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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다

20240728/주일/맑음

by 정썰
#책, 익다

'책은 읽고, 술은 익고, 사람은 있고'. 모 신문사의 '책&생각'이라는 섹션 기사 제목이다. 취저.


홍대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술 마시는 책방 ‘책, 익다'. 혼자 있고 싶지만 홀로 있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을 위한 책방,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떨어질 수 있는 공간.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과 잘 숙성된 술에서 좋은 향이 나듯, 책방에 머무는 손님들도 잘 익어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 익다’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알고리즘에 쫓겨 양극단으로 밀리고, 공동체가 깨어져 가는 고독의 시대에 조연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었다고. 각자 가져온 책이나, 서가에 있는 책을 구입해서 본인의 취향에 맞는 술 한잔을 곁들여 읽는 곳이다. 시끄럽고 번잡한 홍대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아지트.

묘사만으로 그곳에 다녀온 거 같다. 낭만적이다. 술과 책이라니. 혼자이지만 홀로가 아니라니.


내 경우에는 완벽하게 행복한 풍경에는 반드시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책과 차가운 맥주. 그중에서도 책이다.

사람들은 흔히 '작가에게는 경험이 중요하다'라고 말하지만,

내게 있어 그 경험은 거의 전적으로 독서 경험이다.

(김영하 작가의 말 중에서)


술을 자주 마시지 않고, 많이 마시지도 못하지만 술이 주는 낭만은 어렴풋이 안다. 특히 낮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여행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저녁 반주로 마시는 고량주 한 잔은 풍류고, 아들과 마시는 위스키 한 잔은 추억이고, 아내와 마시는 하이볼 한 잔은 나름 트렌드를 쫒는 노력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사람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익어가려면 적당량의 책과 약간의 술이 필요한 거 같다.

내 고향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이 간다. 시인이 지나던 술 익는 마을처럼 저녁 놀이 타들어 간다. 더 부지런히 읽고, 더 점잖게 익어가야지. (또 다짐이구만)


기사 마지막에 인쇄된 가게 이름과 주소를 복사해서 나에게 톡으로 보낸다.

언제 가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꼭 한 번 가보는 걸로.


크리스천이 주일에 술 예찬이라니, 불경(不敬)스럽다. 주일에 불경(佛經)이라니 공교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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