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본 사람이 아픔을 안다.
아무리 같은 한국 사람이고 까미노를 걸었던, 지금도 걷고 있는 순례자라 해도 은수의 마음이 특별히 가는 손님이 있다. 그러면 은수는 정말 특별한 레갈로를 내놓기도 한다.
“이거 정말 제가 아끼는 거거든요.”
고추장아찌는 스페인의 국민 안주 힐다Gilda를 좋아하는 나은이 스페인 고추를 한국의 간장에 삭힌 것이다. 나은은 가게를 오픈하면서 만들었던 고추장아찌가 너무 매워서, 나중에 먹자 하고 잊는 바람에 냉장고에서 5개월 이상 제대로 숙성을 시켰다.
처음 선물을 받은 사람은 스페인에서 공부 중인 한국 신부님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독일인과 결혼해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인이었다.
“너무 추워요. 부르고스가 원래 이렇게 추운가요?”
그녀는 독일이 추워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왔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는 너무 여러 번 갔었기에 이번에는 까미노를 걷고 있는데, 스페인 북부는 독일 못지 않게 춥다. 성치 않던 무릎도 말썽이다. 어제부터는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날이 추우니 더 시큰한 것이 이대로 독일로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여기가 해발 850미터래요. 한국으로 치면 대관령 높이요. 한여름에도 대관령 올라가면 바람 불고 춥잖아요. 부르고스가 스페인에서 제일 추운 도시래요. 어제는 낮 기온이 20도가 넘더니 오늘은 아침에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비도 부슬부슬 오고요.”
오늘 부르고스는 아침에 3도 오후에는 18도로 일교차가 15도가 넘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고, 어떤 사람은 구스 패딩이나 무스탕을 꺼내 입기도 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던 해외의 모습이 이상했는데 일교차가 크고 개인차가 있으니 이곳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은수도 어제 빌바오에 갔었는데, 낮기온이 24도까지 올라가 나시 원피스차림도 있었다. 그녀는 자라에서 쇼핑한 두꺼운 겨울 외투에 머플러를 하고 갔다가 결국 벗어서 들고 다녔다.
“그러니까요. 너무 추웠는데, 대성당 앞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이 여기를 알려주더라고요. 너무 반가워서 달려왔어요.”
은수가 보기에 그녀는 자신의 엄마 나이와 비슷해 보였다. 머리가 하얗게 센 독일인 남편에게 한식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알뜰하게 챙겼다. 작은 키에 짧게 자른 단발머리가 단정한 그녀는 혹시 독일에 갔던 간호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픔을 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은수는 자꾸 몸이나 마음이 아파 보이는 여인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매운 것 좋아하세요. 고추를 간장에 삭힌 건데 어떤 것은 좀 많이 맵고 어떤 것은 괜찮아요.”
그녀는 고추장아찌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번 맛을 보고는 “여기가 한국이네요. 완전히 고향의 맛이에요.” 감탄한다.
“국물까지 다 먹었어요. 우리 남편이 이렇게 오래 삭힌 것, 한국의 간장, 고추장 같은 살사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남편이 이전 진짜래요.”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코리안 스패니시 퀴진’을 표방하는 최경훈 셰프는 올리브, 고추, 앤초비 절임의 삼합이 기본인 힐다를 가을에 한창 기름이 오르는 전어와 깔끔하고 독특한 향의 산초잎 등 한식적 터치로 변형시켰다. 그는 “한국 사람과 스페인 사람 입맛에 모두 ‘아는 맛’이지만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게 재밌는 지점”이라고 했는데 은수는 그가 나은의 고추장아찌나 다른 음식을 보면 어떻게 평할지 궁금하다. 나은이 두 번째 소풍에서 팔고 있는 한식은 대체로 집밥 느낌의 정통 한식이지만, 일상에서 먹는 음식들은 스페인 재료와 한식이 묘하게 결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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