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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Apr 13. 2016

주황빛과 푸른색의 정원

#  Morocco - Marrakech

 

주황색과 푸른색의 도시  


1월의 오후,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길, 검은흙의 평원과 둔덕을 뒤덮은 무수한 선인장들의 반짝이는 자태, 농작물의 종류가 달라서일까, 다양한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깊은 능선들이 이어진다. 버스로 약 3시간 30분을 달려오니 짙은 야자나무숲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주황색 점토로 만든 각이 진 사각형 집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따뜻한 어도비adobe의 주황색 도시 풍경은 마라케시를 생각할 때면 페이드인 되듯 늘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마라케시는 1070~1072년, 베르베르 왕조인 알모라비드Almoravid 왕조 때 수도로 건설되었으며 16세기 사디왕조의 수도였던 곳으로 시내에는 대부분 이 시대의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메디나의 담장


늦은 오후에 도착해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제마엘프나Jamma el Fna광장, 어둠이 내리면 그곳은 도시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힘을 발산하는 곳이다. 광장 가까이 있어 밤에는 시내 어디에서도 보이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을 보고 걷는 것일까, 도시의 걷는 이들은 대부분 광장을 향해서 걸어간다. 사람들을 따라 시원하게 느껴지는 밤공기를 가르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광장의 왁자지껄함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    

 

Koutoubia Mosque  


제마엘프나 광장과 길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이 모스크의 탑은 77m의 높이로 1153년 술탄 압달 무민에 의해 착공 Yaqub al-Mansur의 통치시기인 1190년 준공되었다. 모스크의 광장은 길을 하나 사이로 제마앨프나 광장과 연결되어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도시의 어디에서도 보이는 마라케시의 랜드마크는 내부에 17개의 예배당이 있으며 동시에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나 보이는 Koutoubia Mosque의 미나레트


놀라운 크기지만 높고 아름다운 미나레트로 인해 모스크의 넓이는 사실 관심 밖이다. 모로코의 수도 Rabat에 있는 44m의 하산 탑(원래의 설계는 86m)과 스페인 세비야의 히랄다Giralda탑도 쿠투비아 모스크의 미나레트가 모델이라고 한다. 이베리아 반도와 당시에는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 있는 하산 타워, 미완성이다.


제마엘프나Djamma el Fna광장


어둠이 장막처럼 내린 메디나의 중앙은 불야성이다. 천막으로 이루어진 먹거리판은 기본이요, 광장에 둥글게 모인 사람들의 틈을 헤집고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작은 공연을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점을 보는 곳까지 있다. ‘죽은 자의 광장’이란 뜻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이 곳이 그 옛날에는 죄인을 사형시키고  목을 걸어놓는 장소였다고 한다. 대낮에 메디 수크(시장)의 골목길에서 정신을 팔다가 길을 잃었다면, 광장으로 찾아가면 오케이다. 모든 골목은 광장과 연결되어있어, 페스(즈)와 달리 마라케시에서는 길을 잃을 수가 없다.  


정신없는 광장의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그곳이 그곳 같지만 오랜 친구 집을 들리듯 몇 년 전 왔었던 주스 가게를 찾았다. 석류와 오렌지 주스 한잔씩을 마시고 나니 이제야 내가 마라케시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밤의 제마엘프나 광장
광장에 모인 다국적 손님들

    

 Majorelle Blue 그리고 Majorelle Garden   

  

푸른색 물감 통에 빠져 살고 싶을 정도로 Blue에 매료되어 살던 시절이 있었다. 예전 마라케시를 방문했을 때 못 봤던 곳이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단 택시를 타고 달려온 곳이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멀지 않아 10 디르함을 지불했다. 입장료는 70 디르함, 나만큼 마음이 바쁜 사람들인지 입장시간이 되기 전인데도 벌써 서너 명이 정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


1924년 프랑스 화가 자크 마조렐Jacques Majorelle(1886~1962)은 모로코 전통 어도비 형식으로 집을 짓고 모로코 식 작은 창을 내고 모로코의 타일을 닮은 푸른색을 사용해 집과 담장을 칠했으며 정원에는 물이 흐르는 수로를 놓아 이슬람식 분수를 만들고 선인장으로 우거진 정원의 곳곳을 꾸미기 시작하여 모로코의 하늘을 닮은 푸른 정원을 만들었다.


마조렐 블루의 느낌이 생생한 대표적인 곳
빛과 자연, 블루의 하모니
정원과 사람들


자크 마조렐이 정원의 모든 곳을 칠한 마조렐 블루Majorelle Blue는 모로코의 타일의 푸른 색깔에서 힌트를 얻은 색으로  Ultramarine(군청)과 Iris(우리말로 하면 남보라 색에 가까운)의 중간색에 가까운 색으로 블루에 보라색을 띠고 있어 명도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더욱 강력하면서도 산뜻하며 신선한 Blue로 보이게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모로코식 장식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브 생 로랑, 그의 정원이 되었다.


1947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아름다운 정원을 자주 찾았던 이브 생 로랑Yves Saint-Laurent과 그의 연인 피에르 베르제 Pierre Berge는 1962년 프랑스에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죽은 마조렐의 정원이 호텔로 팔린다는 소문을 듣고 1980년 정원을 구입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한다. 너무나도 이 정원을 사랑한 이브 생 로랑의 바람이었는지, 2008년 죽은 후, 그를 태운 재는 마조렐 정원 곳곳에 뿌려졌다. 모든 여성은 로랑에게 얼마간의 빚을 지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6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오랑Oran에서 태어난 YSL(이브 생 로랑)은 여성을 권위와 보수에 억눌린 옷차림에서 해방시켜준 디자이너였다.  


이국적인 색채와 문화, 전통의상 등에 관심이 많았던 생 로랑의 Museum에는 모로코의 전통 의상 및 텍스타일과 세라믹 그리고 장신구들이 있으며 화가 자크 마조렐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2002년에 은퇴를 했으니 정원은 그의 마지막 삶과 같이 했던 곳으로, 뮤지엄 옆에는 아담한 생 로랑의 갤러리가 있다.


20세기 표현주의 미술의 세례를 받은 로랑의 포스터 작품들은 그의 생애를 관통했던 사랑에 대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미술이란 실로 온전한 내면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작품 하나하나에서 안면도 없는 생 로랑의 눈빛과 심장의 파동이 느껴진다.  


이브 생 로랑의 갤러리 입구
살아생전  마조렐도 이브생로랑과 피에르 베르제가 살던 집, 지금은 뮤지엄이 되었다.
블루와 노랑,  마조렐은 블루를, 이브 생 로랑은 노랑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Menara gardens   

 

마조렐 가든에서 메나라 가든까지 생각보다 멀어 택시비로 30 디르함을 지불했다. 입장료는 10 디르함, 메나라 가든은 마라케시의 서쪽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정문에서 보면 순간 휑한 느낌마저 든다. 나이 많은 올리브 나무들을 바라보며 넓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파빌리언과 인공호수는 과수원과 올리브 농원에 둘러싸여 있다. 인공호수는 넓은 부지의 과수원과 올리브 농원에 물을 대기 위한 곳이었다는데, 그렇다면 가든이 만들어질 당시의 모습도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메나라 가든의 이름은 파빌리언의 녹색의 피라미드형 작은 지붕menzeh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든은 1130년 베르베르 왕조인 알모하드 왕조의 압달 무민Abd al-Mu'min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파빌리언은 16세기 Saadi 왕조 때 건축되었고 1869년에는 모로코의 술탄 Abderrahmane이 수리하여 여름에 이곳에 와서 종종 머물렀다.

녹색모자를 쓴 파빌리언, 앞쪽에 인공호수가 있다.


호수는 가든과 과수원에 물을 대기 위한 농사에 필요한 저수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물은 마라케시에서 약 30 km 밖, 아틀라스 산에서부터 카나트qanat를 이용해 물을 공급한다고 한다. 카나트란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져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아랍세계로 퍼져나간 수준 높은 오래된 지하 관개시스템이다.


메나라 가든의 인공호수, 파빌리언에서


메디나 동남쪽 바깥쪽에 있는 12세기에 만들어진 엄청나게 넓은 Jardin de l'Agdal도 메나라 가든과 마찬가지로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과수원이 있는 시스템의 정원이라고 했다. 도심에 물을 끌어들여 물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은 이슬람 도시 건축의 기본이다.  


술탄이 이곳에서 명상을 하기 위해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내부 장식마저 소박하다. 피라미드를 닮은 녹색 지붕을 얹은 파빌리언이 호젓하게 호숫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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