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짝꿍의 쉰한 번째 편지
안녕, 줄리! 드디어 브런치 작성 화면 앞에 앉았어. 편지를 쓰기까진 오래 걸렸다, 그치?
이마저도 줄리가 아침에 "브런치 써줄거지?"라고 일러주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하루를 아쉽게 보내고 말았을거야. 고마워!
아마 이 문장을 보면 "시켜서 쓴 것이냐"며 타박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와도 연관이 돼서 이 이야기부터 시작했어. 오늘은 너한테 소중함을 이야기하고파. 알고보니 우리가 편지에서 '소중함'을 이야기한 적이 없더라고. 우리는 늘 서로를 소중히 여겨왔었는데ㅎㅎ
넌 참 소중한 사람이야. 내 사소한 기분 하나를 좌우할 수 있을만큼 내게 큰 존재야. 오늘 아침에도 그런 기분을 느꼈어. 나는 휴가마저도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때가 많잖아. 오늘은 휴가 마지막날이었고, 잠만 자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지.
그런데 줄리의 답변은 "ㅋㅋㅋ그게잘보낸거얏!!!! 넘강박갖지말구 이불속에서푸욱만끽해!"라고 보내왔지. 그 덕인가, 나는 오전 내내 푸욱 자면서 모처럼 편하게 잠들었어. 일어나서도 후회스럽지 않았고. 줄리가 아니었다면 또 꿀꿀했을지도 몰라.
이렇게 난 아직도 약할 때가 많아.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성향이어서 일까, 휴가 기간 동안 꿈의 한자락엔 늘 "쉬는 동안에도 기사를 좀 써주겠니?"라는 선배의 메시지가 있었어(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자기중심적인 나를 보면서 "넌 참 이기적이야!"라고 농 섞인 타박을 주면서도 나를 안아주는 줄리 덕에 나는 성장하고 있어. 지나간 것에 너무 마음 두지 않고, 현재에 감사할 줄 알고, 다가올 일에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된 건 줄리 덕분이야. 그래서였을까, 우리의 이번 크리스마스는 너무나도 즐겁고, 뿌듯했지.
이번 연말은 더욱 내 마음이 달라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때였어. 예전 같으면 연말에 조용한 핸드폰이 괜스레 밉고, 만날 사람 없는 내 자신에 우울감을 느꼈어. 하지만 언젠가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어. 특히 올해에는 줄리만 있으면 크리스마스고 무슨 기념일이고 전혀 외롭지 않다! 였어. 진짜 소중한 존재의 커다람을 깨달았지.
둘이 앉아서 보드게임을 하고, 예전에 감명깊게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을 다시 들춰보고, 동네 또는 멀지 않은 쇼핑몰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꽂히는 게 있으면 구매를 하기도 하고(줄리의 구매에 내가 눈치를 준 적도 있지만ㅜㅜ). 그저 둘이서만 지낼 뿐인데 어찌그리 시간이 잘 가고, 즐거운지. 이번 편지에서도 "너가 나인지 내가 나인지 구분지을 수 없겠다 느낄 때가 있다"는 말에 백퍼센트 공감이야.
글을 쓰다보니 보고싶다. 매일 보면서 실없는 농담을 하고, "아오 빡쳐"라는 답변을 하면서도 웃음 보이는 너가 참 좋아. '소중함'을 논해보겠다고 큰 맘 먹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글에 그 깊은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 그래도 늘 소중하다 못해 소중함 그 자체인 너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지? 고마워!
그리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기 보다, 그동안 너무 즐거웠어. 그리고 앞으로도 즐거울 거야 우린! 낯뜨거운 고백이지만 낯뜨겁지 않게 받아줘. 안녕 :)
(줄리가 크리스마스날 보내온 편지)
안녕 브라이스야
이게 얼마만의 편지인지!
오랜만에 우리들의 매거진에 글을 써보려고 해.
사실 불을 끄고 누워 너와 '잘자' 카톡까지 주고 받았는데
너가 나에게 추천해준 종현의 '1000'을 듣다가
문득 지금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오늘, 너와 세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냈구나.
우린 올해도 북적이는 거리 대신
우리만의 공간에서 시간들을 보내기로 결정했지.
각종 보드게임들을 즐기고 영화도 보고.
사실 크리스마스에 꼭 특별한 일을 할 필욘 없잖아.
누구와 무엇을 하든 여느 주말처럼
따뜻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느꼈다면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낸 거라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난 올해 크리스마스도
대단하고 거창하진 않지만
나의 조각들을 잘 맞춰나간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
고마워.
너와 함께한 시간의 더께가 쌓일수록
과거보다 미래에 대한 얘기가 늘어갈수록
가끔 너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톺아볼 때가 있어.
그런데 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리지 못한채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게 되더라.
답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와 지낸 시간이 결국은 내가 나와 지낸 시간이기도 해서
뭐라고 정의를 내리거나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겠더라고.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가끔 나는 너가 나인지 내가 나인지
구분지을 수 없겠다고 느낄 때가 있어.
이것도 또 무슨 얘긴지 모르겠지?
나는 있잖아.
곧 있으면 서른인데 여느 이십대처럼
'나의 20대를 정리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모든 게 흩트러져버려. 정리가 잘 안돼.
최근 몇 년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무리 잡으려고 발버둥쳐도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그런 시간들이었거든. 그래서 더 그런가봐.
남들이 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괴롭고
자신이 없던 시간들이었어.
그리고 너는 내가 이런 절망을 느끼기 시작할 때쯤부터
날 만나기 시작해
내가 그걸 극복해 가는 모든 과정들을 함께했어.
그래서 널 떠올리면 내가 생각이 나고
나의 시간들, 나의 감정들이 떠올라.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대견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다 친구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가 없었다면 난 결코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지 못했을 거야.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이고,
앞으로 함께하고픈 가족같은 사람이야.
들쑥날쑥한 내 감정을, 나의 찌질한 모습을
질책하지도 포장하지도 않고 그냥 그 자체로 봐줘서
단 한번도 너의 식대로 강요하지 않아서 고마워.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이런 낯뜨거운 고백 정돈 남겨도 되겠지?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