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짝꿍의 쉰번째 편지
안녕 브라이스야
이게 얼마만의 편지인지!
오랜만에 우리들의 매거진에 글을 써보려고 해.
사실 불을 끄고 누워 너와 '잘자' 카톡까지 주고 받았는데
너가 나에게 추천해준 종현의 '1000'을 듣다가
문득 지금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오늘, 너와 세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냈구나.
우린 올해도 북적이는 거리 대신
우리만의 공간에서 시간들을 보내기로 결정했지.
각종 보드게임들을 즐기고 영화도 보고.
사실 크리스마스에 꼭 특별한 일을 할 필욘 없잖아.
누구와 무엇을 하든 여느 주말처럼
따뜻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느꼈다면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낸 거라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난 올해 크리스마스도
대단하고 거창하진 않지만
나의 조각들을 잘 맞춰나간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
고마워.
너와 함께한 시간의 더께가 쌓일수록
과거보다 미래에 대한 얘기가 늘어갈수록
가끔 너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톺아볼 때가 있어.
그런데 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리지 못한채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게 되더라.
답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와 지낸 시간이 결국은 내가 나와 지낸 시간이기도 해서
뭐라고 정의를 내리거나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겠더라고.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가끔 나는 너가 나인지 내가 나인지
구분지을 수 없겠다고 느낄 때가 있어.
이것도 또 무슨 얘긴지 모르겠지?
나는 있잖아.
곧 있으면 서른인데 여느 이십대처럼
'나의 20대를 정리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모든 게 흩트러져버려. 정리가 잘 안돼.
최근 몇 년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무리 잡으려고 발버둥쳐도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그런 시간들이었거든. 그래서 더 그런가봐.
남들이 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괴롭고
자신이 없던 시간들이었어.
그리고 너는 내가 이런 절망을 느끼기 시작할 때쯤부터
날 만나기 시작해
내가 그걸 극복해 가는 모든 과정들을 함께했어.
그래서 널 떠올리면 내가 생각이 나고
나의 시간들, 나의 감정들이 떠올라.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대견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다 친구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가 없었다면 난 결코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지 못했을 거야.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이고,
앞으로 함께하고픈 가족같은 사람이야.
들쑥날쑥한 내 감정을, 나의 찌질한 모습을
질책하지도 포장하지도 않고 그냥 그 자체로 봐줘서
단 한번도 너의 식대로 강요하지 않아서 고마워.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이런 낯뜨거운 고백 정돈 남겨도 되겠지?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