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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regalo 선물 ①

프리는 프리가 아니다. 

에스 운 레갈로 Es un regalo. (선물이에요.)     


그라시아스 Gracias. (고맙습니다)     


데 나다 De nada. (천만에요)





부르고스의 한식당 <두 번째 소풍>에서는 손님이 오면 한국식으로 반찬을 내준다. 쌈장에 묻힌 오이와 감자채볶음 두 가지이다. 한국인들은 맵짤 한 쌈장과 프렌치프라이가 아닌 한국식 감자채볶음에 감동하고, 현지인들은 이를 엔트라다 entrada 전식으로 생각하고 먹는다.      


한국은 식당에서 밑반찬과 물이 공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은은 처음 한식당을 열면서 고민했다. 스페인에서 감자와 오이는 아주 싸지만 물과 전기세는 비싸다. 그렇지 않아도 준비할 게 많은데 매일 아침 감자를 채 썰어 볶고, 비싼 된장에 고춧가루와 양파, 마늘, 맛술 등을 넣어 쌈장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다. 하지만 현지인들도 한국인 순례자들도 반찬을 아주 반긴다. 그래서 선물이라고 말한다.      


한국인 순례자들이 몰려들면서 오이와 감자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었다. 은수는 일부러 손님들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사장님의 특제 쌈장으로 묻힌 오이에, 감자채 볶음이에요. 여기서는 이걸 레갈로 regalo, 선물이라고 해요.”     

“외국 손님들도 많나요?”     


“그럼요. 순례자는 봄, 가을 한철인데, 순례자 보고 가게 하면 망하죠. 2시 이후로는 현지인들 예약이 많아요.”      

“현지인도 이걸 좋아하나요?”     


“이게 뭐냐고 해서 감자, 빠타타라고 하면 정말 감자 맞냐고, 감자에다 뭔 짓을 한 거냐는 표정을 짓는걸요. 입맛 돋우는 전식으로 잘 먹어요.”     


처음엔 “우리 기본 반찬이에요.”하면 꼭 두 번 세 번 더 달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김치찌개를 시키면 어떤 반찬이 더 나오냐고 묻기도 하고, 물을 갖다 달라고 시키기까지 한다.      


“다른 식당에서는 물이 공짜인가요? 여기 한국 아니고 스페인이에요.”     


은수는 일부러 놀란 토끼눈을 뜨고 말한다.      


“대신 순례자에게만 특별히 50 상트에 팔아요.”      

웃으면서 덧붙인다.     


은수가 반찬은 선물이라고, 현지인들은 처음 보는 공짜 반찬을 선물로 생각하고 매우 고마워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이후 반찬을 더 달라는 사람들이 확실히 줄었다. 순례자들이야 한 번 이 길을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 (봄에 걷고 가을에 또 왔다는 손님도 몇 있었지만.) 하지만 걔 중에는 열심히 블로그나 인스타에 후기를 올리는 이들이 있다.     


“프렌치 프라이 먹다가 감자채 볶음 반갑죠?”     


“어떤 손님이 그러던데요. 빠타타의 힘으로 걸었는데 이제 밥심으로 산티아고까지 쭈욱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두 번째 소풍>은 작다. 4인 테이블이 4개에 2인용 바 테이블이 3개다. 혼자나 둘이 온 손님을 바에 앉히면 높은 의자를 대놓고 싫은 티를 내거나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가게가 작아서요. 한국 사람들 같이 좀 먹어요.”     


혼자 와서 넓은 4인 테이블에 덥석 앉아버리면 뒤에 오는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려야 하고 2시 이후로는 현지인들 예약이 많아 결국 밥을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바 의자 대개 편해요. 깊숙이 앉아서 기대고, 발을 공중에 띄우면 오히려 더 편해요.”     


<두 번째 소풍>은 두 번 와야 하는 곳이라 말하는 손님들도 있는데, 연박을 하면서 두 번째 방문하는 손님들은 알아서 바 테이블에 앉는다.           


     



어느 날, 나은이 은수에게 묻는다.      

“요즘 왜 진상 손님들이 없지? 바 테이블에 앉혔다고 소리 바락바락 지르고, 있고, 김치찌개가 왜 없냐고, 우리 오는 거 몰랐냐고, 정보가 이렇게 느려서 어떻게 장사하냐고 하던 손님들 다 어디 갔어?”     

진상이 왜 없겠는가? 손님들 많은데 신발 벗고 맨발로 양반다리 하고 앉는 사람, 혼자 와서 4인 테이블에 앉는 사람, 배낭을 멘 채로 드나들어 다른 손님 얼굴 치려고 드는 사람, 스틱을 아무렇게나 던져두는 사람,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만남의 광장을 만드는 사람, 바로 옆 사람과 이야기하면서도 하이톤으로 떠들고 돌고래 발성으로 웃는 사람, 김치찌개가 왜 없냐고 테이블 비었는데 왜 못 들어가냐 화내는 사람 등등등.... 

     

- 여기는 알베르게도 순례자 식당도 아니에요. 얼른 신발 신으세요.

- 요즘 한국에서도 이러지 않잖아요. 

- 지하철에서 백팩 어떻게 메나요? 

- 스틱 밟아서 뜨거운 국물 쏟으면 병원비 물어내실 거예요? 

저는 스틱 값 안 드릴 거예요.

- 어머나, 무슨 일 있어요? 다른 손님들은 어쩌라고 이렇게 돌고래 소리를 내실까?

- 한국에서 대파 4-5천 원이라고 난리 났었잖아요. 여긴 대파 한 뿌리에 1유로, 1500원까지도 가요. 

한국도 금치라 올해 김장 걱정 벌써부터 하던데, 여긴 원래 금치예요.

그럼 일찍 오셨어야죠. 저희는 하루에 팔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요.     

- 스페인에 와서 공짜 처음이죠? 현지인들은 선물이라고 굉장히 고마워한답니다.  


17년 전보다 까미노를 걷는 한국인 순례객이 늘어난 만큼, 까미노에서 얼굴 마주치기도 부끄러웠던 어글리 코리안도 비례해서 더 많아졌다. 하지만 조용히 웃으면서 화내면 잠시라도 바뀐다. 적어도 식당 안에서 진상은 못 부린다.      


무엇보다 프리Free가 프리(공짜)는 아니듯

선물은 고맙게 받아야지 당연한 권리로 알면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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