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지기 비하인드 에세이
쓰는 사람 전주현 (...) 사연 있는 물건이라면 오래되고 작은 것도 곁에 두는 버릇이 있다. 그 덕에 이야기 더미에서 일어나고 글을 쓰며 잠을 청하며 지낸다. / 그리는 사람 최정연 (...) 삶에서 그림은 너무나도 당연했고 살아내기 위해 걸으며 가장 자연스러운 저를 닮은 초록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 '지음지기 작가 소개란' 중에서
2025년 1-2월, 지음지기는 겨울방학을 나고 있다. 바삐 달려온 2024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프로젝트의 재료를 모으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다. 3월 초, 지음지기의 주요 입고처인 터무니책방을 방문해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으로(터무니책방의 영업일이 3월 30일까지로 정해졌거든요ㅠㅠ) 정기회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비하인드 에세이를 줄곧 읽어 온 사람이라면 짐작할 만한 대목이 있다. 지음지기의 다음 프로젝트의 초성이 리을(ㄹ)이라는 거. 리을로 시작하는 여러 키워드 중에서 정연이와 내가 고른 건, '료리(요리)'다. 아니, 이응(ㅇ)에서 요리를 하면 되지, 왜 굳이 리을에서 '료리'를 가져오냐고? 이응 차례가 오기까지 기다리기엔, '료리'라는 키워드의 매력도가 너무 높아서, 유머와 반전을 더해 리을에서 그냥 해보기로 했다(하하 제작자 마음대로 하는 게 독립출판의 매력 아닐까?).
[선 온라인 연재, 후 단행본 출간]이라는 공식을 프로젝트 리을에서도 고수할지는 조금 더 고민하고 있다. 해당 방식이 지음지기의 작업 속도를 높여준 건 맞지만, 온라인상에서 확인 가능한 콘텐츠를 직접 사서 읽기란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엔 북페어나 북토크 등 독자분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 콘텐츠와 책을 함께 공개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볼까도 싶다. 이따금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업 일지를 공유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독자분들과 소통하는 재미도 쏠쏠하기에 작업 공정을 어디까지 미리 공개하고, 어디서부턴 감춰둘지 정연이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한다.
사실, 방학 초반부부터 아팠다. 대전 북페어 '에피소드 오브 파타르'를 무사히 마친 것까진 괜찮았는데, 그 이후에 한 10일간 감기몸살로 전기장판과 한 몸이 되어 지냈다., 때문에 연말 분위기를 내면서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고 수다를 떤 게 얼마 되지 않았다. 달력은 이미 2025년인데. 조금 늦게 돌아본 2024년은 지음지기 일로 가득 차 있었다. 1년 반 동안 준비해 온 것들이 한꺼번에 축포를 터뜨리다니, 얼떨떨한 일이다.
2024 연말정산 느낌으로 적어 두었던 글을 꺼내 브런치에 가져온다. 더불어 쓰기와 창작을 계속해보겠다는 다짐도 복사한다. 방학 뒤에 다가올 개학을 기다리며, 옆에 앉을 짝꿍정연이와 나눌 이야기를 기대하며 브런치북 <숲에서 도토리를 주운 사연>의 연재를 마친다. 다시 이만큼의 비하인드 일화가 쌓였을 때, 또 다른 작업일지를 써 내려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때까지 지음지기의 곁에 이야기의 씨앗이 많이 뿌려지고 독자님들의 관심이 계속 부어지길 기도한다.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의 대화와 고민이 좋았다. 그들은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 내 삶도 더 영화 같아질 것 같았다.
(감히) 직접 대화를 주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로 하진 못했다. 듣고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 커지자 나도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졌다. 고민하고 싶어졌다. 매일 마스크를 새로 바꿔 쓰며 지내던 시절엔 급기야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쓰기의 문을.
쓰고 싶다면 쓰자고, 입으로만 얘기할 게 아니라 바로 펜을 들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자고 주문을 외웠다. 그때, 이전부터 좋다면서 쫓아다니던 예술가들의 작품과, 주변에 있는 예술가 친구들의 경험담이 힘을 보태주었다. 정연이는 내게 <아티스트 웨이>를 소개했고, 아빠는 대뜸 '중꺾마'를 외치며 짧은 응원을 보냈다. 흘려보냈을지도 모를 주변의 소리를 귀담아들은 건 정말 잘한 짓(?)이었다.
특히 2024년은 그간 내가 해온 쓰기란 이름의 중노동이 책이란 물성으로 재탄생한 해였다. 열매라면 열매이겠고 시행착오라면 시행착오라 볼 수 있는 책이 다섯 권 완성되었다. 지역 서점이나 북페어를 통해 독자 분들을 만날 기회도 생겼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감격스럽게도 동병상련의 예술가들을 만날 일도 잦아졌다. 오늘처럼 서로를 작가라 부르며 격려하고 질문하는 시간이 자꾸 생겼다. 터무니책방에서 만난 엄선 작가님, 제주 북페어에서 만난 담아 작가님, 퍼블리셔스테이블에서 만난 재희 작가님, 아마도 생산적 활동에서 만난 꽃마리 작가님, 에피소드 오브 파타르에서 만난 태순 작가님과 마운틴구구 작가님... (이 말고도 너무 많지...) 한 분 한 분을 알아가는 게 즐겁다. 배우는 것도 많고.
문을 열었더니 따뜻한 곳이 나왔다. 어찌나 넓은 곳인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산들바람이 분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레일도 눈에 들어오고 아름다운 것을 사모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2025년에도 그곳을 노니고 싶다. 탐험하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노동, 나의 글쓰기를 위해 움직이고 싶다.
끝으로, 나의 친구이자 동료인 정연이에게도 많이 고맙다고 적고 싶다.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