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짝꿍의 스물여섯 번째 편지
브라이스, 안녕.
어제와 오늘은 여러가지로
기분이 좋지 않은 날들이야.
알다시피 파리에서도, 서울에서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났기 때문이지.
관련 기사들과 글들을 확인하면서
복잡하고 착잡한 마음을 짓누르지 못해
몇 달만에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도 하고
페이스북도 여러 번 들락거렸어.
그러다 문득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왜 꿈을 꾸고 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어.
그동안 브런치에 '우리의 꿈'이라든지
'우리의 시험' 등
지금 너와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여러번 얘기를 한 적이 있지.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준비하는지를
직접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었잖아.
그냥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까
괜스레 조심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얘기를 오늘 조금 해볼까 해.
나는 처음엔 기자가 되고 싶었어.
사회 정의를 위해 뛰어다니고
자신의 목소리를 오롯이 내기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해서 세상에 알려준다는 게
정말로 멋져보였거든.
그러다
좀 더 낮은 문턱의 매체라고 생각되는
라디오PD를 꿈꾸게 됐지.
사실 시작점은 같아.
사회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냥 보통의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어.
그것의 수단으로서 언론인을 꿈꿨고,
라디오PD가 아니라면
기자든 다른 형태의 직업이든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어쨌든 나는 '개인'의 이야기,
멀리서 봤을 땐 하나의 프레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봤을 땐
저마다의 역사가 있는
그런 '하나 하나'의 사연에 관심이 있었어.
그걸 풀어내고 싶었고.
그러다 최근의 일들을 보면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최소한의 도리와 규범마저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고,
그것이 무엇보다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어느 한쪽의 강자에 의해 행해진
폭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비참한 마음이야.
그 대상이 언제든지 내가 될 수 있고,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니까.
한 사람의 비극은
실제론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지.
그 사람의 가족, 친구, 동료,
가족의 친구, 친구의 친구...
끝없이 이어져 전체의 비극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해.
부디 소수의 기만으로
더 큰 재앙을 불러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야.
아무도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어.
아무도 시간이 남아돌아서,
또는 옆 집 친구가 말하니까
그래서 그냥 혹하는 마음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며
싸우는 사람은 없어.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어.
결국 다들 '잘 살아보려고' 하는 거잖아.
건강한 갈등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완전한 단절의 갈등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우리라도 더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언론인이 되든 안되든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게 결국 내가 꿈을 꾸는 이유와
맞닿아있는 셈이니까.
줄리,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글 위에서도 만날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하는 하루다.
이제는 내 심장이 무사히 뛰고 있음에
감사해야하는 나날들이 되어버렸어.
누군가는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소리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예민하게 감사함을 찾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
무겁지만 꼭 생각해봐야만 하는
이야기를 건네줘서 고마워.
나 역시 내 자리에서
수많은 소식들을 지켜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고민하고, 답답해 하고 그랬어.
어렸을 때 세상을 잘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지금도 부족하지만)
항상 이런 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걸 피했어.
하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아.
정말 표현해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지.
아니 표현해도 묻혀버리는 무서운 세상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줄리의 말처럼 지금 세상이
개인이 개인답지 못하게 사는 곳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
개인의 목소리가 깊이 묻혀버리고,
집단의 목소리만 가득한 세상.
오로지 권력과 힘의 논리로
판단되는 세상 말이지.
이 글을 쓰면서도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되지만,
그래도, 그래도,
줄리의 마지막 문단처럼
우리는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해.
마침 내가 어떤 지원서에
동기를 썼는데 이런 내용을 썼어.
나는 여전히 언론에 필요한 건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진정한 균형을 이루는
세상을 만드는 힘도 언론에 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이지.
전에 내가 힘주어 말하고,
몇 번이고 자기소개서에 썼던 말 기억나?
나는 사람들이 서로 온전한 사랑을 하는
세상을 꿈꾼다고.
그 때 줄리는 눈을 반짝이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었지.
그 꿈은 여전히도 유효해.
내가 테러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언제 갑자기 심장이 멈출지 모르지만,
그래도 난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
개인의 목소리가 오롯이,
온전히 뜻대로 전달되는 세상.
우리가 조금 더 밝게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
비참함보다는 의지가 일어나는 세상.
아플 수 있지만,
그 아픔이 극복할 수 있는 아픔인
세상으로 말이지.
어떤 기자님의 글에서 본 내용인데,
자신이 과거에 썼던 글에서
부끄러웠던 것이 있다면
주장만 있고 분석이 없다는 점이었대.
오늘 내가 줄리에게 보낸 답글도
분석이 없는 주장만 있는 글이지만.
줄리가 다짐한 것처럼 나도
다짐하려고 해.
이제 나도 내 주장에 힘을 줄 수 있는
분석을 채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야.
우리 세상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부지런히 살자.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