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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슨 향기야?

# Ⅰ- 1. 마다가스카르의 향기 - 일랑일랑 '노시베'

by 그루 Feb 26. 2025


아디스아바바에서 노시베


아디스아바바 볼레 Bole 공항의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좁고 한적한 게이트가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졌다. 앉을 좌석조차 부족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행객들이 부지기수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약속한 보딩 시간보다 세 시간을 넘어버렸다. 으레 있는 일인 것으로 치부하는지, 에티오피아 항공에서는 마다가스카르 노시베행 비행기 지연에 대한 안내 한 번 없다.


 노시베 공항에서 무작정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을 현지 안내인 제이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것에 조바심이 일었다. 샌님 같은 완벽주의자인 제이는 대합실조차 없는 좁은 공항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질문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공항의 카운터 앞을 서성이며 긴 시간 안달이 날 것이었다.




오후 2시에 노시베 공항에 도착하리라 생각한 비행기는 저녁 6시가 가까운 시간에 도착하였다. 가벼운 농담도 조심해서 던져야 할 정도로 항상 진지한 제이의 얼굴은 생각보다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혼비백산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다리느라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소심한 친구 같으니라고!    

 

6개월 만에 만난 제이는 여전했다. 작은 키에도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는 여느 말라가시 청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딸이 둘이나 있는 마흔 초반의 가장이지만 내 눈에 제이는 첫인상처럼 여전히 청년으로 보였다. 제이가 대절한 덜컹거리는 택시를 타고 다운타운의 숙소로 향했다. 제이와 인사말을 주고받을 틈도 없이 땅거미가 밀려오는 공항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우아하고 감미롭지만 진한 향기가 코 끝을 스치는가 싶더니 온몸을 휘감는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거 무슨 향기야?" 라고 묻는 나를 보며, 제이는 길 옆에 차를 잠시 멈춘다. 그리고는 키가 제법 큰 나무의 중간에서 늘어진 가지에 매달린 노란색 꽃 두 송이를 꺾어서 내 손에 쥐어준다. 일랑일랑이라고.   

일랑일랑 꽃


말로만 듣던 일랑일랑 꽃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키가 큰 나무에 매달린 연둣빛을 살짝 머금은 노란색 꽃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꽃이 바람에 일렁일 때마다 마치 기다란 꽃잎들이 하품을 하는 것처럼 일랑일랑 꽃은 진한 향기를 뿜어냈다. 공간에 가득한 향기도 놀라웠지만, 나무줄기의 겨드랑이에 매달려 3개의 통통한 꽃받침에 6개의 긴 꽃잎을 늘어뜨리고 있는 꽃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바로 빠져들었다. 일랑일랑나무의 키가 크다고 했더니, 재배할 때는 수확하기 쉽도록 작은 키로 키우지만 야생에서 크는 일랑일랑나무는 키가 크단다.


어둠이 빠르게 내리는 4월의 노시베 섬에서 숙소까지 가는 동안, 부유하는 향기는 바람에 날리는 기다란 머플러처럼 택시의 열린 창문을 통해 끝없이 들락거렸다. 해가 질 무렵이면 일랑일랑의 꽃 향기가 더욱 진해지며 그 향기는 노시베 섬 전체로 퍼져나간다는 사실은 그 밤이 가기 전에 깨달았다.


Francisco Manuel Blanco이 필리핀에서 그린 ylang-ylang


일랑일랑은 예로부터 원산지에서는 우울증 치료피부질환 등 여러 분야의 약재로 사용하였다. 현재는 프랑스 향수 회사 샤넬에서 대부분의 마다가스카르산 일랑일랑 에센스를 가져간다. 노시베 섬 마다가스카르 일랑일랑의 대표적인 재배지인 것이다.      

    

일랑일랑 ylang-ylang(ilang-ilang)은 인도네시아와 파푸아 뉴기니,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을 비롯하여 태평양의 섬들에서 자생하는 열대나무로 ‘Cananga tree’ 또는 ‘향기로운 카낭가’로도 불린다. 일랑일랑의 이름에서 보이는 ‘ilang’은 타갈로그어로 ‘야생’, ‘황야’를 의미하므로 일랑일랑의 이름에서 원래 서식지를 알 수 있다.   

   

19세기말, 필리핀 사람들이 일랑일랑을 약용 및 미용에 사용하는 것을 본 프랑스 사람들은 당시 그들의 식민지였던 레위니옹 섬에 일랑일랑을 이식하였다. 야생에서 20미터에서 30미터 이상 자라는 일랑일랑 나무는 재배가 시작되면서 사람의 키 높이정도의 크기로 경작되기 시작했다. 유혹적인 일랑일랑의 향은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를 통해 유럽인들에게 알려졌다.


날이 갈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일랑일랑 에센스를 얻기 위해 프랑스는 필리핀의 경쟁상대가 될 정도로 그들의 식민지 레위니옹 섬에 일랑일랑의 재배지를 넓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09년경 레위니옹 섬은 잦은 사이클론의 피해로 일랑일랑의 재배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인도양의 다른 섬인 코모로 제도마다가스카르, 마요트 등에 일랑일랑을 이식시켰다.


진귀한 동식물을 이 잡듯이 수집하던 당시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의 탐욕이 버무려진 열정이 없었다면 일랑일랑의 향기는 세계인에게 더디게 알려졌을 것이다. 일랑일랑의 향기는 한 번 맡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향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랑일랑의 존재감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1921년 5월 5일, 샤넬 N°5의 탄생이었다. 가브리엘 샤넬 Gabrielle Chanel과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 Ernest Beaux의 합작품인 샤넬 N°5에 처음으로 향기로운 일랑일랑 에센스를 사용한 것이다. 가장 많이 팔린 향수 중의 하나인 샤넬 N°5는 재스민과 장미, 일랑일랑 등의 에센스와 인공향인 알데하이드를 조합해서 만든 향수이다.      

일랑일랑뿐일까, 프랑스와 영국을 선두로 한 유럽은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종사한 수많은 탐험가 및 식물학자들은 새로운 땅에서 발견한 카카오와 바닐라, 커피와 각종 향신료를 비롯한 진귀한 식물들을 빠르게 그들의 식민지에 이식시켰다. 이때를 전후하여 마다가스카르에 이식한 각종 향신료를 비롯한 커피와 카카오, 바닐라 등은 현재 마다가스카르 산업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일랑일랑 꽃


노시베의 마지막 여정이었던 로코베 국립공원 Lokobe Nature Special Reserve을 다녀온 후, 로코베 마을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막 접시를 비울 무렵,  마을 주민 한 분이 들어오더니 엷은 노란색 액체가 든 작은 병을 보여준다. 단박에 알아챈 일랑일랑 향기는 내 손에 쥐어졌다. 향수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던 터라 그때까지만 해도 일랑일랑에 대한 지식은 노시베에서 맡고 다닌 일랑일랑 꽃향이 전부였다. 굳이 서울까지 가져가지 않더라도 노시베와 함께 기억될 향기를 여행 내내 가지고 다니고 싶었다.


일랑일랑 에센스

아저씨는 로코베 공원 주변으로 형성된 일랑일랑 농원에서 에센스 추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농장주는 프랑스 사람이거나 인도인일 것이었다. 추출한 마다가스카르산 일랑일랑 에센스는 대부분 프랑스로 수출된다. 1960년, 프랑스의 식민통치는 끝났지만 마다가스카르의 산업은 여전히 식민통치 시대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립 후, 마다가스카르정부는 프랑스와의 연계를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있음이다.


여행자인 내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석유를 비롯한 국가의 기간산업은 물론 관광산업까지 여전히 프랑스 사람들의 손아귀에 쥐어있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여행기간 동안 묵은 제대로 된 숙박업소는 대부분 주인이 프랑스인이었다. 간혹 인도인이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도 있었지만 말이다. 중국은 프랑스가 하나씩 손을 뗀 자리에 곧 들어가 앉을 것처럼 마다가스카르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마다가스카르에서 새로 닦인 길이나 다리는 거의 중국의 투자와 기술로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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