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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regalo 선물 ③

대파 (한 단이 아니고) 한 줄기에 1천 5백원이라면? 

나은 : 은수야 내가 한 번 안아줄게.


은수 : ??


나은 : 진~짜 고마워. 네 선물 너무 좋아!   

  

은수가 오이를 썰고 있는데 주방에서 나온 나은이 감격한 표정으로 은수를 꼬옥 안는다.      




“순대는 안 돼! 화장품을 버려줘!”     


처음에 은수가 항공권을 끊고, 위탁 수하물이 23킬로그램 2개라는 말을 전했을 때, 나은은 괜찮다고 그냥 가방 하나만 들고 오라고 했었다. 직항도 아니고 경유 비행기에 마드리드에서 부르고스까지 버스를 타고 2시간 반을 와야 하는데 짐이 무거워서야 너무 힘들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은이 부탁하는 짐이 늘었다. 은수가 위탁수하물의 무게가 초과되면 순대를 버리는 게 가장 간단하겠다고 하자, 나은은 울먹였다.      


“여기, 순댓국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순대는 안 돼!”     


처음 그녀의 주문은 화장품이 시작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중년의 여자들이 점점 더 고급의 화장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건조함과 자외선 그리고 호르몬이다. “여기 너무 건조해.” 부르고스의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는 피부의 적이다. K콘텐츠의 날개를 달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화장품과 뷰티 제품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은이 한국을 다녀간 지도 벌써 3년이 지나, 아껴 쓰던 화장품들이 거의 떨어졌다. 그동안 아이 쇼핑하며 침 흘리던 한국의 최신 뷰티 아이템들도 너무 많다. 그래서 은수는 콜라겐 패드와 마스크팩, 에센스와 세럼, 뷰티 디바이스까지 화장품들로 30인치 트렁크의 반을 그녀의 화장품으로 채웠다.    

  

두 번째, 음식이었다. 부르고스에서 한식당을 하는 나은은 처음에 한국의 멸치가루를 주문했다. 동전 육수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똥을 따고 곱게 갈린 멸치가루가 1킬로그램이다. 그다음은 부르고스에서 알게 된 한국인 유학생 신부님의 최애, 쥐포를 부탁했다. 쥐포도 1킬로그램이다. 그리고 은수 엄마의 파김치. 까미노의 페레그리노, 그중에서도 한국인 순례객들을 먹이기 위한 한식당을 열었지만 그녀도 한국의 음식이 그립다. 배추김치 정도는 담아 먹고 김치찌개가 한국인들에게 베스트 메뉴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음식과 똑같을 수 없다. 전에도 은수 엄마의 파김치는 비행기를 여러 번 타고 스페인의 나은에게 공수됐었다. 그러나 딱 맞춰 파값이 미친 듯이 치솟아 2만 원이 넘었다. 그래도 한국의 맛을 기다리는, 은수를 12주나 데리고 있을 그녀를 위해 은수 엄마는 파김치를 담갔고, 단골 정육점의 진공 압축기를 거쳐 가방에 실렸다.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기 3일 전, 순댓국이라는 주문이 새롭게 도착했다.      


“우리 삼촌이 행신동에서 순댓국집을 하거든. 새우젓이랑 들깻가루도 꼭 챙겨 와야 해!”     


삼촌네 가서 받아온 순댓국은 라면 박스로 하나 가득이었다. 돌돌 말려 진공포장된 순대가 하나에 2킬로그램씩 두 개에 넉넉하게 담긴 육수 4인분이 못해도 1킬로그램은 넘을 것이다. 곁들이로 따라온 그녀의 엄마표 녹두전. 은수는 특별히 준비했던 젓갈 중 명란젓은 빼고 가리비젓갈과 낙지젓갈만 챙겼다. 젓갈은 하나에 500그램씩이니 젓갈도 2킬로그램이 넘는다. 이로써, 순댓국과 파김치 젓갈만 10킬로그램 이상이다.      




“석 달인데 옷이 너무 적은 거 아니야?”     


은수는 나은이 부탁한 화장품과 음식 외에도 몇 가지 선물을 챙겼다. 옷은 나은의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재에 불과했다.   


“예전에 바르셀로나 갈 때는 딱 두 벌 챙겨갔어. 페레그리노처럼. 입고 있는 옷 한 벌이랑 갈아입을 옷 한 벌. 나은이 옷 입고, 쇼핑도 좀 하고. 자라가 스페인 브랜드잖아.”     


2박 3일에 걸쳐 짐을 쌓지만 걱정이 됐다. “순대는 안 돼! 화장품을 버려줘!”라는 나은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그런데 위탁수하물의 무게는 정확히 50.1킬로그램이다.      


체크인 전 위탁수하물의 무게와 규격을 재보는 저울에서는 23.1킬로그램과 22.9킬로그램이더니 아무래도 부정확했던 모양이다. 하나는 23.1킬로그램인데 다른 하나가 27킬로그램이다. 주변에는 위탁수하물 무게가 초과해 가방에서 짐을 빼는 이들로 부산했다. 태현은 최근 중국 출장이 잦았는데, 은수가 마드리드까지 가는 비행기도 같은 항공사다. 위탁수하물의 무게가 500그램 정도 초과하는 것은 눈감아 주지만 1킬로그램이 넘어가면 절대 봐주는 일이 없었다.      


‘무엇을 빼야 하나?’ 고민하는 은수의 머릿속이 하얗다. 옆에서 태현이 속삭인다. 


“정말 순대만 빼면 완벽하게 46킬로그램이었겠네!”


그런데 항공사 직원이 티켓을 보더니 “석 달 후에 돌아오시네요?” 하고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돌아올 때는 주의하세요.” 하고는 웃으며 수하물 택을 붙인다.      

“고맙습니다.”

은수는 절로 공손히 인사했다.     




나은의 초대가 고마워 은수는 선물을 준비해 왔다. 스페인에서 한식당을 하는 나은에게 보탬이 되는 선물을 하고 싶었다. 며칠을 고민해 준비한 특별한 선물 중 하나가 대파를 한 달 동안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는 미라클 보관통이다.      


은수도 최근에 살림을 시작하면서 대파가 고민이었다. 둘이 살면 대파 한 단은 너무 많다. 대개 냉동실에 보관하면서 국이나 찌개에만 넣어 먹는데 그녀는 대파를 고기와 함께 구워 먹는 것이 더 좋다. 한때 대파값이 4-5천 원이 되면서 은성분이 함유돼 식재료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기적의 보관 파카통이나 가정용 진공포장기도 유행이다. 은수도 엄마와 함께 사서 써보니 정말 대파가 1달 넘게 싱싱했다. 나은이 스페인에 온 지 10년이 훨씬 넘었으니 그녀는 미라클 통의 존재도 모를 것이라고 은수는 생각했다.      




나은 : 미친 거 아니야?     

은수 : 왜?     

나은 : 이게 2.5유로야. 말이 돼?     


나은이 한 손에는 대파를 들고 한 손에는 영수증을 들고 소리를 빽 질렀다. 대파 한 묶음이라야 손가락보다 얇은 파가 두 개, 그 반도 안 되는 쪽파가 한 개다.      


은수 : 뭐라고? 그럼 대판 한 줄기에 1유로, 1천5백 원이야?     


한국에서 대파값이 4-5천 원으로 치솟았을 때도, 은수가 엄마에게 부탁해 파김치의 파값이 2만 원이 넘었을 때도 이보다 놀랍지는 않았다.      


한식은 음식 재료가 많이 필요하다. 비빔밥만 해도 밥에 고기와 버섯, 시금치, 당근, 양파, 호박, 콩나물, 무생채 7가지가 올라가고 계란과 참기름, 깨소금 그리고 약고추장과 간장이 필요하다. 고추장에 맛술과 마늘, 양파 등 부재료가 만만치 않은데 한 통 만들어놓으면 한 달 정도 쓸 수 있다. 제육볶음과 불고기, 야채전 등에는 대파와 부추 등이 필수다. 그런데 대파는 물론 시금치, 부추 등 냉장고에 보관해도 금방 물크러지고 상해서 버려야 하는 식재료가 많다.    


은수가 사 온 미라클 파통은 그야말로 기적적이었다. 대파를 물꽂이해 놓은 것보다  더 싱싱하게 오래갔다. 대파와 시금치, 부추 등이 상해서 버리는 양이 확 줄었다. 나은은 은수에게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이 통이랑 봉투들 더 사 와야겠어!”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닌 부르고스다.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은수는 부르고스에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빌바오, 로그로뇨, 비토리야, 바야돌리드, 메세타 까미노까지 꽤 많은 여행을 다녔는데, 그중 빌바오와 비토리야, 바야돌리드는 나은과 함께 메르까도나에서 팔지 않는 한식 식재료를 사러 다녀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배추나 대파, 콩나물, 당면, 시금치 등은 차로 1시간 넘게 달려간 곳에서도 못 구할 때가 있다.      

그러니 부르고스 한식당 한 달도 안 된 은수도 대파와 시금치를 다듬을 때, 그릇에 김치를 담을 때 손이 떨린다. 나은은 가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에서 그녀는 재료가 하나도 없어 가게 문을 닫는다.      


     




중국인 단골 3명이 와서 불고기와 제육, 잡채와 김치를 시켰다. 조금 있다가 맛있다면 김치를 또 시키더니 급기야 계산하러 와서는 파라 예바(포장용)로 김치를 두 개 더 추가한다. 은수는 김치를 포장 용기에 담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개수를 새고 있다.      


“김치를 두 개나 시키더니 포장까지 해갔어. 월요일에 김치 또 담가야겠지?”     


은수가 주방의 나은에게 김치통을 보여주며 말한다. 아침에 채워둔 김치통이 절반 넘게 비었다. 그렇지 않아도 만두가 떨어져 빌바오 쇼핑을 가기로 했었다. 배추도 사다가 일주일 만에 또 김치를 담가야겠다.      


그러니 왜 점심 장사만 하느냐고, 아침과 저녁도 영업을 해야 돈을 벌지 않겠느냐고,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이나 쉬면 그날 도착하는 한국인 순례객은 어떻게 하느냐고, 빨리 번창해서 더 큰 식당으로 옮기라고 하는 오지랖 넓은 한국인 손님들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흘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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