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시에서도 귀촌인처럼 살았었나봐요
11월 초에, ‘다르게 사는 삶’에 대해 말하는 자리에 다녀왔다. 귀촌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결심하고 실행했는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는 귀촌한 이래 꽤 많이 있었다. 귀촌에 대한 나의 태도는 냉소적이거나 자조적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 어쩌다보니 귀촌을 했지만 삶은 어디서나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고통스러웠다. 지금도 그렇고. 그 자리의 소개글은 아래와 같았다.
“2015년 귀촌을 했다. 귀촌 생활은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게 피곤하고, 감당할 수 없게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여전히 재미있는 것, 좋은 것, 필요한 것은 모두 서울에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도시에서나 여기에서나 삶을 만만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듣고 싶고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과 선택, 결과 사이에 짧게 존재하는 작은 마음들에 관해서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솔직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 좋았다는 분들과,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조금 감이 잡힌다는 분이 있었다. 그리고! (두둥) 나에게 귀촌인으로서의 철학이 없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너의 삶은 그저 직장이나 삶의 조건들을 따라 옮겨다닌 것에 불과한데 과연 그걸 귀촌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공간을 시골로 이동했을 뿐 도시와 다르지 않은 삶을 투영하는 귀농에 대한 시각은 노동을 존중하고 자연 이웃과 함께하는 귀농의 본래 의미를 변형시켰다.
<이제, 시골> 임경수 (소일, 2020) 11쪽
퍼머컬쳐로 귀향을 디자인하다, 라는 부제를 단 책은 좋아하는 언니들이 차린 출판사에서 낸 첫 책이다. 책에서도 설명하듯 관계성과 실제성이라는 퍼머컬쳐의 원리로 저자는 동네에서 살고, 동네의 관계를 기반으로 책을 쓰고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샀다) ‘퍼머컬쳐’라는 말만 들어봤지 정확히는 어떤 내용인지 대충 감만 잡고 있다가 잘 정리된 책으로 보니 역시 좋은 말씀이다. 자연에 가깝게,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지속하게 살아가기 위한 지혜와 방법들.
(물론 페미니스트로서 이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뭐든 안 그렇겠냐만은, 농업이든 퍼머컬쳐든 페미니즘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수동 기어가 아닌 자동 기어라 여성들도 운전하기 더 좋다는 문장 같은 게 걸려서 다른 좋은 내용들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질 못하겠다)
반복적으로 로컬, 더 명확하게는 로컬리티를 강조하는데 이는 ‘삶터로서 공간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 가는 다양한 관계성의 총체’라고 한다. 귀향(저자는 귀촌과 귀농을 농사 여부로 구분하는 기계적인 분류법의 한계를 넘고자 로컬리티가 살아있는, 마음의 고향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곳으로의 이주를 귀향이라고 명명했다)은 공간이 아니라 사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거라고.
그날 내 이야기에 반감을 가졌던 분들이 느꼈던 게 이런 감정이겠구나. 나는 자급을 지향하면서 최대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고 싶었던 사람인데 그런 맥락 없이 ‘방황을 일삼던 사람이 일자리가 필요해서 이주했다’로 들렸을 수 있겠다. 게다가 귀촌 후의 이야기는 도시의 속도 경쟁과 다른 평화롭고 소박한 삶이었다, 로 끝나지 않고 거기서도 이어지는 생의 분투였으니..
이야기의 맥락이 더 잘 드러났었어야 하기는 하겠다. 물론, 연고 없는 곳으로 이주한 비혼 여성의 분투기, 흥미로운 생존기라고 이야기하신 분도 있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퇴근하고 지친 몸을 움직여 귀촌에 대해 듣게 되는 이야기가 절망적’으로 들렸다면 기대와 달랐을 수 있을 게다. 나는 절망을 이야기하진 않았는데...
말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진정한 귀촌을 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걸 유난한 후기로 제껴두진 않으려고 한다. 그 분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같이 드렸던 원고를 정리해봤다. 생활 공간과 하는 일이 바뀌었어도 쳇바퀴 돌 듯 여전한 삶을 산다면 귀촌을 해도 도시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이제, 시골>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한다. 내가 계속 하던 이야기가 이거였으니까.
나는 도시에서나 여기서나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생에 진지하게 임했고 노동과 이웃, 자연을 존중했다. 더 자연스럽게 나를 사랑하고, 더 자연스럽게 자연 가까이에 살고 싶어서 도시를 떠나왔다. 그렇기때문에 도시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여전히 이렇게 좌충우돌 방황중인거고.