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 Nov 04. 2022

두 연인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 에스토니아  - 탈린, 카드리오르그

      

카드리오르그는 탈린 구시가지의 서쪽에 위치한다. 비루 게이트 부근 viru정거장에서 3번 트램을 타고 20여분 후에 Kadriorg정거장에서 하차했다. 트램은 깨끗하고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인지 매우 안전해 보인다. 요금은 앞으로 타면서 지불했다. 살펴보니 현지인들은 무료로 탑승한다.


녹지공간으로 이루어진 Kadriorg 지역은  Kadriorg공원Kadriorg Art Museum, 쿠무 미술관이 산재해 있는 거대한 도시 정원이다. 공원만 돌아보는 것도 꽤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카드리오르그 미술관만 보고 가는 사람이 많다. 규모가 있는 쿠무 미술관까지 돌아보려면 발품은 각오해야 한다.  

   

정원이 아름다운 카드리오르그 궁


Kadriorg는 에스토니아어로 캐더린의 땅 혹은 캐더린의 계곡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Catherine은 에스토니아어로 Kadri이며, 러시아식으로 말하면 예카테리나이다. 즉 카드리오르그는 ‘예카테리나의 궁전’이다. 궁은 표트르 대제가 황후인 예카테리나 1세를 위해 만들었다. 흔히 알려진 예카테리나 대제는 예카테리나 2세이다. 첨언이지만 상트 외곽 차르스코예 셀로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도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황제가 지신의 어머니 예카테리나 1세를 기리기 위해 만든 궁이며, 우랄 지역의 중심 도시 예카테린부르크도 마찬가지다.  

   

표트르 대제는 당시의 강국이었던 스웨덴과 약자였던 러시아와의 기나긴 전쟁이었던 대북방 전쟁(1700 ~1721)에서 승리하였다. 급기야 러시아는 유럽의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조국의 강병을 위해 그가 최초로 만든 함대는 발트 함대였다. 1710년 스웨덴이 점령하고 있던 탈린을 장악한 표트르는 1718년 7월 그토록 염원한 발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아내 예카테리나의 이름을 딴 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카드리오르그 건설에는 페테로호프Peterhof Palace의 캐스캐이드 분수를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 니콜라 미케티(1675 ~1743)를 비롯한 여러 명의 건축가, 조각가, 치장 벽토 마스터가 참여했다. 18세기와 19세기 동안 카드리오르그는 러시아 황실의 여름궁전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러시아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한 외관은 간결하며 규모는 아담하다. 장식적이며 기품이 넘치는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과는 달리 러시아 바로크 건축의 외관은 매우 단정하며 소박하다. 때론 파스텔톤의 색을 사용하여 밝고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공원과 연계된 정원이 넓고 아름답다. 해안가로 연결된 소로는 마치 상트 페테르부르크 근교 차르스코예 셀로에 있는 예카테린부르크 궁의 소로를 연상시켰다.       


메인 홀  

메인 홀

소박해 보이기까지 한 외관이 무색하게 실내로 들어서면 바로크 양식의 특징을 갖춘 화려하지만 다소 절제된 인테리어를 만날 수 있다. 작은 홀은 크리스털처럼 반짝인다.    

 

홀 천정에 있는 프레스코화는 신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아르테미스와 악타이온’이다. ‘변신’에 나오는 이야기는 정치 사회적 알레고리로 흔히 등장하는데 이 그림 또한 스웨덴과의 기나긴 대북방 전쟁에서 이긴 후 승리감에 도취된 상황을 그려 넣었다. 중앙에 나신으로 그려진 아르테미스(다이애나)는 달과 사냥의 신이며 순결을 상징하는 처녀의 신이다. 주로 숲과 야생에서 님프들과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르테미스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님프들과 함께 호수에서 목욕을 하던 찰나였다. 사냥꾼으로 유명한 악타이온은 동료들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우연히 아르테미스와 님프들의 목욕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악타이온을 발견한 여신은 분노와 함께 물을 뿌려 저주를 내렸다. 악타이온의 머리에서 뿔이 솟아오르면서 그는 수사슴으로 변해갔다. 악타이온이 데리고 다니던 사냥개들은 사슴으로 변한 악타이온을 물어뜯어 죽였다고 한다. 혹은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죽었다고도 한다. 그림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대북방 전쟁에서 승리한 표트르와 러시아이며, 막 뿔이 솟아나기 시작한 악타이온은 스웨덴이며 카를 12세를 의미한다.


다이애나와 악타이온, 메인 홀 전장화
예카테리나와 표트르 대제의 문장


홀의 양쪽에는 치장 벽토로 장식한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타 1세의 문장이 그들의 존재를 알려준다. 보랏빛이 감도는 푸른빛의 문장을 바라보며 두 연인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총명하고 유연하지만 매우 저돌적이면서 의심이 많은 표트르 1세와 모든 것이 미천하지만 차분하고 아름다운 예카테리나는 금슬이 남다른 부부였다. 표트르의 절친이자 총신 멘시코프의 집에서 왕과 하녀(리투아니아 출신 마르타)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신데렐라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동화 속 왕자와 공주처럼 결혼이 끝이 아니었다. 그들의 일생을 살펴보면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죽는 날까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었다. 아마도 예카테리나의 타고난 고귀한 품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 사이에 열 명이 넘는 아이를 낳았으나 안나와 엘리자베타만이 살아남았다. 1724년 표트르와 공동 통치자가 된 예카테리나는 1725년 표트르가 죽은 후 멘시코프를 비롯한 대신들의 추대로 예카테리나 1세로 후임 황제가 되었다. 1727년 표트르가 죽은 2년 후 그녀도 사망한다. 후일 작은 딸 엘리자베타는 쿠데타를 통해 황제가 된다.

     

전시실

    

내부에는 러시아 관련 미술품과 약간의 서유럽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미술관에서 봤던 일랴 레핀브률로프를 비롯한 이동파 작가들부터 낯익은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있어 내심 반가웠다. 특히 Abram Arhipov(1862~1930) 1916년작 ‘Girl in Red’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다.


Girl in Red, Abram Arhipov(1862~1930)
The girl caught in the net, 덴마크 화가 Christen Dalsgaard(1824~1907)
탈린 항구의 아침 1853, Aleksei Bogoljubov(1824~1896)


영화 공부를 조금만 했어도 찾아봤음직한 세계적인 소련 영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1925년작 ‘전함 포템킨’에 등장하는 ‘오데사의 계단’을 보고 싶어서, 한동안 우크라이나 여행은 나의 버킷 리스트였다. 영화는 1905년 흑해 함대 수병들의 반란을 그린 영화로 ‘오데사의 계단씬’은 황제 군의 민간인 학살 장면을 표현한 교차편집으로 유명하다. 흑해의 검은 파도 때문인가, 1885년의 오데사는 매우 치열해 보인다.


오데사 항구, Rufin sudkovski(1885)


이런 것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해야 하나, 지나이다 볼콘스카야Zinaida Volkonskaya의 흉상을 만났다. 뜻밖의 발견이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지나이다를 알았지만 조상은 처음이었다. 19세기 이탈리아 조각가 Pietro Tenerani(1789-1869)의 작품이다. 혈색만 창백한 아직 살아있는 지나이다 같아 보였다. 그녀의 흉상 앞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지나이다 볼콘스카야(1879 ~1862)는 러시아 왕자의 딸로 태어난 공주였다. 그녀는 왕족이기 이전에 시인, 뮤지션, 배우 등 활발한 활동으로 19세기 러시아 문화를 유럽에 알리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당시 유럽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그녀의 살롱을 드나들었다.     

지나이다는 조국 전쟁(나폴레옹과 러시아)을 승리로 이끈 알렉산드르 1세(1801~25 재위)의 연인이었으며 니키타 볼콘스키의 아내였다. 니키타 볼콘스키(1781~1844)는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이끈 세르게이 볼콘스키(1788 ~1865)의 형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세르게이 볼콘스키를 모델로 삼아 주인공 안드레이 볼콘스키를 그려냈다.

내가 그녀를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잦은 스캔들과 정치, 종교 문제로 야기된 여러 번의 위기에도 희생되지 않고 끝내 자존감을 잃지 않고 생을 지켜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까지 살아남은 그녀의 삶이 아름답다.    

 

지나이다 볼콘스카야Zinaida Volkonskaya(1879–1862), Pietro Tenerani 작


Fjodor Rokotov(1735 ~1808)가 1779년에 그린 ‘Countess ekaterina Orlova’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마치 은은한 빛의 아우라가 에워싸는 듯하다. ‘오를로바’란 이름을 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생각났다. 예카테리나 2세의 정부였으며 그녀를 러시아 황제가 될 수 있도록 도운 오를로프 백작Count G G Orlov이다.

오를로프Orlov는 1760년 예카테리나 2세의 정부가 되었으며 1762년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그녀를 황제로 만들었다. 1772년경에는 오랜 연인 예카테리나  2세의 곁을 떠났으며 1775년에는 사촌 누이와 결혼했다. 7년쯤 후 백작부인이 사망했으니 오를로프 백작의 결혼생활은 너무나 짧았다. 인물화의 달인인 표도르 로코토프는 그가 평소 즐겨 사용한 완벽한 묘사가 아닌, 섬세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필치로 그녀를 단순화시켜 표현했다. 자꾸 보고 싶고 생각나는 로코토프의 역작이다. 그림의 주인공이 그녀라면(그녀일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오를로프 백작의 불우한 말년은 그녀의 이른 죽음 때문이었을까.    

    

Countess ekaterina Orlova, Fjodor Rokotov 작


쿠무 미술관Kumu kunstimuuseum     


카드리오르그 미술관은 약 1시간가량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미술관이지만 미술관 정원이 아름다워 볼거리도 많다. 공원이 넓어 이동 거리도 꽤 멀다. 쿠무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30분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혹시 점심시간에 휴관을 하면 어쩌나 했지만 매표창구에 사람이 있어 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쿠무 미술관은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술관으로 대부분 18세기부터 현재까지 활동한 에스토니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간결하고 세련된 인상적인 외관은 마음까지 가볍게 만들어준다.

탈린 구시가지를 그린 옛 그림들이 반긴다. 그때나 지금이나 탈린은 여전히 아름답다.


View of Tallinn with Hattorpe Tower, Alexander Georg Schlater(1834~1879)
Old Stagecoach Station at Nunne Gate in Tallinn 1865, Ernst Hermann Schlichting(1812~1890)
희생된 에스토니아 사람들의 조상
쿠무 미술관


때론 이들이 간직한 아픔을 하나씩 풀어놓은 전시실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보낸다.


배가 고파 서둘러 나와 늦은 점심을 미술관 야외 카페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여담이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 카페에서 먹는 메뉴는 세계 공통으로 맛있다. 아마도 2시간 이상을 관람하다가 지쳐서 늘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해안가로 난 소로를 통해 나오면 천사상이 보인다. 천사상의 모습이 꽤 씩씩해 보였다. 우울해 있다가도 천사상을 보면 힘이 날 것 같다. 천사상은 나에게 귀를 기울여주고 위로해 주는 불교에서의 관음상과 비슷한 역할이지 않나.



탈린 역 맞은편에는 Balti Jaama 시장이 있다. 여행에서 시장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볼거리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며 그곳의 현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Balti Jaama 시장
탈린의 트램


에필로그


에스토니아 혹은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에서는 침략한 다른 나라의 역사이야기를 먼저 알아야 하고 언급해야 하는 현실이 편치 않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에스토니아 국민들은 어떤 방법으로 절대 지울 수 없는 고통을 풀어냈을까.


에스토니아 사람들 일반적으로 매우 무심하지만 밝고 심플해 보인다. 무심한 것은 애초에 관광객이 많아서일 테고 밝은 느낌은 도시가 깨끗하고 구시가지에서 볼 수 있는 주황빛 지붕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뽑은 에스토니아 최고의 인상은 도시를 무료(현지인)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며, 포장을 안 한 꽃다발을 한 움큼씩 들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점(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에서도 그랬다)이다. 꽃다발을 들고 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카드리오르그 공원이 끝나는 해안가에 서있는 천사상과 꽃을 든 사람


해질 무렵 비루 게이트 부근 솔라리스 슈퍼마켓에서 값싼 블루베리와 먹을 것을 잔뜩 사서 호텔로 가는 17번과 17A 트램을 기다리던 시간이 그립다.


이전 01화 피와 고통, 침묵과 인내로 새겨진 나이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