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막차 안에서'

연상연하 짝꿍의 스물여덟 번째 편지

by 브라이스와 줄리

브라이스에게


어제 나는 영등포에서 친구를 만나고

오랜만에 막차를 타고 집으로 왔어.

막차라 그런지

열차엔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구.

한 칸에 열 명 남짓 있었으니까.


평소 같으면

핸드폰으로 기사 검색을 하며

아래로 시선이 고정돼 있었을텐데

어젠 이상하게 자꾸

열차 속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어.

쨍하게 밝은 1호선의 형광불빛과

차창 너머로 보이는

새카만 한강물빛이

대조적으로 보이면서

마치 어느 노래 가사 속

한 장면에 있는 기분이 들었거든.


그러다 내 눈은 사람들에게 머물렀지.

'큰 책가방을 메고 있는 학생은

공부를 하다 집으로 가는 길일까?

건너편 언니는 눈과 볼이

발그레 붉어져있는 걸 보니

친구들과 곱창에 소주 한 잔

거나하게 걸쳤나보다.

엇, 그 옆에 있는 청년은

누구와 통화하길래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전화하는 걸까?'


행여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심조심 그 분들을 담았지.

나도 너랑 통화할 땐 저런 표정일까

떠올려보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지하철을 탔을 땐

저런 모습처럼 보일까 생각하며

괜히 혼자 쑥스러워하기도 했어.


그러다 저 사람들 중엔

언젠가 다른 곳에서

스쳐지나간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물론 그 모든 걸

'인연'이라고 말하기엔

세상엔 너무 많은 옷깃들이 있을 테지만,

어쨌든 내 일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직접 아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스쳐지나가는,

그 모든 사람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제부턴가 핸드폰을 보며 길을 걷고,

약속에 늦어 허둥지둥 목적지를 향해

뛰어가기 바빴는데

소소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표정, 말투, 행동들을

오랜만에 살펴보면서

왠지 모를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꼈어.


친구와의 즐거운 토요일 밤에

나름대로 근사한

방점을 찍어준 셈이었지.

헐레벌떡 겨우 탄 막차 속에서

별 뜻 없이 지하철 속 사람들,

창문 너머 바깥 풍경들을 보다

이런 생각들로까지 확장됐네.


요즘은 너무 무거운 얘기만

한 것 같아서

오늘은 다른 얘기로 해봤어.

브라이스 너는 혹시

사소한 주변의 것들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던 상상이나 생각이 있어?

정말 아무거나여도 좋아.

있다면 너의 이야기도 들려 줄래?




줄리, 반가워.

지난 주말에 참 기분 좋은 경험을 했구나.

'관찰'은 언제나 신선함을 선사하지.

나는 한 때 취미를

커피숍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

이라고 말할 만큼

사람들을 자주 관찰했어.

너무 지켜 본 나머지 요새는

자제할 정도야.

(줄리도 이 부분은 동감할 거야)


줄리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연을 느낀 것처럼,

나는 스쳐지나는 사람들에 대한

사연을 생각하곤 해.


줄리가 조용한 막차를 탔던 날,

나름대로 붐비던 2호선 막차를 탔던 나는

이 수많은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무엇을 한걸까.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하고 상상을 했었어.


눈에 좀 더 자세히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 사람이

이 열차를 타기까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궁금해 하기도 해.

실제로 물어본 적은 아직 없지만.


왜 있잖아.

우리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서

항상 같은 자리를 고수하고,

같은 자세로 오로지 책만 읽는 그 분.

도서관이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책 한 권을 앞에 놓고 마치

명상을 하듯 책을 바라보고, 읽고,

때론 졸기도 하는 그 분의 사연을

우리가 같이 궁금해 했었잖아.

내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난 그런 것 같아.

도대체 이 분은 어찌하여

이 곳에 있는 걸까.

이 분은 집에선 어떤 분일까,

애인에게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것들.


종종 내 인생의 사연들을 돌아보는 데만도

쉽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면서 나는

이 지구에 셀 수 없이 많은

사연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


지금 내 주변에 둘러싼 사람들의 사연부터,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또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 대한 사연까지.

그리고 각자 다른 사연을 갖고 있기에

이 세상은 재밌다고 생각해.

꼭 나와 인연을 맺지 않았더라도,

저 사람의 귀한 인생을,

혼자 상상하고 그려보면서 말이지.


모든 삶을 다 들여다 볼 순 없겠지만,

더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는

우리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둘만의 사연도

함께 만들어가면서 말이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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