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짝꿍의 스물아홉 번째 편지
안녕, 줄리!
오늘 내가 꺼내온 주제는
'웃음'이야.
아마 단어만 봐도
왜 이 주제를 하자고 했는지
알아채고 웃을 거야.
'웃음' 참 기묘한 단어지.
행복감,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고,
상황을 바꾸기 위한
용도로 쓰이기도 하고,
슬플 때도 씁쓸하게 짓는 것이
웃음이기도 해.
줄리는 내가 잘 웃지 않는다고
때로 서운해 하지.
나도 참 그럴 때마다
표정을 고치곤 해.
언제부터 잘 웃지 않게 된 건지.
왜 이리 표정이 없는 사람이
되었는지 몰라.
아무튼 확실한 건,
줄리를 만나 웃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거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는 거야!
믿어줘 :)
내가 진짜 웃음이라는 주제를
꺼낸 이유는 조금 다른 데 있어.
웃음을 파는 사람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코미디언, 희극인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익히 아는 수많은 예능인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음을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까지.
얼마 전 줄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음을 줘야만했던 일을
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복잡미묘한 마음이 들었어.
이 세상엔 참 다양한 웃음이 있구나.
나는 그저 즐거우면 웃는 것이고,
재밌으면 웃고,
상황을 좋게 만들기 위해
웃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즐거움과 재미, 좋은 상황을 위해
웃음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의 사연이 있었다 말이지.
줄리의 언어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그 일이 끝난 날,
정말 내게 마치 속에 있는 마음을
다 꺼내다 못해
토해놓듯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 이야기 다시 한 번
이 곳에서 들려 줄래?
부탁해.
너가 느꼈던
그 웃음의 의미를 들려줘!
브라이스에게
답장이 너무 늦었네.. 미안해!
그간 많은 일이 있었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다시 얘기할게 :)
이번 주제는 웃음이구나.
흔히 떠올리는
그런 보통의 웃음이 아니라
'그 날의 웃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지.
지난 금요일,
벌써 일주일이 넘었구나.
최근 무료해하던,
그리고 어디든 나가서
소일거리라도 하고 싶다던 나에게
너는 웃음더빙 알바를 소개해줬지.
내가 좋아하는 예능 알바기도 했고,
돈을 떠나서
뭔가 재밌고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나도 그랬고.
그래서 설렘반 떨림반으로
다음 날 방송국을 찾았어.
근데...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너를 만났을 때의 나는
아침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하던
내가 아니었지.
열시반에 모여서 한 시간 반이면
될거라던 알바는 시작할 줄을 몰랐고
결국 두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녹음실에 들어설 수 있었어.
왜 이렇게 지연되느냐는 물음엔
'원래 방송이란 그런 거'라는
날카로운 대답뿐이었고.
나와 한 친구를 제외하곤
모두 이 알바를 오래한 사람들이었는지
익숙한 듯 기다려서
내심 놀라기도했어.
오히려 스탭들이 그들에게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과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거든.
녹음실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지.
방송녹음 땐 작은 소리도
들어가지 말아야한다는 원칙때문에
엄마뻘 아주머니들까지
찬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계셨어.
행여나 그분들이 움직이려고하면
내 또래 스탭에게 따가운 눈총과
반말섞인 말까지 들어야했고 말야.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스탭의 손짓에 맞춰
깔깔깔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는 왜그렇게 불편했는지 모르겠어.
나름 재밌게 보긴했지만
이따금씩 계속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어.
사람들의 웃음은 진짜일까 아닐까.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그 속에
있다는 게 한편으론 내심 싫은거야..
웃기지... 나는 지원동기에 그동안
'보통 사람들'이 좋아서
방송일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사실 그들도 그냥 평범한
많은 보통 사람들인데
단지 이런 푸대접을 받는다고
나까지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마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민낯을 본 기분이랄까.
너무 혼란스럽고 괴로웠어.
정말 마음이 복잡했어.
여기다 다 표현할 순 없지만...
어쨌든 8,000원을 받고서
방송국 문을 나서는 나는
네시간 전의 기분과 마음일 수 없었어.
정당한 노동을 제공하고도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받지 못하고
갑과 을, 을과 정, 그리고 그 끝에
내가 감히 '어루만져 주고 싶다'고
생각하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 모든 것이 합해져
불편한 기분이 들었어.
하나의 작은 현실 세상을 본듯했어.
웃자고 간 알바에 무거운 마음을
한아름 안고 왔지.
당분간은 잊지 못할 것 같아.
이런 기회를 준 너에게
고맙다고 하는 게 맞겠지?
많은 생각이 들었고,
그게 웃음으로 포장됐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했고,
다시금 내 맘을 다 잡기도 했어.
내가 조금 오버스럽게
본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기분,
꼭 오래 기억하고 싶구나.
얘기들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