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rocco - Casablanca
Casablanca
페즈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카사블랑카로 간다. 가는 길에는 예전에 다녀왔던 라바트와 탕헤르로 갈라지는 길도 보이고, 녹색이 완연한 것이 내 마음 따라 봄의 도시로 가는 것 같다. 페스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한 버스는 1시가 다 되어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12세기에는 베르베르족 마을로 이름이 Anfa였던 카사블랑카(하얀 집)에는 지금도 도시 곳곳에 옛 이름이 남아있다. 내가 묵었던 낡은 호텔 이름도 ‘Anfa’ ,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도로 이름도 "Anfa Boulevard" 다. 1468년 포르투갈이 마을을 파괴하고 1515년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도시를 건설하고 카사블랑카로 이름을 바꿨다. 1755년 대지진으로 버려졌다가 18세기 알라위 왕조 때 도시를 재건하고 아랍 식 이름인 A-ddar Al Baidaa로 바꿨으나 유럽인들이 정착하면서 프랑스인들이 많아지자 메종 블랑슈(하얀 집)라고 불렀다. 1907년 프랑스가 점령하였으며, 프랑스 보호령일 때부터 모로코 제 1의 항구였다.
카사블랑카는 프랑스 보호령 시절 프랑스 건축가 Henri Prost가 디자인하였다. 개발된 뉴 타운의 정부 빌딩들과 호텔들은 안달루시아와 모로코의 건축양식에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을 융합하여 표현하였다. 기본 형태를 축으로 하는 직선적이며 실용적인 아르데코 양식은 알고 보면 북아프리카의 카스바나 일반 주택들의 형태와도 일맥상통한다.
Hassan II Mosque
제1부두와 가까운 Anfa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정신없이 택시를 타고 하산 2세 모스크로 달려갔다. 평소에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지만 택시가 필요했다. 오후 2시에 있는 모스크의 내부를 볼 수 있는 가이드 투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9시, 10시, 11시, 오후 2시라고 되어있지만 요일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꼬리를 무는 수많은 택시에는 빈 택시가 하나도 없다. 합승을 하는 수밖에 없지만 합승마저 수월 치는 않다. 간신히 합승으로 10 디르함에, 하산 2세 모스크까지 태워준 드라이버는 모스크에 도착하자, 10 디르함을 더 달란다. 오케이~.
광장은 얼마나 넓은지 달려본 사람만 안다. 혼이 빠지게 달려가니 2시에 시작하는 가이드 투어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지하 1층에 있는 매표소의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가이드의 매표는 끝난 상태, 그러나 아직도 영어가이드 줄에는 줄이 이어져 있다.
120 디르함을 내고 표를 사면 스티커를 붙이고 가이드를 따라서 모스크 내부로 들어간다. 신발은 비닐봉지에 넣어 가지고 다니지만, 너무 궁금했던 내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내부는 유리 바닥으로 되어있어 대서양의 파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있는 곳도 있다. 하늘은 모로코의 전통 가옥의 형태를 따라 하늘이 열려있다. 아니 거대한 하늘을 들여놓을 수도, 하늘이 안 보이게 닫을 수도 있는 자동개폐식 천정이다.
하산 2세 모스크(1980~1993)는 프랑스 건축가인 미셸 핑소Michel Pinseau가 설계한 이슬람 사원이다. 하산 2세(현 모하메드 6세 국왕의 아버지)의 이름을 딴 모스크는 이슬람 건축양식에 무어 양식과 모로코의 전통 건축양식을 결합하여 디자인했는데 모로코의 마라케시나 라바트, 페즈 등의 건축물은 물론, 튀니지, 다마스쿠스, 알제리, 코르도바 등의 이슬람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사원들의 특징들을 융합했다고 한다. 거친 파도가 치는 대서양에 면한 사원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세계에서는 3번째로 큰 모스크다. 마라케시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을 닮은, 녹색 띠를 한 미나렛의 높이는 약 200m가 넘는다. 기도시간을 알리는 무에진이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유수의 탑에 영향을 준 마라케시의 고고한 쿠투비아 탑이 겹쳐 보인다.
외부의 디자인만 봐도 범상치 않은 건축물임에 틀림없다. 10만 명가량 모일 수 있는 광장은 대서양으로 열려있으며 연속적인 모로칸 아치의 행렬은 사원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을 감싸면서, 우아한 팔로 안아주는 것 같다.
원래는 기하학적인 이슬람의 모스크가 이곳에서는 매우 아방가르드 하다. 보기에 따라서 거친 대서양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사원은 규모에 놀라고 아름다움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사람들이 떠난, 그리고 신이 돌아온 교회, Sacre-Coeur
지도를 보면서 물어물어 가는 것이 길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지만, 시간이 조급하니 택시를 타게 된다. 지도를 보여줘도 프랑스 말로 길을 물어도 소통이 어려운 것이 ‘사크레 쾨르(Casablanca Cathedral)’는 현재의 이곳에서는 사라진 이름 같았다.
그래도 큰 공원의 모퉁이에 있는지라 찾아간 곳, 아이들은 뜰에서 뛰어놀며 축구공이 유리창을 깨트려도 아무도 저지하지 않은 지 오래, 사내아이들은 여전히 공을 찬다. 십자가도 없는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이지만 형형한 기운은 그대로 살아있다.
교회는 프랑스 건축가 Paul Tournon(1881~1964)의 작품이며 산업화 이전의 중세 고딕 양식을 새롭게 부흥시킨, 19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네오고딕 양식이다. 1930년에 세워진 이교회는 1956년 모로코가 독립하고 교회의 기능이 멈춘 후, 지금은 문화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한 건물이건만 고결한 느낌은 종교사원에서 내가 느끼는 상식적인 감정을 넘어선다.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은 낡아있고, 구석에는 먼지가 쌓여 돌아다니지만, 네오고딕 양식의 간결한 집중력이 표현된 휑한 공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떠나간,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신의 집에, 신이 돌아와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스테인드글라스가 당신을 기다린다. 숨을 멎게 하는 그 공간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 버렸다.
The Old Medina
카사블랑카 제 1 부두(Port 1) 길 건너편 근처에는 근대식 포가 배치되어있는 나지막한 성채가 보이는데, Medina다. 요새로 오르는 입구의 계단과 성채 등이 근래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마라케시나 페스의 메디나처럼 사람 냄새가 풀풀 나는 골목은 아니지만, 여행객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나 저렴한 레스토랑들이 몰려있다. 늦은 오후, 이제 장사를 시작하려나보다, 레스토랑의 조리대와 연결된 테이블에는 갓 튀겨진 작은 물고기들이 숨을 내리쉬고 있다.
제1부두 앞, 호텔과 가까운 시장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맘에 드는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내일은 모로코를 떠나는 날, 오늘은 만찬을 하리라 생각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환전까지 했다.
아직 이른 저녁이라 손님이 많이 차 있지는 않지만 테이블의 숫자만 해도 손님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호세’, 그동안 먹어왔던 모로코식 쿠스쿠스와 타진이 아니라 해산물 요리를 먹기로 했다. 잘 차려입은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주류도 자유롭게 곧잘 주문하는 것이 모로코의 다른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카사블랑카만의 자유롭고 글로벌한 분위기다.
casablanca 맥주 두 병에 100 디르함, 오징어 요리Calamar Plancha 110 디르함, 철판 위에 구운 황새치 Pez Espada Plancha 120 디르함이다.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한 해산물의 씹는 질감이 살아있는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담백한 요리가 차려졌다. 그런데 안 마실 수도 없고, 맥주 값이 너무 비싸다.
카사블랑카의 추억
1907년 프랑스가 이 도시를 점령한 후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만들고, 20세기 전반에 걸쳐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면서 카사블랑카는 급속히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1942년 제작되었던 영화‘카사블랑카’는 글로벌한 도시의 이름과 분위기를 차용해서 만든 영화다. 이 영화의 주연은 셋, Rick Blaine으로 분장한 Humphrey Bogart와 llsa Lund으로 분한 Ingrid Bergman, 그리고‘카사블랑카’다. 로케이션 장소가 이 곳이 아니라고 밝혀졌어도 카사블랑카를 빼놓고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사람들은 영화의 환영을 좇아 이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릭의 카페’는 정녕 진실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 누군가에게는 소리 없는 얼굴로 릭이 다가올 것만 같은.
알제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흑백 화면 속,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답게 냉소적인 모습의, 그래서 더 멋진 험프리 보가드가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서성거린다. 어릴 적, 부모님이 잠든 캄캄한 안방에서, 이불속에 몸을 묻고 주말의 명화를 보는 것처럼.
영화는 이후 칼라로 복원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냥 흑백 영화 그대로가 좋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힘이 온 유럽을 덮었을 때 난민들이 전쟁터가 아닌 리스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비자를 얻기 위해 카사블랑카로 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던 미국은 돈이 없어 가지고 못하고 난민으로 카사블랑카에 머물게 된다. 릭은 난민들을 위한 카페를 운영한다. 난세에 ‘릭의 카페 아메리카나’는 그야말로 범세계적인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모이는 장소가 된다. 어느 날 통행증을 얻으려고 남편과 같이 온 파리에서의 옛 연인이었던 일자를 만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통행증을 준비해 일자와 그녀의 남편 라즐로를 떠나보내는 안개 속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카사블랑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주제곡 Dooley Wilson의‘As time goes by’와 함께.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