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rocco - Fez
사하라에서 새벽 별을 보며 낙타 등에 올랐다. 도시인에게는 칠흑 같지만 사막의 어둠이 일상인 베르베르 청년은 여행자 몸집의 실루엣만 보고도 체격에 걸맞는 낙타에 태운다. 그의 몸짓에서 그들과 동거하는 낙타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막에서의 일출이 어디인들 이만 못하랴, 하지만 이곳은 사하라인 것을.
사하라의 새벽은 무척 춥다. 있는 옷을 다 껴입고도 낙타 몸의 양쪽으로 뻗은 발끝이 시리기도 하지만, 사하라에서 하룻밤을 지낸 척하고 떠나는 기분을 내는 내 모습에, 어찌할 수 없는 서늘함이 엄습해온다. 사구의 능선을 따라서 동이 트는 메르주가의 붉은색 카스바 호텔로 돌아왔다. 따뜻한 차와 함께 준비해 놓은 간단한 아침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사막의 인삼 '대추야자'
메르주가에서 페스까지는 하루 종일 달려야 한다. 메르주가에 멀지 않은, 오래전 옛날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사막 마을들을 지쳐간다. 끝없이 펼쳐지는 협곡마다 간간이 보이는 오아시스에는 한쪽이 무너져 나간 카스바들이 옛 영화를 상상하게 만들고,‘사막의 인삼’이라는 대추야자가 있는 풍경은 그림처럼 눈앞에 사라졌다 나타난다.
대추야자는 성경에 나오는 종려나무다. 작은 마을, 갓 수확한 대추야자를 팔고 있다. 관심을 드러내니 드라이버가 잠시 세워준다. 숙성이 된, 금방 먹을 수 있는 것은 상자에 담겨있고 어떤 것은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채로 손님을 기다린다. 이곳 사람들은 가지에 매달아놓고 숙성된 것부터 따서 먹는다. 선지자 모하멧이 40일 금식 기도를 한 후, 제일 먼저 우유 한 잔과 같이 먹었다는 대추야자, 가지에 달려있는 대추야자의 맛을 보니 꿀에 절인 것처럼 달콤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는 물류는 석유와 커피 그리고 대추야자라고 언젠가 다큐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다. 요즘은 대추야자의 효능이 알려져 이슬람권이 아닌 나라로의 수출도 늘었다고 한다.
작은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무게감이 생각보다 나가지만 한 두 개만 먹어줘도 여행 중에 스태미너식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페스 가는 길
페스(즈)로 가는 길, Midelt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이 금방 벼락이라도 칠 기세인데, 비가 땅이 패일 것처럼 내린다. 페스로 들어가는 길에 미들 아틀라스에 위치한 해발고도 1250m에 위치한 Azrou 숲에 잠시 들렀다. 안개에 싸인 녹색의 숲이 요정이라도 나올 것처럼 신비스럽다. 잠시라도 걷고 싶었다. 뒤를 따라온 드라이버 아지즈에게 눈빛으로 숲이 멋지다는 신호를 보냈더니 “Azrou란 굿모닝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안개에 휩싸인 숲의 모습과 사뭇 어울리는 거 같다. 황량한 아틀라스 이남의 풍광만 보고 다니다가 쭉쭉 뻗은 참나무와 아틀라스 삼나무가 빽빽한 녹음이 짙은 숲은 얼마나 환상이겠는가. 숲의 이름은 ‘Cedre Gouraud Forest’, 프랑스 장군의 이름을 붙였다. 그냥 아조르 숲이 더 좋겠다.
아조르를 지나 페스에 들어온 시간은 6시 30분, 긴 하루 비 내리는 밤, 다시 Fez에 왔다.
곡괭이로 만든 도시 'Fez'
이드리스Idrisid 1세(788~791)는 선지자 마호메트의 직계 후손(샤리프Sharīf)으로, 알리 가문 사람 중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 중의 한 명으로 모로코 북부 페즈에 북아프리카 최초 Sharīf왕조(789~921)를 창건하였다.
페즈는 이드리스 1세가 페즈(아랍어로 Faʾs는 곡괭이를 의미)를 만들기 위해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곡괭이를 사용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곳에는 817~818년 이베리아 반도의 안달루시아에서 코르도바 우마이야드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켜 쫓겨난 사람들과, 824년에는 튀니지의 Kairouan에서 폭동을 일으킨 두 부류의 사람들이 이주해왔다. 그야말로 자유를 찾아온 것일까. 이베리아의 안달루시안들이 정착한 페즈를 'Old' Fez라고 불렀으며 그 후에 이주해온 튀니지안들이 정착한 곳을 'New' Fez(al-'Aliya)라고 불렀다.
Idrisid왕조가 통치하는 동안 페스는 두 도시로 구성되었다. Idris I세가 세운 Fas Elbali와 그의 아들Idris II세가 만든 al Aliya는 1070년 Almoravid왕조 때 하나가 되었으며, 마그레브에서 매우 중요한 학문과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12세기 말, Almohad 왕조 때는 도시를 넓혔으며 도시 밖 언덕을 올라가면 도시를 둘러싼 Almohad walls을 볼 수 있다.
13세기에는 이베리아에서 쫓겨난 이슬람교도들과 함께 많은 안달루시아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페즈로 이주하였으며, 마리니드왕조시기에 당시 지식의 용광로 역할을 했던 페즈는 아랍과 유럽 세계까지 알려졌다. 종교적으로도 영향력을 미쳐 서쪽의 메카"Mecca of the West"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마리니드 왕조의 무덤인 메레니드 묘역이 있는 Merenid Tombs 북쪽 보즈노드Borj Nord 언덕에서 바라 본, 꽤 넓은 도시인 페즈는 부드러운 능선의 낮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산 아래에는 페즈(Fes el Bali)의 무너진 고대 성곽이 도시를 두르고 있다.
페즈의 골목 투어
두 번째 온 도시지만, 그냥 가이드 뒤를 따라다니는 가이드 투어를 하기로 했다. 가이드와 다니는 투어는 답답하기도 하고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생기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페즈에서는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왕궁에서부터 시작한 가이드 투어, 예전과는 달리 왕궁 주변이 시원하게 정리가 되었다. 지금도 술탄이 거주하는 왕궁은 13세기 마리니드Marinid왕조 때 만들어진 왕궁이다. 높은 궁의 담장이지만 담장에 박힌 조화롭게 대비된 아름다운 색깔의 타일은 그 날의 영광을 감추지 못한다.
멜라Mellah지구
신페즈지구(페즈엘자디드Fez Jdid)에 있는 왕궁을 바라보고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1438년에 만든 유대인 구역인 멜라가 있다. 페즈에 원래 살던 유대인과 아틀라스 지역의 베르베르 유대인, 안달루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모여 살았는데 금, 은, 보석 세공인들이 많았던 주민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로 이주했다고 한다.
한 때는 왕궁의 옆 노른자 구역에서 호떡 모자인 키파를 쓴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을 유대인 거리가,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시간을 재촉해서 나이를 먹어간다. 왠지 을씨년스러운, 이층 발코니의 펄럭이는 커튼을 바라보는 이도 쓸쓸하다.
가죽을 가공하는 태너리로 가는 도중에 타일과 도기들을 생산하는 세라믹 공방에 들렸다. 세라믹의 역사에서 로마 타일의 역사를 잇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타일은 현대 세라믹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즈 블루’라고 부르는 푸른색이 들어간 도자기는 또 어떤가, 공방에서는 만드는 공정이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원래 북아프리카와 안달루시아의 전통 세라믹은 연질 도기로 부드러워서 다른 것과 부딪치면 잘 깨진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려고 발전하다 보니 현재 유럽의 도자기 명가들이 탄생한 것이다. 설거지 도중에 한국의 강한 그릇들에 부딪쳐 쉽게 나갈지라도, 모로코의 푸른색을 매일 식탁 위에서 만나고 싶어 푸른빛의 작은 볼 두 개를 샀다.
페즈의 아이콘 Tannery
페즈에는 태너리가 다른 곳에도 있다고 하지만, 가죽 작업장 슈와라 테너리Chaouwara Tanneries 는 페즈의 아이콘이다. 지독한 냄새를 갖고 있지만 그 냄새마저도 페즈를 잊지 못하게 한다.
세라믹 공장에서 나와 태너리로 향하는 길, 냄새에 대한 기대(각오)를 하고 왔건만 태너리와 가까워져도 허전하고 뭔가 이상하다. 각오했던 지독하거나 참을 수 없었던 냄새가 오늘은 안 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많은 날 중에 태너리는 공사 중이다.
짐승 가죽을 가공하는 대표적인 작업 과정인 무두질tanning은 단백질과 기름, 잔털 등을 없애고 가죽의 사용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작업으로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술 중의 하나로, 따지고 보면 인류 최초의 산업인 셈이다.
가장 많은 여행객들이 올라오는 가게의 테라스로 올라왔다. 그래도 예전과는 달리 이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연령제한이 있으며, 작업 시간과 복지가 달라졌다고 한다. 무두질과 염색에 바쁜 땀에 젖은 부산한 장인들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인부들만 성큼성큼 작업 볼 위를 왔다 갔다 한다. 새로 복원하는 염색 장은 예전과 달리, 높이를 공정의 순서대로 조정한 느낌이다. 이곳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어서 복원도 제대로 할 것이다.
태너리를 나오는 길에는 태너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물길이 지나간다. 페즈는 페즈 강과 세부 강이 만나는 바로 위, 페즈 강가에 있다고 하지만, 페즈에 와서 한 번도 강을 연상해 본 적은 없다. 이곳은 강수량도 적을 뿐 아니라 매우 건조한 지역이어서 강물이 땅 위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강물처럼 흐르지는 않는다. 페즈는 ‘미들 아틀라스’ 산맥에 발달한 도시들 중의 하나지만 아틀라스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도 땅 아래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가죽 작업을 하는 태너리옆을 흐르는 물은 분명 수량이 많아 빠르게 흘러내리는 강의 폭보다는 좁은 천의 모습이었다. 도시가 생긴 이래로 계속되었던 페즈의 대표산업인 태너리를, 가죽제품을 파는 상점의 테라스에서 한 번이라도 내려다본 사람은 가죽 염색의 모든 공정이 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태너리 옆으로 흐르는 물을 보면서, 어쨌든 풍부한 물이 도시를 흐르며, 덧붙여 자연스럽게 수질오염에 대한 우려를 하지만, 페즈의 제품은 현대 가죽의 무두질에 사용하는 크롬이나 황산 크롬을 사용하지 않아 자연 친화적이다. 현대에도 섬유산업이 발달한 곳에는 강이 위치한다.
Medrasah Seffarine과 Bou Inania
Medrasah Seffarine과 Bou Inania(1351~56)는 마리니드 왕조 때 세운 학교들이다. 메디나의 골목 Seffarine광장 근처에서 만난, 우아한 Medrasah Seffarine는 13세기에 지은 학교Medrasah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건축이다.
중정마다 하늘이 들어와 있는, 밝고 단정하며 화재예방을 위해 윗부분은 목 조각으로, 아랫부분은 스투코 장식의 정점을 찍는 실내 인테리어는 알람브라를 넘어선다. 제일 처음 만났던 마그레브식의 이슬람 건축을 알람브라에서 봤으니 모든 건축물이 알람브라를 기준으로 정렬이 되고 비교가 된다.
알 카라윈Al Quaraouiyine과 꿈꾸는 여행자 Al-Idrisi
828년 이드리스 2세의 죽음으로 왕조의 영역은 아들들에게 분할되었다. 장남 Yahya ibn Muhammad 의 페즈 통치기에 세계 최초의 대학 알 카라윈Al Quaraouiyine이 세워졌다. 알 카라윈은 859년 개교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아랍세계의 전성기였던 10세기를 전후하여 세계 각지로 배출한 석학들은 너무 많아 나열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당시 영향력 있는 학자와 과학자, 철학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어려운 아랍어 이름들 중에 Al-Idrisi가 나의 관심을 끈다.
Al-Idrisi는 페즈 메디나의 미로 같은 골목에서 내가 만난 12세기의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인 동시에 뛰어난 지도제작자이다. 시실리의 왕 Roger II세(1095~1154)의 의뢰를 받아 만든 1154년 제작한 “Tabula Rogeriana”에 최초로 위도와 경도의 개념을 그려 넣은 지도로, 멀리 동쪽에 신라가 명시되어 있는 지도라고 한다. wikipedia에 들어가면 멋진 그의 지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지도는 이후로도 300년 이상 사용했던 세계지도였다.
낭만적인 성품이 엿보이는 제목의“The book of pleasant journeys into faraway lands.”라는 그의 다른 저서는 아프리카 사헬 지역을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다. 황금 무역으로 돈을 번 그 지역의 화려한 통치자의 생활은 물론이고 융성한 상업과 활발한 교역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제목을 붙이다니, 그에게 반했다.
알 카라윈은 현재도 여전히 모로코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학부도 많아지고 1956년 독립한 이후에는 여학생의 입학도 허용되었다고 한다. 설립연도를 보니 1088년에 설립한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보다 약 229년이나 앞서 있다. 대학 건물의 중심에는 약 22,000명의 참배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모스크가 있으며, 14개의 출입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대학 건물 탓인지 분수가 있는 아름다운 넓은 뜰에는, 젊은 청년들이 많다. 859년 개교한 Al Quaraouiyine과 1238년 세우기 시작한 알람브라Alhambra 궁전의 분위기와 매우 비슷하지만 타일 색깔의 사용은 이곳이 고전적이고 더 섬세하다.
한 때는 한 집안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에 술을 따르듯, 문명을 주고받았던, 평행으로 달리던 이베리아 반도와 마그레브의 두 문화가 이제는 밖으로 휘어져서 달린다. 영원히 만날 수 없을 만큼 이제는 너무 달라져버렸다.
The Batha Museum
페즈의 주민들이 자주 찾는다는 뮤지엄은 19세기 Sultan Hassan1에 세워졌으며 그의 후계자인 Alaouite왕조의 Abdelaziz(1878~1943)에 완성되었다. 당시에 이 곳은 여름궁전으로, 또는 중요한 손님들을 접대하던 곳이었다.
1916년부터 민속박물관으로 문을 연 바타 뮤지엄의 역사는 100년도 넘어선다. 연륜이 있는 박물관이니만큼
중요한 유물들도 많고 수준이 높다. 대체로 전통 공예품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도시의 폐허나 매드라사의 장식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문과 목각 공예품, 소석고의 조형물과 베르베르 카펫, 전통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그중 가장 볼만한 것은 14세기부터 최근까지의, 페즈 블루라 부르는 푸른색의 세라믹 작품이다.
박물관은 양쪽에 두 개의 큰 건물이 회랑과 정원에 난 산책길로 이어져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축물보다도 넓게 조성된 정원이다. 정원은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이 있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사이프러스, 야자나무, 호두나무, 아보카도와 라임, 엄청나게 큰 참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과 관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많지만 깊은 숲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정원은 매우 행복한 기분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