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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ress in the clouds '​암버드'

# 세반호수와 암버드요새

by 그루

아르메니아의 바다 세반호수


예레반에서 65Km, 딜리잔에서 세반호수로 가는 길은 약 30Km 정도 되나 보다. 세반호수는 해발 1,900m, 둘레가 100km로 내륙국가인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곧 바다역할을 한다. 아르메니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며 동쪽 호숫가에는 아르메니아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있다고 한다.


호수는 소비에트 시절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여 수위가 약 20m 낮아졌다고 한다. 그 여파로 호수가 작아진 것은 물론이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형이 달라져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하던 수도원은 걸어서 들어가고, 아름다웠던 작은 섬은 반도가 되었다. 이후 수위조절을 하기 위해 가까운 강과 연결하여 약 2m의 수위를 올렸지만 작은 섬은 여전히 걸어서 들어간다.

한 여름에도 물 속에 들어가기가 힘들정도로 수온이 차다.
왼쪽은 성 사도교회 Surp Arakelots이고, 오른쪽은 성모 마리아 Surp Astvatsatsin 교회


섬 안으로 들어가면 교회와 잔잔하다 못해 얼어붙어 있는 것 같은 쨍한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어준다. 이란 에스파한의 졸파지구에 있던 아르메니아 교회의 박물관에서 봤던 Sarkis Kachatourian이라는 아르메니아 화가가 그린 세반나반크교회가 오버랩되어 나타나고 화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풍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기에 충분하다. 호수와 교회는 언제부터 하나가 되었을까 싶게 떼어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Sevanavank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는데 큰 교회는 성 사도교회 Surp Arakelots이고, 작은 교회는 성모 마리아 Surp Astvatsatsin 교회다. 두 교회는 카프카스 지역의 원래 교회형태인 십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8 각형의 지붕을 이고 있다.


이 수도원은 Ashot I세의 딸 마리암 Princess Mariam이 874년에 건설했으며, 전쟁이나 국가의 위급한 시기에 왕의 피난처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수도원에는 먼저 들어왔다가 세상을 뜬 남편(수도사였는지 일반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 평생을 이곳에서 살다가 남편의 뒤를 따라 갔다는 한 여인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Sevanavank교회로 들어가는 계단 입구에 있던 작은 빵집의 빵은 바로 구워서 식기도 전에 팔려나간다. 러시아식 ‘삼사’식으로 구워 파는데 맛이 좋다. 교회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에 리조트로 들어가면서 간식으로 빵을 또 샀다.


교회로 올라가기전에 있던 작은 빵집, 빵맛이 예사롭지 않다.
숙소 옆 호숫가


리조트에는 방마다 가족끼리 휴가를 즐기러 온 손님들로 빈 방이 없지만 호숫가는 호젓하다. 고도가 높은 세반호의 맑은 물은 한 여름인 8월에도 너무 차다. 물속의 물고기를 쫒아 다니며 노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야지 몸 전체를 물에 담그기에는 차도 너무 차갑다. 조지아 바투미의 따뜻한 흑해의 물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세반호의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조사 아저씨들, 호기심을 보이는 외국인에게 선뜻 낚시한 번 해보라고 미끼를 물려준다. 아침햇살이 올라올 때까지 손바닥만 한 물고기 한 마리 걷어 올렸지만 세반호숫가에서 보낸 그들과의 시간은 고원의 햇살만큼 쨍하게 마음을 비춰주는 시간이었다.


세반호의 아침, 산책길 줄낚시에 걸려든 물고기 한 마리

꽃의 계곡 ‘차그카조르’


세반에서 왼쪽으로 30여분 달리면 차그카조르 Tsaghkadzor 지역이 나온다. 차그카조르는 아르메니아어로 ‘꽃의 계곡’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경관이 그만큼 수려하다는 말이렸다. 아르메니아를 떠나기 전날 멋진 곳을 보여주겠다는 드라이버의 말을 듣고 따라온 곳이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유일한 스키리조트가 이곳에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름 있는 호텔 체인들은 이 곳에 다 들어와 있다. 슬로프의 길이도 정말 길다.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 정점에 올라와 보니 해발 2,819m, 타는 듯한 예레반과는 달리 서늘하다.


여름에는 스파와 헬스리조트역할을 하는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조용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천혜의 스키장을 찾는 스키어라면 자연이 만들어놓은 만족할만한 슬로프를 타고 멋진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슬로프 정점, 해발 2,819m

"fortress in the clouds"


아르메니아는 국토의 평균 고도가 해발 1,800m이며 90퍼센트 이상이 해발 1,000m 이상에 위치한다. 국토 대부분이 소카프카스산맥의 중앙부에 있는 산악지형으로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많은 협곡을 볼 수가 있다.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높은 아라갓산 Aragat Mountain(4,090m) 중턱에 있는 7세기에 지어졌다는 The fortress of Amberd를 찾아갈 때도 어른 키 만한 황금색 건초들이 넘실거리는 황량한 협곡을 넘고 넘어서 찾아갔다. 여름이지만 너무나 건조한 기후로 인해 식물들의 색깔이 황금색을 띤다고 생각했다. 지나치는 차량도 거의 없고 만난 사람은 길 가에서 꿀을 파는 사람뿐, 꽃들이 지천인 산야에서 채취한 꿀은 얼마나 좋을까, 그냥 지나갈 수 없지, 꿀을 구입했다.


차 안에서 몸이 근질근질해지려는데 협곡 너머 절벽 위에 여러 개의 높이가 조금씩 다른 원통형을 붙인 형태의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찰나였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환경에서 동화 속 기사들이 말을 타고 줄지어 나올 것 같은 형태의 성이다.


입구에는 어디에서부터 흐르는지 모르지만 물이 졸졸 흘러 지나간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물을 받아 담는다. 아르메니아는 사막 기후도 나타나는 건조한 지형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물 부족 국가가 아닌 그 반대이다. 나도 그들처럼 남아있던 물병의 남은 물을 버리고 약수를 받았다. 짜릿하도록 시원한 물맛이 탄산수맛이다. 카프카스 지역처럼 어디에서나 안전하게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이 과연 몇 나라나 있을까.


성의 입구로 들어가면 요새 중의 요새로 지어졌다. 무너진 곳도 있지만 성의 형태는 아름답다고 느낄 만큼 온전하다. 성을 보고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절벽의 끝자락에는 11세기에 세운 Vahramashen Church가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진정한 기도가 절로 나올 것 같다.


Vahramashen 교회(왼쪽)와 암버드 요새(오른쪽)
절벽의 끝자락에 서있는 Vahramashen Church
아름답다고 느꼈던 Vahramashen 텅 빈 교회, 절로 기도가 나왔다.

아르메니아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조지아 국경 가까운 북부에 위치한 아그(흐)파트와 사나힌 수도원, 가르니신전과 게가르트 동굴 사원, 에치미아진과 즈바르트노츠 유적 이렇게 세 곳이다.


암버드 성은 유네스코 문화유적이 아니다. 아르메니아사람들은 아라갓 산 해발 2,300m에 위치한 암버드성을 "fortress in the clouds"라고 부른단다. 너무나 멋진 표현이다. 예레반에서 좀 멀긴 하지만 아르메니아의 특별한 지형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봤던 아르메니아에서 봐야 할 것들 중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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