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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un 26. 2024

부디 좋은 꿈을 꾸자




일이 너무 많다.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하다 깨달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날을 간절히 바랐었는데. 그때엔 일이 없어 너무나 일이 갖고 싶고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내 일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가 그토록 절실했는데. 몇 년 뒤에 이처럼 일이 많아 쉬고 싶은 지경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 그러니까, 꿈은 이루어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토록 바랐던 미래에 닿아있다.



일감이 쉴 새 없이 들어와 며칠을 번역으로 꽉 찬 상태로 보냈다. 연이은 마감을 간신히 맞추느라 나를 바짝 쥐어 짜낸 기분이고. 그러느라 어깨가 굳어 묵직하고 손의 마디에선 여진처럼 가벼운 통증이 맴돈다. 쫓기듯 마감은 지키고 있는데 이상하게 불안이 쌓인다. 하고 싶은 일이 자꾸만 뒤로 밀려서 그렇다.



1957년 3월 4일 월요일
장애물에 걸려, 꼼짝도 못 하고 정체되어 있다. 머리에 마비가 와서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1958년 3월 8일 토요일 밤
내가 살아 있는지, 살아 있었던 적이나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그런 밤이다.

1958년 3월 10일 월요일 밤
녹초가 되다. 그렇지 않은 날이 하루라도 있을까.

1959년 3월 9일 월요일
글쓰기 이외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소망. 유일한 직업으로 작가를 택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너무 메마르고, 너무 자주 고갈이 찾아온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인용한 금정연의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에서 재인용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김선형 옮김, 문예출판사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금정연, 북트리거




책이 읽고 싶고, 읽었던 책을 정리해 글을 쓰고 싶고, 예전에 써 둔 글도 퇴고하고 싶고... 책만 읽고 글만 썼으면 좋겠다, 번역하느라 너무 메마르고 너무 고갈된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글쓰기만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는 걸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고 그걸 옮겨 적으며 자신의 일기를 덧붙인 금정연 작가의 일기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를 보며 깨달았다. 글쓰기만 하더라도 불안과 괴로움은 찾아오기 마련이고 작가들이야말로 다른 직업을 갖길 소망할지 모른다고.



미국의 심리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 내면세계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며 변덕스럽고 언제나 전환 중인 상태라고 말했다. 그런 전환들 자체가 실제이며 경험이란 '수많은 전환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이걸 하다 보면 저걸 못하는 것 같고, 저걸 하다 보면 또 이게 부족한 것 같은 끝없는 갈등상태를 맞는가 보다. 우리 안에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내면이 있고 현재는 언제나 무언가를 향해 전환 중이기 때문에. 전환으로 인한 불안과 초조를 완전히 떨쳐내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어쩌면 이 불안정한 상태가 삶의 본질임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 최선인지도.



발을 동동 구르는 불안에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또 다른 불안이 말한다. 글만 쓰더라도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올 거야. 그러니 불안해할 시간에 다른 걸 해 봐. 불안에 사로잡히는 대신 불안에 무심해 보라고.



불안을 슬쩍 지나치는 법을 알지. 걱정하느라 멈춰 서는 대신 “백 미터만 앞으로 더" 나아가보기. 내 주변 일 미터 반경에는 박연준과 안미옥의 시집이 있으니 손만 뻗으면 시 한 편을 읽고 필사할 수 있고. 불안에 어깨가 무너질 것 같다면 차라리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볼까.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 끓을 때까지 기다리기. 작고 귀여운 틴 케이스에 담긴 찻잎을 우리기. 창문을 열고 창밖의 분주함을 가만히 바라보기. 그러다 생각난 듯 소파 한 편에 포개어 둔 빨랫감 개키기. 물주는 걸 깜빡한 화분에 물 주기도 있지. 그러다 이런 생각에까지 닿는다. 창밖의 나무들이 푸르게 울창해졌으니 거실 한가운데 두었던 테이블의 위치를 바꿔볼까. 창을 바라보도록 움직여 볼까.



몸을 움직이는 사이 불안은 폴폴 날아올라 흔적을 감춘다. 창 쪽으로 테이블을 옮기자 거실 한가운데 너른 여백이 생긴다. 그 여백이 내 마음 같다. 그걸 안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오늘까지 마쳐야 할 일을 시작한다.



점심에는 바쁘니까 간단히 먹자, 생각하다 메밀면을 삶는다. 동네 김치 가게에서 사다 놓은 열무김치가 있으니까. 삶은 면 위에 열무김치 올리고, 간장, 식초, 설탕 넣고. 단숨에 후루룩, 맛있게 먹는다. 일 년 내내 맛깔난 김치를 만들어주는 김치 가게 아주머니의 성실함 덕분이다. 한결같은 아주머니의 하루에 기대 나는 끼니를 챙긴다.



늦은 오후 번역을 마친 문서를 메일로 전송한다. 머리는 마비된 듯 꽁꽁 얼어붙었다. 저녁을 먹고 반납일이 된 책들을 챙겨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을 반납하고 그냥 돌아설 수 없어 또 새 책을 빌리고. 이 책들이 빨리 읽어달라고 또 다른 불안을 부추길 테지만. 도서관 옆길에서 늘 보이던 황토색 고양이는 온데간데없고 오늘따라 검은색 줄무늬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벤치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가 벤치 아래 있는 고양이를 틈새로 내려다보며 손짓을 한다. 벤치를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하듯 둘이 어긋난 방향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웃고 만다. 오늘도 삶은 기어이 나를 웃게 하는구나.




한꺼번에 다 하겠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게 겁나는 일이다. 소설이 그렇듯. 시험이 그렇듯. 하지만 한 시간씩, 매일 하루씩 해 나가다 보면, 삶도 가능해진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인용한 금정연의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에서 재인용



훌쩍 결과에 닿길 바라는 마음이 불안을 키운다. 그저 묵묵히 과정 안에 머무는 마음이 불안을 길들일 수 있다. 한꺼번에 다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매일 한 시간씩. 그렇게 쌓이면 무엇이든 될 수 있지.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과정에서 나는 이미 꿈에 닿을 수 있지. 글을 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그도 아니라면 꿈꾸는 사람이 된다. 되었고 되고 있고 되어 간다. 내내 과정 안이면 좋겠다고, 어느새 불안을 잠재우는 말이 스스로 자란다.



너무 많은 걸 쥐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것저것 움켜쥐느라 힘이 꽉 들어간 손을 풀어 볼까.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촤르르 흘러내리고 마는 것들은 그냥 버리기로 하자. 그런 것 말고 손바닥을 쫙 펼쳐도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게 있다면 두 손바닥을 맞붙여 그 안에 가두자. 그걸 내 꿈이라고 이름 붙이고 날마다 한 시간씩만 돌보자. 일이 너무 하고 싶다고 꿈을 꾸었더니 그렇게 된 것처럼 꿈은 이루어지니까. 부디 좋은 꿈을 꾸자. 가장 고운 꿈을 손바닥에 잠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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