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5/일/말고 더움.
벽과 문
천양희
이 세상에 옛 벽은 없지요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 되는
오늘이 있을 뿐이지요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사실은 문제지요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이기 때문이지요
벽만이 벽이 아니라
때론 결벽도 벽이 되고
절벽 또한 벽이지요
절망이 철벽 같을 때
새벽조차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지요
세상에 벽이 많다고 다
낭비벽이 되는 건 아닐 테지요
벽에다 등을 대고 물끄러미 구름을 보다 보면
벽처럼 든든한 빽도 없고
허공처럼 큰 문은 없을 듯하지요
이 세상 최고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
자, 그럼 열쇠 들어갑니다
벽엔들 문을 못 열까
문엔들 벽이 없을까
* 인도의 선각자 비노바 바베의 말.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
내 스타일. 오랜만에 완벽한 시를 발견?했다. 입도 즐겁고, 눈도 즐겁고, 머리도 즐겁다. 이런 시를 쓰고 싶다.
벽이 문이고 문이 벽이고, 문도 벽이 되고, 벽도 열 수 있고, 넘사벽 시 한 편. 이 세상 최공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 벽을 만날 때마다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