 기력이 생겼다. 바깥을 보니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꼭 내 마음처럼). 천둥소리가 들리고 얇지만 확실히 거무튀튀한 구름들이 저 멀리서 세나가 섬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9월 말의 오키나와는 통상적으로 태풍 시즌이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행할 동안 날씨가 계속 반짝였다. '돌아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감사할 게 참 많았는데.' 앵거 노트를 쓰고 나면 늘 이렇다. 화를 쏟아부었기에 그에 가리어졌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대부분 감사한 것들이다. '그래, 더 좋은 걸 보려고 하자. 좋은 걸 기억하려고 하자.' 나는 일기장을 덮고 숙소에 구비된 티백을 즐기기 위해 물을 끓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돌아왔다.


"잘 반납하고 왔어?"

"응. 근데 아빠가 사고 쳤어."

"어?"


남편은 조용히 예의 롤링페이퍼를 들이밀었다. 카드에는 나와 남편이 글씨를 쓸 곳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빠가 쓰고 있을 동안 아주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그래, 분량 조절에 실패할 수도 있지. 그런데 카드를 본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줄간격이 한 250%는 되는 것 같았다. 충분히 분량 조절해 가며 쓸 수 있었겠는데 이건. 뭐라 덧붙일 말도 없이 그냥 화가 났다.


"이거 이렇게 쓰면 우린 어디다가 쓰라고?"

"뒷면에 쓰래..."

"뒷면이 아니라 커버인데? (...) 언제까지 자기 맘대로 할 거래? 왜 귀 기울여 들어주질 않는 거야?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잖아."


아끼던 카드를 큰맘 먹고 가져왔고, 시어머니 축하해드리고 싶어서(여행의 목적과 주인공을 상기해드리고 싶어서) 롤링페이퍼 이벤트와 조각케이크 대신에 지마미두부를 준비해 두었고, 스트라이크 원도 투도 참으면서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나는 일기장에 붙여두었던 포스트잇을 한 뭉치 들고 와서 사자가 쓴 편지의 한쪽을 가리기 시작했다. 우리한테도, 나한테도 허락된 지면이란 게 있다고!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하늘에서 꾸르릉 소리가 났다. 체크인을 할 때만 하더라도 파랗던 하늘흐느끼기 있었다. 명백한 스트라이크 쓰리, 아웃이었다. 할머니를 부르는 것도 그만하고 싶었는데 정말. 애석하게도 참다가 터져 나오는 나의 마음을 듣는 건 남편이었다(이걸 사자가 직접 들었어야 하는데). 화풀이는 아니었고 넋두리였다. 기왕 이렇게 삼진 아웃이 된 거 나도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남편이 제대로 나를 지지해 주었다. 그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신입 하이에나가 된 걸 축하해."


하이에나는 남편의 원가족, 그러니까 시부모님과 남편, 시누이로 이뤄진 4인 가족의 은어였다. 제멋대로 하는 시아버지를 보면서 시어머니를 옹호하고 시아버지를 경계하는 일련의 질서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목포 가족은 한 마리의 사자(시아버지)와 세 마리의 하이에나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이에나의 우두머리는 사자와의 소통 능력이 뛰어나고 다른 하이에나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시어머니였다. 새 가족이 된 지 이제 2년 차인 나는 목포 사바나에서의 포지셔닝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었는데 이번 여행으로 확실해졌다. 나는 신입 하이에나다. 기존의 질서에 편승하되 새 바람을 일으키고도 싶은.


결혼을 준비할 때, 남편에게서 하이에나 체제를 전해 듣고선 그랬었다. "하이에나 셋이면 시아버지 혼자서 외로우시지 않을까? 내가 좀 편도 들어드리고 해야 균형이 잡히겠다."라고. 그 말, 오늘부로 전부 취소다.


"말리지 않아. 환영해."


남편의 지지는 유쾌하고도 시원했다. 남편은 하이에나 입단식 기념으로 숙소 앞에 마련된 우미카지 테라스(쇼핑 복합 아케이드)로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사자가 그렇게 주장하던 '힐링'을 방해하지 않고 싶기도 했고 비가 내리는 오키나와 해변에서 뭐라도 먹으며 답답함을 풀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그리고 고민 끝에 뜨끈뜨끈한 카레크로켓 빵을 입에 물었다).


저 멀리 있던 먹구름 무리는 어느새 머리 위에 와 있었다. 나하 공항에서 막 이륙하는 비행기들이 몇 보였다. 하늘도 나도 으르렁대면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지켜보았다.



차라리 티셔츠 속 고야처럼 파도라도 탔으면 덜 울렁거렸을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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