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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성이란 이름과 진동

셋째 날과 류큐 왕국

by 프로이데 전주현 Dec 10. 2024


여행 계획 당시 가장 공을 들였던 건 오키나와 역사 공부였다. 우리나라의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사를 거쳐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큰 전쟁의 격전지로 갖은 희생을 감수했다는  점, 그리고 일본에 잡아먹히기 전에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다는 점에 유독 마음이 쓰였다. 때문에 셋째 날의 일정은 일종의 역사 투어로 짜두었다. 그런데 그게 또 사자의 힐링과는 좀 맞지 않았나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역사 투어의 날은 또 렌터카를 반납하는 날이었고 온천이 있는 곳으로 숙소를 옮기는 날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야 했는데, 역시나 문제는 노린재였다. 노린재에 덩치 큰 캐리어를 두 개나 싣고서 다니려니 트렁크 자리가 많이 부족했다. 하는 수없이 하나는 뒷좌석 가운데 장벽처럼 세워두고서 출발했다.


“어머니, 갑자기 이렇게 생이별을 하게 되었네요.” 내가 트렁크 위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러게. 허허."

“뒷좌석 안 불편해요?” 남편이 물었다.

“괜찮아."


 사자는 아무 말 없이 핸들을 틀었다.



오키나와 어르신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말, ‘류큐’! 그 흔적을 찾아서 슈리성으로 향했다. 슈리성은 1429년 나하를 중심으로 오키나와 본섬을 통일해 탄생한 류큐 왕국의 정궁이었다. 비록 망국의 성이었으나 오키나와 사람들에겐 자부심이자 위안의 존재라고 한다. 아마 일본의 수탈과 세계대전의 여파로 몸도 마음도 헛헛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여전히 서울의 고궁을 관리하고 방문하듯, 오키나와 사람들도 슈리성을 아낀다. 이곳엔 1945년 미군의 나하 포격으로 흔적도 없이 소멸된 아픔이 가득한데, 안타깝게도 2019년 전기 합선 사고로 화재가 발생해 건물 6개고 전소해 버려 상실감과 애정이 배가 되었다. 여러모로 상처를 크게 입은 슈리성은 2020년부터 복구 작업에 다시 들어가 2026년 재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불에 타지 않은 구역에 한해 방문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리얼 오키나와> 110쪽).


슈리성 근처에는 유료 대형 주차장노린재를 세워두고 고산책을 시작했다. 입구부터 약간의 오르막. 진회색의 돌계단과 벽들이 묵직한 인상을 주었다. 자주색이라고 하기엔 밝고 색이라고 하기엔 한 붉은색이 지붕과 기둥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전체적인 인상이 한국, 일본의 성보다는 중국의 성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완만한 언덕에 턱 높은 돌계단 몇 개 올랐을 뿐인데 뒤를 돌아보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성벽 주변엔 예전 류큐 왕국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 비교해 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카이라인이 낮고 집들이 드문드문.  크게 달라 보이진 았았다. 오전이었는데도 햇빛이 강렬했다. 나무 그늘 하나 없었고 구름 한 점 지나가지 않았다. 나야 더위에 강한 편이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그러질 못했다. 특히 사자가 힘들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반바지를 입고 계시더니 오늘은 긴바지 차림이셨다. 그래도 선글라스와 모자는 잘 챙겨 오셨네.


성 내부 곳곳에서 오키나와의 상징 동물인 시샤도 발견했다. 언뜻 보기엔 우리나라의 해태와 묘하게 닮은 시샤는 건물 입구나 지붕 위에 액막이를 위해 장식한 상상 속 동물이다. 남녀가 늘 쌍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인데, 수놈은 입을 벌려 복을 받으려 하고 암놈은 복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입을 앙 다물고 있는 게 특징이라고.

나는 여행 책자에 소개된 슈리성의 설명문을 읽으며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 애초에 남편과 슈리성 관람 시간을 한 시간 반 정도로 잡아두었었는데, 이거 원,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아서 40분도 채 안 되어서 관람을 마칠 수도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유료 구역도 보기로 했다.


매표를 하고 들어서자마자 화재사고를 당한 건물(푸진문)의 가벽이 눈에 들어왔다. 와, 여기 원래 모습 그대로 있었더라면 꽤 멋졌을 텐데. 공주의 거실이자 차기 국왕의 즉위 의례가 이루어지는 요호코리전마저도 제 기능을 하고 있질 못했다(푸진문의 복원 과정을 담은 영상과 약간의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방금 지출한 1600엔은 슈리성 유료 구역의 입장권이라기보단 푸진문의 복원작업을 위한 기부금처럼 느껴졌다. 볼거리가 풍성하진 않았지만 돈이 아깝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화재 소실로 인한 상실감, 전통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푸진문의 가벽을 끼고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니  유리 통창의 건물이 나왔다. 방문객들에게 공개된 복원실이었다. 작은 돌 하나하나 넘버링이 되어있었다. 푸진문의 조각들인 듯했다.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블록 놀이가 떠올랐다. 그에 비할 수 없이 정교하고 숭고한 작업이지만, 한 시대의 역사가 놀이와 비슷하게 복원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로마에서 봤던 문화재 복원 풍경 생각난다, 그지?" 신혼여행이 떠올라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비슷하다 정말.”

“폐허 망가진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 좋아 참.”

“그래도 이렇게 애쓰고 있잖아. 괜찮아질 거야."


남편의 손을 꼭 잡고서 슈리성 동쪽 성벽길(동쪽 아사나)로 올라갔다. 전망대의 가장 높은 지점에 징을 들고 서 계신 직원 분이 보였다. “징 체험 한번 해보시겠어요?” 직원이 시어머니께 살갑게 물어왔다. 시어머니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 수락하셨다. 시어머니께서 꽹과리보다 조금 큰 크기의 징을 넘겨받으셨다. 책임감을 느끼셨는지 허리를 곧게, 어깨를 활짝 펴셨다. 엄숙한 소리와 진동이 세 번 울려 퍼졌다. 눈에 들어오는 나하 시내 저 먼 곳까지 미세하게나마 퍼져 나갔을 진동. 그 진동의 움직임을 생각하니 괜히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상처 투성이인 슈리성에서 울리는 소리라서 그랬을까?


 와중에 사자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난 안 해, "하고 도망가시던 때는 언제고 어느새 쪼르르 시어머니 앞으로 달려왔다. 이벤트를 정리하고 가시려는 직원 분께 자기도 한번 해보면 안 되겠냐 눈빛으로 호소하셨다. "아, 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징이 사자에게로 넘어갔다. 입을 앙 다물고 슈리성 꼭대기에 우뚝 선 사자. 그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더니, 댕! 꽤나 텀을 길게 두고서 한껏 몰입한 듯이 한번 더, 댕! 그리고 큰 심호흡과 함께 마지막으로, 댕!


여운 있는 연주 직원 분과 주변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날 밤의 앙심이 남아 있어 핸드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내려가는 길에 정원을 구경하고 점심 드시러 가실까요? 특별한 곳을 예약해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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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준비와 과정을 살피고 정원을 구경하는데, 복잡하게 얽힌 나무 기둥을 보았다. 슈리성과 함께한 세월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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